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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다리에서 바라 본 노이슈반슈타인성
 마리아 다리에서 바라 본 노이슈반슈타인성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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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의 도로 따라 남쪽으로

뮌헨을 떠난 우리는 알프스 산맥의 북쪽 사면에 있는 퓌센으로 간다. 퓌센은 낭만의 도로 남쪽 끝에 위치하고, 호엔슈방가우(Hohenschwangau)성과 노이슈반슈타인(Neuschwanstein)성으로 유명하다. 뮌헨에서 퓌센까지는 120km쯤 되지만 길이 좋지 않아 2시간 이상 걸린다. 먼저 고속도로를 타고 슈타른베르크(Starnberg)까지 간다. 슈타른베르크부터는 2번 지방도와 17번 지방도를 이용한다. 이들 도로는 왕복 2차선이고, 커브가 심해 속도를 낼 수 없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구릉 지대가 나타난다. 이들 구릉을 따라 농장과 초원이 발달해 있다. 퓌센이 40여km 남은 파이팅(Feiting)에 이르니 알프스가 좀 더 가까이 보인다. 이곳 파이팅은 퓌센과 가르미쉬-파르텐카르헨(Garmisch-Partenkirchen)으로 갈라지는 삼거리다. 여기서 우리는 슈타인가덴으로 내려간다. 슈타인가덴은 순례교회인 비스교회(Wieskirche)로 유명하다. 로코코 양식의 교회로 198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되었다.

퓌센으로 가는 길
 퓌센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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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의 도로는 이곳 슈타인가덴에서 알프스 도로와 만난다. 알프스 도로는 서쪽 보덴 호숫가(Bodensee) 린다우에서 동쪽 베르히테스가덴까지 이어지는 450km도로다. 이 도로 주변에는 초원과 숲, 산악과 호수가 어우러져 여름철에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우리는 이곳 퓌센 주변의 문화 산을 보고 난 다음, 알프스 도로를 따라 잘츠부르크로 갈 예정이다.

슈타인가덴에서 퓌센까지는 23km밖에는 되질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퓌센으로 가기 전에 만나는 작은 마을 슈방가우로 갈 것이다. 그곳에서 알프스 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유명한 성(Schloss)인 호엔슈방가우와 노이슈반슈타인이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성은 바이에른왕 루드비히(Ludwig) 2세의 삶과 관련이 있다.

두 호수를 끼고 있는 호엔슈방가우 성

호엔슈방가우성
 호엔슈방가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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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엔슈방가우 성에 도착한 우리는 버스에서 내렸다. 이곳 호엔슈방가우 성에서 노이슈반슈타인 성까지는 걷거나, 버스를 이용하거나, 말을 타고 갈 수 있다. 우리는 노이슈반슈타인 성까지 걸어가기로 하고, 먼저 호엔슈방가우 성을 살펴본다. 호엔슈방가우 성은 바이에른 왕가의 성으로 1537~1547년 처음 지어졌다. 그리고 1833~1837년 바이에른 왕세자인 막시밀리안(Maximilian)의 지시로 현재와 같은 4층짜리 네오 고딕 양식으로 변형됐다.

1848년 막스가 막시밀리안 2세가 되었고, 그 때부터 호엔슈방가우 성은 바이에른 왕가의 여름 별장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막시밀리안 2세의 두 아들 루드비히와 오토는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특히 루드비히는 이곳의 생활을 아주 즐겼던 것 같다. 1864년 18세의 나이로 왕이 된 루드비히 2세는 그 후에도 계속 호엔슈방가우 성을 찾았기 때문이다.

호엔슈방가우성
 호엔슈방가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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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편지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여기 사랑하는 호엔슈방가우에서 나는 정말 멋진 날들을 보내고 있다. 끝내주게 날씨가 좋은 날에는 말을 타고 주변으로 소풍을 나가곤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한적한 곳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그가 정사를 소홀히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욱이 그는 정치보다는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더 많았던 것 같다.

1869년 인근에 자신과 바그너(Richard Wagner)를 위해 노이슈반슈타인성을 세우도록 명했기 때문이다. 1884년 노이슈반슈타인성이 완성되었으나, 루드비히 2세는 1886년 슈타른베르크 호수에서 익사한 채로 발견되었다. 그 후 호엔슈방가우 성은 루드비히의 부인 마리의 거처가 되었고, 1889년 마리의 죽음과 함께 거의 잊혀지게 되었다. 이 성은 1923년부터 박물관 겸 궁전으로 변했고, 비텔스바흐 재단이 관리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찾아가는 노이슈반슈타인 성

호엔슈방가우성
 호엔슈방가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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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엔슈방가우 성에서 알프스 산 쪽을 올려다보면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보인다. 노이슈반슈타인성까지는 계속 오르막으로 25분 정도면 여유 있게 갈 수 있다. 중간에 가끔 마차를 만나는데, 중간 중간 말똥이 있어 조금 냄새가 난다. 길도 넓고, 나무도 많아 산책길로 아주 좋은 편이다. 길을 가다 보면 작은 규모의 폭포도 만날 수 있고, 아래로 펼쳐진 호수도 볼 수 있다. 호엔슈방가우 성 옆에는 알프 호수와 슈반 호수가 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에 도착하면, 레스토랑, 전망대, 매표소 등을 만날 수 있다. 먼저 전망대로 가 슈방가우 지역의 경치를 살펴본다. 우리가 버스를 타고 지나온 17번 지방도 너머로 포르겐호수와 반발트호수가 보인다. 이들 호수는 알프스의 눈 녹은 물이 모여 형성되었다. 대표적인 하천이 노이슈반슈타인 옆으로 흐르는 펠라트(Pöllat)천이다. 우리는 펠라트에 놓여 있는 마리아 다리로 가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내려다볼 예정이다.

