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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근현대 작품들을 주로 전시해 놓은 '예지 컬렉션'을 나와 다시 '브레라 미술관의' 본 전시실 동선을 따라 이동합니다. 그러다 문득 유난히 화려한 그림들에 눈이 갑니다. '성 삼위일체와 성모 마리아 대관', '성 모자 상', '성 모자와 성인들' 등 모두 카를로 크리벨리란 작가의 그림들입니다. 20대 후반 무렵 나름 서양미술사를 열심히 공부한다고 했는데, 거의 처음 들어보는 작가입니다. 어쩔 수 없이 급하게 구글링을 해 봅니다. 아니나 다를까 만테냐, 조반니 벨리니 등과 비슷한 시기 활동한 초기 베네치아 화파입니다.

카를로 크리벨리, '성 삼위일체와 성모 마리아의 대관',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초기 베네치아 화파의 대표 작가 중 한 명인 크리벨리는 장식적인 경향의 국제고딕양식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습니다.
▲ 성 삼위일체와 성모 마리아의 대관 카를로 크리벨리, '성 삼위일체와 성모 마리아의 대관',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초기 베네치아 화파의 대표 작가 중 한 명인 크리벨리는 장식적인 경향의 국제고딕양식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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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크리벨리의 그림은 다른 베네치아 화파들의 자연스러운 색채 표현에 국제 고딕 양식의 장식적 요소를 더 한 것이 특징입니다. 눈을 뗄 수 없이 선명한 색채와 지나치게 섬세해서 오히려 사실성이 떨어지는 선묘, 그리고 장식을 위해 동원된 갖가지 소품과 온갖 장신구로 치장된 의복까지, 요즘 말로 화려함의 '끝판 대장'을 보는 것 같습니다. 마치 순정 만화나 컴퓨터 게임의 속 캐릭터 같은 인물들은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위해 사실성은 아예 포기한 것처럼 보입니다.

카를로 크리벨리, '성 모자 상',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선명한 색채와 화려한 장식이 돋보이는 크리벨리의 그림들은 마치 화려함의 '끝판 대장'을 보는 것 같습니다.
▲ 성 모자 상 카를로 크리벨리, '성 모자 상',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선명한 색채와 화려한 장식이 돋보이는 크리벨리의 그림들은 마치 화려함의 '끝판 대장'을 보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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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 크리벨리, '성 모자와 성인들',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위해 사실성은 아예 포기한 것처럼 보이는 크리벨리의 그림들. 특히 작품 중간에 열쇠나 장신구 같은 실제 사물을 배치해서 독특한 느낌을 줍니다.
▲ 성 모자와 성인들 카를로 크리벨리, '성 모자와 성인들',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위해 사실성은 아예 포기한 것처럼 보이는 크리벨리의 그림들. 특히 작품 중간에 열쇠나 장신구 같은 실제 사물을 배치해서 독특한 느낌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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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작품 중간에 열쇠나 장신구 같은 실제 사물을 배치했는데 그것이 사실감과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크리벨리는 파피에콜레나 콜라주의 '창시자'인 셈입니다. 나는 이곳 '브레라 미술관'에서 새로운 보석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기쁜 마음으로 카를로 크리벨리의 작품들을 보고 또 봅니다. 아는 만큼 보이기도 하고, 걷는 만큼 보이기도 하고, 관심을 가지는 만큼 보이기도 합니다. 

크리벨리의 그림 이후 또다른 보석을 만날까 차근차근 그림들을 훑어보다가 다시 라파엘로 앞에 섭니다. '성모 마리아의 결혼식'입니다. 이 작품은 라파엘로가 스무살을 갓 넘긴 1504년에 그린 초기 작품으로 아직 스승 페루지노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기에 제작된 것입니다. 페루지노의 동명의 그림과 구도도 비슷합니다.

