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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2012년 제18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3차 토론회 때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
 지난 2012년 제18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3차 토론회 때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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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제가 대통령 하겠다는 거 아니겠어요?"

지난 대선 토론, 증세를 하지 않고 어떻게 복지 재원을 충당할 수 있느냐는 문재인 후보의 물음에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이렇게 답했다. '어떻게?'를 물었는데. '누가?=내가!'로 대답한 박근혜 후보. 그는 대선 토론 기간 동안 몇 번이나 '어떻게'라는 질문에 '내가'로 응수했다.

박근혜 후보의 답변에는 소통이 없었다. '누구'와 '어떻게'에 대한 설명보다는,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해야 한다'는 당위가 먼저였다. 이명박 정부와 공동의 축이었던 과거는 당명의 변경으로 세탁됐고, 이명박 정부 실정은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이유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소통은 생략되고 당위만 강조된 박근혜 정부의 국정 운영은 온갖 불협화음을 불러왔다. 노인 복지 예산은 줄어들었고, 보육 예산은 지방정부에게 짐짝처럼 떠밀려졌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법인세 환원은 절대 불가하다면서, 담뱃값을 올려 서민의 주머니를 털었다. 정책이 쏟아질 때마다 명분만 요란할 뿐 합리적인 설명이나 토론은 없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때 아닌 모금 운동

박근혜 대통령의 아이디어로 만들었다는 '청년희망펀드(가칭)'도 소통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아이디어 차원에서 내놓을 정책을 어떤 토론이나 검증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밀어붙인 모습은 놀랍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하다. 펀드 조성을 지시한 다음날 16일, 대통령은 2천만 원을 기부하고 매달 월급의 20%를 내놓기로 했다. 이에 정부 고위 관계자는 물론 여당의 대표와 최고위원들까지 가세하고 나섰다.

정부는 청년희망펀드를 기업은 물론 민간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대통령의 아이디어로 시작해서 일사천리로 진행된 희망 펀드는 아직 어떻게 운용할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다. 청년창업 소액대출·청년 구직자 지원·청년 채용기업 지원·창조경제혁신센터 연계 지원 정도가 펀드의 활용 방안의 전부다. 이를 운용할 청년희망재단 설립도 연말이 되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한 마디로 돈부터 거둬 놓고 보자는 발상이다. 청년 실업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정부에 대한 비판 또한 어느 때보다 높다. 청년희망펀드 추진은 '청년 실업 문제를 어떡할 건가요' 묻는 여론에, "그래서 돈 모으고 있잖아요"라는 대통령 특유의 빗나간 답변과 다를 바 없다. 소통과 이해를 돕는 설명은 이번에도 생략됐다. 대신 대통령이 팔을 걷어붙였으니 모두 동참해야 된다는 무언의 압박만이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하는 일이니까 모두 동참하기에는 문제가 많다. 청년 실업 문제는 내수 경기의 침체. 저임금의 고착과 기업의 이윤 극대화를 위한 노동력 절감 등의 요인이 오랫동안 축척되어 나타난 결과다. 임금 피크제를 도입하고 손쉬운 해고를 조장하면서, 펀드를 조성해 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다. 또, 자영업자 폐업이 속출하는 현실에는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못한 정부가, 펀드로 청년 창업자에게 소액 대출을 알선하겠다는 건 빚더미 대열을 줄을 세우는 것과 다름없다.

국내 기업의 사내유보금만 700조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전경련의 발표에 따르면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 중 35.8%는 채용을 줄일 계획이며, 신규 채용을 늘리겠다는 응답은 19.6%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비정규직을 늘리고, 노동 강도를 높여서 이윤을 만들어 창고에 현금을 차곡차곡 쌓아두는 대기업들. 이런 관행을 변화시키지 못하면 청년 실업 대책은 정부 노력에 상관없이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7일 대구경북과학기술원에서 열린 대구시민과 오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7일 대구경북과학기술원에서 열린 대구시민과 오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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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청년희망펀드에 2천만 원을 기부한 것을 두고 황교안 국무총리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언급했다.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다하겠다'는 말로 해석된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을 보면 이 말이 무색하다. 가진 자의 도적적 의무는 고사하고, 정부와 재계는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손쉬운 해고, 저렴한 노동력 유지를 밀어붙였다. 대통령의 바람대로 재계 등 일부 집단이 펀드에 통 크게 동참하더라도, 그것은 노동 개악(?)에 대한 답례일 뿐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보기 어렵다.

소통도 검증도 없는 대통령의 즉흥적인 정책과 전시 행정, 그 후과가 얼마나 참혹한지는 멀리 볼 것도 없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4대강 사업과 자원 외교를 보라. 국민들과 소통하고 제대로 검증했다면 수조 원의 손실을 막을 수 있었다. 2009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사재를 털어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안겨 주겠다며 설립한 청계재단. 그로써 BBK 소유 논란을 잠재울 수는 있었지만 6년이 지난 지금 청계재단은 빈 쭉정이 장학회가 됐다.

아직도 모르겠다, 대통령을 하겠다는 이유를

손쉬운 해고와 저렴한 노동력 유지를 위해 만들어진 노동 개혁안 통과 이후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청년희망펀드. 그 저의가 의심스럽다. 노동 개악의 여론을 호도하고, 청년 실업에 대한 생색내기가 아닌가 하는 점 말이다. 아무리 좋게 보더라도 대통령 일방의 지시에 의한 불우한 청소년 돕기 이벤트 이상의 그 무엇도 발견하기 힘들다. 국민들과 소통하고, 정책 시행에 앞서 검증해 보려는 노력은 더더욱 보이지 않는다.

최저임금 6030원에 청소년을 묶어 놓고 청년 실업을 해결하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장년의 일자리와 임금을 줄여 청소년들과 나누겠다는 것 또한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어리석은 생각이다. 700조 원을 쌓아 놓고 저렴한 노동력 확보에 혈안이 된 기업이 바뀌지 않는 한, 청년 실업문제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청년희망펀드. 희망이 보이는가. 기자의 눈에는 유신과 군사 정권 시절 '대통령 지시사항'을 보는 것 같다. 지난 대선에서 대통령의 거듭된 대답. "그러니까 제가 대통령 하겠다는 거 아니겠어요?" 그러나 아직도 많은 국민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대통령을 하겠다는 이유를 말이다.

○ 편집ㅣ박순옥 기자



태그:#청년희망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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