노아슈반슈타인 성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루드비히 2세에 의해 1869년부터 1884년까지 지어졌다. 루드비히가 성을 지으며 요구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중세풍의 낭만적인 건물을 만들라는 것이다. 그는 중세 독일 기사 성의 전형을 이곳 푈라트 협곡 구릉 위에 세우려고 했다. 다른 하나는 바그너의 삶과 작품을 위해 이 성을 헌정하고 싶은 것이다.

노이슈반슈타인성
 노이슈반슈타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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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슈반슈타인성 평면도
 노이슈반슈타인성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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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건물을 짓는데 비용이 처음 계획보다 두 배가 들어가면서 루드비히는 커다란 빚을 지게 되었다. 1886년 그는 왕국의 통치권 뿐 아니라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권한을 상실하고 만다. 그는 6월 9일 모든 실권을 잃고 노이슈반슈타인 성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12일 베르크(Berg)성으로 이송되고, 다음 날 슈타른베르크 호수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왕이 죽은 다음 바로 대중에게 개방되었다. 그것은 왕이 남긴 빚을 갚는다는 명분이었다. 그 때문에 당시로는 아주 비싼 2마르크의 입장료를 받았다고 한다. 현재도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찾는 사람은 연간 130만 명이 넘는다. 여행 시즌인 6~8월에는 하루 방문객이 6000명을 넘고 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독일 사람보다는 외국인에게 인기가 높다. 2007년 세계 7개 불가사의를 선정할 때,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8위를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노이슈반슈타인성(서쪽면)
 노이슈반슈타인성(서쪽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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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슈반슈타인 성은 개별적으로 볼 수가 없다. 안내자의 인도에 따라 단체로 관람을 한다. 이때 각자 자국의 언어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이곳에는 한국어 안내도 있다. 안내 시간은 30분 정도다. 그렇다면 내부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 성 내부는 15개 정도의 홀로 이뤄져 있다. 1층은 성의 운영과 관리를 맡는 행정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2층 이상에서 왕실의 삶과 예술 그리고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대표적인 홀로는 대관식홀과 연주 회장이 있다. 연주 회장은 원래 중세 기사시인들의 노래 시합을 목적으로 지어졌지만, 공연과 연주 등을 하는 공간으로 주로 활용되었다. 그리고 거실과 침실, 서재와 공부방, 주방과 식당으로 이루어진 생활 공간이 있다. 이들 홀과 방에는 아름다운 가구와 장식들이 가득하다. 이들은 대부분 네오 고딕 양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안으로 들어가는 대신 마리아 다리로

노이슈반슈타인성
 노이슈반슈타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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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나는 과거에 성 내부를 한 번 살펴보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내려다보기 위해 마리아 다리로 올라간다. 다리로 올라가면서 노이슈반슈타인 성의 서쪽면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알프 호수와 슈반 호수를 양쪽으로 끼고 있는 호엔슈방가우 성도 내려다 볼 수 있다. 호수의 푸른색과 성의 노란색, 숲의 초록색이 잘 어울린다.

10분쯤 올라가니 마리아 다리를 소개하는 안내판이 나온다. 수채화처럼 아주 예술적으로 그려놓았다. 산과 호수, 건물과 다리의 관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잘 그렸다. 이것을 보고 나서 아내와 나는 다시 작은 고개를 넘어 마리아 다리로 간다. 다리에는 사람들로 빽빽하다. 그렇지만 다리를 건너갔다 오면서 노이슈반슈타인 성의 남쪽면을 살펴보기로 한다.

그림으로 표현된 호엔슈방가우 안내판
 그림으로 표현된 호엔슈방가우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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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다리는 막시밀리안 2세 때인 1845년 목조 다리로 처음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다리는 수시로 다시 놓여야 했다. 그래서 1866년 루드비히 2세는 철제 다리를 놓을 것을 주문했고, 게르버(Heinrich Gottfried Gerber)의 설계로 만들어졌다. 케이블의 장력으로 하중을 지지하는 일종의 현수교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다리는 계곡 위 90m 상공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건설에 상당히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다리에서 성을 바라보니,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높은 구릉 위에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곳에서 보니 5층으로 이뤄진 네오 고딕 양식의 성을 좀 더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성 너머로 슈방가우의 들판과 호수도 보인다. 정말로 동화적이고 평화스러운 풍경이다. 다리의 난간에는 연인들이 헤어지지 말자고 채워놓은 자물통들이 걸려 있다.

다리를 내려오면서 보니 가족끼리 연인끼리 이곳을 찾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마리아 다리가 8월 초부터 수리를 위해 출입을 금지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가 마리아 다리에 올라간 것이 지난 7월 24일이었으니 거의 마지막으로 올라간 셈이 된다. 이제 우리는 마리아 다리 아래까지 올라오는 셔틀버스를 타고 호엔슈방가우로 내려간다. 올라오는데 40분 가까이 걸렸는데, 내려가는 데는 5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아내와 나는 시간이 남아 호엔슈방가우에서 맥주와 음료를 한 잔씩 마시며 여유를 즐긴다. 1시쯤 되어선지 이곳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는 퓌센 시내로 가서 점심을 먹기로 되어 있다. 퓌센은 알프스에서 발원하는 레흐(Lech)강 중상류에 있는 도시로, 중세 후기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우리는 오후에 그곳 구 시가지를 관광할 것이다.  

퓌센
 퓌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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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낭만의 도로, #호엔슈방가우(성), #노이슈반슈타인성, #루드비히 2세, #마리아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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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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