라파엘로, '성모 마리아의 결혼식',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갓 스무살을 넘긴 라파엘로의 이 작품은 완벽한 구도와 부드러우면서도 섬세한 묘사로 전성기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성모 마리아의 결혼식 라파엘로, '성모 마리아의 결혼식',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갓 스무살을 넘긴 라파엘로의 이 작품은 완벽한 구도와 부드러우면서도 섬세한 묘사로 전성기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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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마리아의 결혼식, 그녀의 남편은

그림의 내용은 사제의 주례 하에 성 요셉이 마리아의 손가락에 결혼 반지를 끼워주는 장면인데 성 요셉 오른쪽의 남자들은 다른 남편 후보자들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수많은 남편 후보들 중 마른 나뭇가지에 꽃이 핀 사람이 마리아의 남편이 된다고 합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성 요셉이 들고 있는 나무에만 꽃이 피어 있죠. 그리고 성 요셉 곁에서 실망한 나머지 자신의 나무를 무릎에 대고 부러뜨리고 있는 청년의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그림은 우선 정확한 원근법으로 묘사된 건물 앞에 남녀 인물들이 좌우 대칭을 이루고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라파엘로 특유의 부드러우면서도 섬세한 인물 묘사도 빼놓을 수 없지요. 전성기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자세히 보면 건물 가운데 부분에 라파엘로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미 스승을 뛰어넘은 라파엘로의 재기발랄함과 자신만만함을 보여주는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라파엘로의 그림 바로 옆 벽에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신성한 대화(성인들과 함께 있는 성모자)'가 걸려 있는데 이 또한 명작입니다. 전형적인 르네상스 양식의 교회를 배경으로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고 뒤에 성인들과 천사들이 둘러서 있으며 한 사람이 무릎을 꿇고 경배하고 있죠. 이 사람은 그림을 주문한 우르비노의 군주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아내와 함께 약간은 우스꽝스럽게 그려진 옆 모습의 초상화 주인공인 우르비노 공작입니다.(참, 그 그림도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그린 것입니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신성한 대화',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원근법과 기하학의 대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그의 후견인 우르비노 공작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를 위해 그린 작품입니다.
▲ 신성한 대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신성한 대화',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원근법과 기하학의 대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그의 후견인 우르비노 공작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를 위해 그린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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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우선 원근법의 전문가답게 한치의 오차도 없이 수학적으로 정밀하게 구성된 건물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화려하지만 깔끔하게 정리된 그 건물의 정중앙에는 조개 모양의 장식 앞에 계란 모양의 장신구가 걸려 있습니다. 모두 탄생과 부활을 상징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부활의 계란을 왼쪽 아래 성 세례 요한의 지팡이가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 지팡이는 삼각형 구도의 한 변을 이루고 있기도 하지요.

그런가 하면 성 세례 요한의 오른손은 아기 예수로 향하고 있는데 예수의 가슴에는 수난을 상징하는 붉은색 산호 목걸이가 걸려 있습니다. 말하자면 삼각형 구도 속에 예수의 탄생과 수난, 부활의 상징을 모두 표현한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삼각형 구도의 오른쪽을 차지하고 있는 주문자인 몬테펠트로 공작의 기도하는 손 역시 아기 예수로 향하고 있습니다. 용병 대장 출신이지만 은퇴 후 그 스스로 르네상스적 삶을 살았던 몬테펠트로 공작의 자의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꼭 봐야될 명작들이 숨쉴 틈 없이 계속 이어집니다. 이제 또, 빼놓을 수 없는 작가, 카라바조를 만납니다.

예수가 부활한 날 저녁,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동행하던 두 제자가 엠마오의 한 여관에서 예수와 함께 식사를 하게 됩니다. 예수는 빵을 들고 찬미를 올린 후 제자들에게 빵을 떼어 나누어 주죠. 그 순간, 새롭게 눈을 뜬 두 제자는 예수를 알아보게 됩니다. 바로 '엠마오에서의 저녁 식사'입니다.

