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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 둥지를 틀고 산 지 딱 7개월이 되었다. 처음엔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이제 대부분 익숙해졌다. 살기 좋은 도시로 유명한 이유도 알 것 같다. 있을 것 다 있고, 교통 좋고, 쾌적하고, 안전하다. 거주지 만족도가 전국에서 가장 높다는 것이 이해된다.

다만 내가 일하는 곳이 학교다보니, 불만스러운 것이 없지는 않다. 대전은 도시의 전반적인 정치 성향과는 다르게 교육 쪽으로는 다소 보수적인 곳이다. 17개 시도교육감 중 진보교육감이 아닌 4개 시도가 대전, 대구, 경북, 울산인데, 'TK 연합'에 대전만 들러붙은 모양새가 퍽 이상하다. 17개 시도교육청 중 중학생 무상급식을 전혀 진행하지 않는 곳이 대전과 인천뿐이기도 하다(도지사가 몽니 부리는 경남은 제외).

그러다 보니 경기도에서 날아온 나로서는 납득하기 힘든 일들이 꽤 많이 벌어진다. 대표적인 것이 '머리 잡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기도 학교들은 염색과 파마조차도 관대했는데, 이곳 대전은 머리카락의 길이에도 굉장히 민감하다. 조금 더 자르라는 교사와 더이상 못 자르겠다는 학생의 실랑이를 보고 있노라면, 타임머신을 타고 10년이나 20년 전쯤으로 온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학생답다.'

나는 이 문장이 난처하다. 수백만 명의 학생을 공통적으로 묶을 수 있는 '학생다움'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매년 50만 명 이상이 학교에 들어오고 나가는 변화무쌍함과는 달리, '학생다움'이라는 말은 너무나 견고하고 밋밋하다. '학생답다'의 범주에 들지 않는 학생들은 그럼 뭔가 싶기도 하고, '학생답다'의 의미를 학생이 정의하지 않는 것이 맞나 싶기도 하다. 교육학에서는 학생, 학부모, 교사를 교육의 3주체라고 하는데, '학생 답다'는 말이 널리 쓰이는 것과는 달리 '교사 답다', '학부모 답다'는 왜 없는지 희한하기도 하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는 말도 이상하다. 내 귀에 딱지가 앉도록 꽂혔던 그 말이 지금 이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파고들고 있다. 사전에서는 '본분'을 '마땅히 지켜야할 의무나 직무'라고 설명하는데, 신기한 것은 이 '본분'이라는 단어가 '학생'이라는 단어와만 결합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말에 명사 간 호응이 있었던가?

교사의 본분은 수업이다. 소방관은 본분은 화재 진화이다. 경찰의 본분은 치안 유지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않고, 어디에서도 그렇게 들어본 적이 없다. 이 공식을 적용하면 직장인의 본분은 업무일진대, 그들에게 업무란 견뎌내야 할 고통이며, 생계 유지의 수단에 불과하다. 그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은 고통을 인내한 대가로 받는 월급과 그것을 통해 얻는 여가에서 나온다.

공부를 즐겨보라고, 학교를 좋아해 보라고, 수학을 즐겨보라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많다. 반면에 업무를 즐겨보라고, 회사를 좋아해보라고, 부장님께 보고하는 것을 즐기보라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다. 내 성격이 이상하고 내 노력이 부족해서 힘든 것이 아니라, 회사의 조직문화가 이상하고 회사의 인간미가 부족해서 힘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기준을 아이들에게는 적용하지 않는다. 그나마 직업과 직장은 자기가 선택하기라도 했지, 아이들은 학교에 그냥 던져진 건데 말이다.

'학생은 당연히 머리가 단정해야지!' '학생은 당연히 교복을 입어야지!' '학생은 당연히 화장을 하면 안 되지!'

위와 같은 말은 대한민국에서 상식으로 통용되지만, 다른 곳에서도 그럴까.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는 북한 주민은 불쌍한 사람이라고 배웠다. 신도에게 교주가 정해준 사람과 결혼할 것을 강요하는 종교를 사이비라고 배웠다. 여성에게 히잡 착용을 명령하는 이슬람 국가를 인권 후진국이라고 배웠다. 나는 이 모든 것을 학교에서 배웠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사는 14세~19세의 사람들은 자기 머리 길이를 자기가 정할 수도 없고, 자기가 입을 옷을 자기가 고를 수도 없대. 자기 얼굴 모양과 색깔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대.

금기와 제약이 많을수록 닫힌 사회라고 했다. 우리 안의 타자가 너무 많다.

덧붙이는 글 | 제 페이스북에 친구공개로 올렸습니다.



태그:#교육, #두발단속, #진보교육감, #대전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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