기독교에서 예수의 부활은 탄생보다 오히려 더 큰 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조금 거칠게 말하면 예수의 '신성'은 부활을 통해서 획득된 것이죠.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의 부활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순간은, 예수가 종교적 신앙의 대상으로서 인식되는 첫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첫 장면을 상징하는 사건이 바로 '엠마오에서의 저녁 식사'입니다.  

카라바조, '엠마오의 저녁 식사',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제자들이 예수의 부활을 처음으로 알게 된 장면을 묘사한 이 그림은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있는 카라바조의 동명의 그림과 좋은 대비를 이루고 있습니다.
▲ 엠마오의 저녁 식사 카라바조, '엠마오의 저녁 식사',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제자들이 예수의 부활을 처음으로 알게 된 장면을 묘사한 이 그림은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있는 카라바조의 동명의 그림과 좋은 대비를 이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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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의 이 그림은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있는 동명의 그림의 또 다른 버전인데 두 그림을 비교해서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화보로만 본 '내셔널 갤러리'의 그림에 비해 '브레라 미술관'의 그림은 좀 더 집중력이 느껴집니다. '내셔널 갤러리' 버전이 훨씬 밝은 화면과 선명한 색채로 사실적 묘사를 중시했다면 이 '브레라 미술관' 버전은 내면에 충실한 느낌이죠.

카라바조의 같은 그림, 다른 느낌

카라바조 특유의 어두운 조명 속에서 인물들은 좀 더 서민적으로 변했고 식탁 위의 음식들도 더 소박해졌습니다. 그림 중앙의 예수와 뒤늦게 예수를 알아보는 두 제자, 그리고 오른쪽 위 여관 주인 부부 모두 평범한 얼굴들입니다.

게다가 언제부턴가 카라바조의 그림에서 성인들을 상징하는 광배(nimbus)마저 사라진 탓에 성경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태로 그림을 보면 평범한 일상의 한 장면을 극적으로 묘사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어찌 보면 그림의 내용과 어울리지 않게 약간의 비애감도 느껴집니다. 살인 사건 이후의 도피 생활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황폐해졌던 카라바조의 내면이 투영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카라바조는 역시 만나는 작품마다 많은 질문을 던져 줍니다.  

이탈리아 3대 미술관으로 손꼽히는 '브레라 미술관'의 전시실입니다.
▲ 브레라 미술관의 전시실 이탈리아 3대 미술관으로 손꼽히는 '브레라 미술관'의 전시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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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의 작품 이후 얀 드 베이르도 만나고 엘 그레코, 얀 브뤼헬, 루벤스도 만납니다. 며칠 후 베네치아에서 만나게 될 카날레토도 미리 나타나서 베네치아의 풍경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거의 마지막 전시실에서는 또 다시 이탈리아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근현대 작품들이라도 이번만은 그냥 대충 훑어보고 지나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의 이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프란체스코 하예즈를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브레라 아카데미'의 원장이기도 했던 프란체스코 하예즈. 섬세하면서도 감각적인 그의 작품들 중에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키스'입니다. 강렬하기 그지없습니다. 어쩌면 현대의 영화나 드라마의 모든 낭만적 키스신의 원형이 이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림인데도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프란체스코 하예즈, '키스',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신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의 이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하예즈의 '키스'는 제목처럼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 키스 프란체스코 하예즈, '키스',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신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의 이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하예즈의 '키스'는 제목처럼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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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하예즈의 '키스'와 가까운 곳에 그와는 정반대의 느낌이 담긴 그림이 있습니다. 제롤라모 인두노라는 낯선 작가의 '슬픈 예감'이란 그림입니다. 작가는 생소하지만 그림은 얼핏 화집에서 본 기억이 나긴 합니다.

잠옷 차림으로 침대에 앉아 있는 소녀. 연인과의 이별을 예감한 탓일까요? 그녀의 표정은 어둡습니다. 제목처럼 뭔가 슬픈 예감에 빠진 느낌이죠.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녀의 뒤편 벽에 낯익은 그림이 한 점 걸려 있습니다. 바로 프란체스코 하예즈의 '키스'입니다. 그리고 그림 옆에는 가리발디의 흉상이 놓여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림의 내용이 대충 이해가 됩니다.

제롤라모 인두노, '슬픈 예감',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뭔가 슬픈 예감에 빠진 소녀의 뒤편 벽에 하예즈의 ‘키스’가 걸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림 옆에는 가리발디의 흉상이 놓여 있죠.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 슬픈 예감 제롤라모 인두노, '슬픈 예감',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뭔가 슬픈 예감에 빠진 소녀의 뒤편 벽에 하예즈의 ‘키스’가 걸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림 옆에는 가리발디의 흉상이 놓여 있죠.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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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 키스를 나누었던 소녀의 연인은 어느 날 아침 소녀를 버려둔 채 길을 나섰습니다. 그가 향한 곳은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 이탈리아 통일 운동)를 주도하는 가리발디의 민병대. 소녀는 자신을 내버려둔 채 혁명 운동에 나선 연인을 걱정하며 저토록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소녀의 슬픈 예감은 비극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햇빛이 들어오는 열린 창문. 그곳에 혁명의 승리를 상징하는 바리케이드가 그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후에 알고 보니 제롤라모 인두노는 화가 이전에 이탈리아 통일 운동에 헌신했던 혁명가였습니다. 이렇게 내용을 이해하니 그림이 훨씬 더 감동적으로 다가옵니다.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 그 의미는?

이제 '브레라 미술관'의 마지막 작품을 만납니다. 펠리차 다 볼페도의 '홍수(인간의 홍수)'입니다. 신새벽의 여명을 뚫고 마치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사내들. 질서정연한 대열을 이루지는 않았지만 왠지 모를 당당함이 느껴지는 이들은 한 눈에도 노동자, 농민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펠리차 다 볼페도, '홍수(인간의 홍수)',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이른바 ‘제4계급’의 행진을 당당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볼페도는 이 그림과 똑같은 구도의 사실적인 그림을 제작하고 '제4계급'이라는 제목을 붙입니다.
▲ 홍수 펠리차 다 볼페도, '홍수(인간의 홍수)',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이른바 ‘제4계급’의 행진을 당당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볼페도는 이 그림과 똑같은 구도의 사실적인 그림을 제작하고 '제4계급'이라는 제목을 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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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티스트 운동과 1848년 혁명, 파리 코뮌을 거치면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이른바 '제4계급'. 볼페도의 그림은 이들 제4계급의 행진이 단순한 시위나 폭동이 아니라 대홍수처럼 거스를 수 없는 새로운 역사의 시작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대열의 앞에 선 여인의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녀가 행진에 동참함으로써 새로운 역사는 평등과 연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녀는 아기를 안고 있습니다. 그동안 이탈리아에서 수없이 많이 보아온 소재 '아기를 안고 있는 여인'. 그렇습니다. 그녀는 바로 성모 마리아의 현신인 것입니다. 중세 이래 천상의 존재로서 '신성한 사랑'을 상징해 온 성모 마리아. 그녀가 동참함으로써 이들의 행진에는 또 하나의 시대적 가치가 부여됩니다. 그것은 '박애'입니다.  

볼페도는 새시대를 상징하는 이 그림을 완성하고 3년 후 똑같은 소재와 구도로 훨씬 더 사실적인 그림을 다시 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그림에는 '홍수'와 같은 은유적 제목이 아닌 새로운 제목을 당당히 붙입니다. 바로 '제4계급'입니다.(이 그림은 밀라노 '20세기 박물관(Museo del Novecento)'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볼페도의 그림을 끝으로 '브레라 미술관'을 나섭니다. 중세에서 시작하여 르네상스와 바로크를 거쳐 20세기 초반의 작품들까지 말 그대로 '알차게' 관람한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이제 밀라노의 상징, '두오모'를 만날 차례입니다.

(13-3편으로 이어집니다.)

○ 편집ㅣ장지혜 기자



태그:#브레라미술관, #크리벨리, #라파엘로, #밀라노, #이탈리아미술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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