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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설공단과 코리아해리티지센터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웰다잉 투어. 삶과 죽음의 공간을 연계시킨 여행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서울시립승화원 운영팀 김보미씨는 "죽음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이색투어"라고 소개했다
 서울시설공단과 코리아해리티지센터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웰다잉 투어. 삶과 죽음의 공간을 연계시킨 여행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서울시립승화원 운영팀 김보미씨는 "죽음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이색투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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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승화원에 들어서면서 자꾸 고개를 돌리게 됐다.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슬픔에 잠긴 얼굴들, 주차장에 가득 들어찬 장례 버스들, 볼 때마다 기분이 가라앉아서다. 언젠가, 분명히, 나도 오게 될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평소 스스로 낯설게 만들려고 했던 두 글자, 죽음이란 단어가 자꾸 크게 다가오는 듯했다. 죽음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런 곳은 가능하면 다가가지 않으려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굳이 묘지에 다가가는 여행이 있다고 했다. 서울시설공단이 코리아해리티지센터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웰다잉 투어, 용미리 1묘지, 망우리 묘지, 4.19 민주묘지 등을 꼭 돌아본다고 한다. 물론 묘지만을 가는 건 아니다. 한옥마을도 가고, 김수영 문학관도 찾는다. 가회동 성당이나 길상사 또는 정동교회도 가 볼 수 있다.

삶과 죽음의 공간을 함께 돌아보는 여행이다. 이 색다른 여행을 생각해 낸 사람을 만나러 지난 10일 서울시립승화원에 갔다. 승화원 운영팀에서 일하고 있는 김보미씨, 만나자마자 사실 살짝 '깼다'. 서른한 살의 젊은 여성, 죽음을 여행과 엮어낸 사람치고는 젊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뜸 '웰다잉 투어'를 한 문장으로 소개해달라는 부탁부터 했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죽음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이색 투어"라는 답을 들려줬다. "평소 묘지를 둘러볼 기회가 없는 경우가 많고, 한용운, 방정환, 조봉암, 이중섭 등 다양한 분의 묘지를 만날 수 있으니 색다른 경험이 될 수 있는 것"이란 설명이 이어졌다. 그럴 수 있다. 교과서에서나 만났던 인물과의 거리감은 확연히 줄어들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래도 일종의 묘지 관광 아닌가. 내친 김에 '선입견 보따리'부터 풀어봤다.

일종의 묘지 여행? 묘지에서 깨지는 선입견들

웰다잉 투어의 목적지는 묘지만이 아니다. 김수영 문학관에서는 시를 써 볼 수 있고, 한옥마을에서는 공방 체험이 가능하다. 가족 단위로 투어에 참가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그래서라고 한다
 웰다잉 투어의 목적지는 묘지만이 아니다. 김수영 문학관에서는 시를 써 볼 수 있고, 한옥마을에서는 공방 체험이 가능하다. 가족 단위로 투어에 참가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그래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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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분위기는 다소 무거울 것 같은데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묘지만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이 아니니까요. 또 김수영 문학관에서는 시를 써보고, 공방 체험도 하고, 천주교 투어의 경우 신부님과 대화하는 시간도 있고, 버킷 리스트를 쓰는 시간도 있어요. 소통하는 프로그램이 다양해서 분위기가 무겁지 않아요. 그리고 묘지는 마지막 일정에 가는데요, 자연스럽게 가게 되는 거죠. '생각보다 암울한 공간이 아니구나', '공원 같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참가자 연령대가 높을 것 같다는 선입견은 기획자로서 김보미씨 스스로도 깨진 부분이라고 했다. 그는 "40대 참가자가 가장 많다. 가족단위로 아이들과 같이 오는 경우도 있고, 선생님과 함께 오는 학생들도 많다"며 "다양한 연령층이 참가하고 있다.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종의 묘지 관광 아니냐는 선입견 또한 묘지에서 깨진다고 했다.

"아무래도 한 번도 가보지 않았거나 아예 모르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느끼시는 바가 많은 곳도 묘지인 것 같아요. 묘지를 둘러보면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생기는 거죠. (사람들이 놀라운 반응을 보이는 예가 있느냐고 묻자) 보통 묘비 뒤에 보면 '어떻게 살아오셨고 무슨 일을 하셨고' 그런 게 있잖아요.

그런데 조봉암 선생 묘비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검정색 대리석 그대로예요. 그분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사형당하셨잖아요. 그런 분들 묘비에는 아무것도 새길 수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나중에 혐의를 벗으신 다음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묘비가 주는 의미가 있다는 뜻에서 지금까지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고 해요. 그래서 더욱 느끼는 바가 많아 보여요."

망우리 묘지에서 느낀 새로움 "웬만한 묘지, 다 가봤죠"

웰다잉 투어는 종교별로 삶과 죽음의 공간을 접목시킨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새남터 성당 내부 모습
 웰다잉 투어는 종교별로 삶과 죽음의 공간을 접목시킨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새남터 성당 내부 모습
ⓒ blog.naver.com/seoulsis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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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색다른 여행을 김보미씨는 크게 두 가지 이유로 기획하게 됐다고 한다. "독일 등 외국과 달리 죽음과 관련된 공간을 돌아보는 투어가 우리나라에서는 눈에 띄지 않았다"고 했다. 또 하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묘지나 화장터 견학은 예약이 꽉 찰 정도로 호응이 좋은 만큼, 웰다잉에 더 관심 높을 성인 시민에게도 비슷한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고 한다.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판단도 했다. 그는 "터부시하거나 두려워하다가 갑자기 닥치게 되면 오히려 큰 문제가 되는 것이 죽음"이라면서 "우리 사회에서 자살율이 높은 것도 사생관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 아니냐"고 했다. 이런 아이디어에 대한 확신은 '발'로 만들었다고 한다. 김씨는 "웬만한 묘지는 모두 갔다"며 "그중에서 여행의 스토리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하다고 판단된 묘지들은 세 번씩 가봤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망우리 묘지에 대한 인상이 깊었다고 한다.

"공단 들어오기 전에는 망우리 묘지란 곳이 있다는 자체를 몰랐었어요. 그랬는데 한용운 선생이나 방정환 선생 등의 묘지가 있는 정말 역사적인 공간인 거예요. 역사 박물관이라고 할 정도로, 근현대사를 모아놓은 공간이라고 할 정도로, 소설가부터 시작해서 시인, 음악가 등 예술인 등 굉장히 많은 분들이 그 장소에 계세요. 그리고 일단 딱 거기 들어갔을 때 느낌은, '여기가 묘지 맞나'는 것이었어요. 그냥 산책할 수 있는, 잘 만들어진 공원 같은 느낌이었어요. 참 새로웠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스스로도 묘지에 대한, 서울이란 공간에 대한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김씨는 참가자들이 자신과 비슷한 공감대를 형성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흔히들 묘지를 기피 시설로 생각하지만, 웰다잉 투어 참가자들을 보면 그런 부정적인 선입견이 깨지는 것 같더라"며 "'꼭 배척해야 하는 공간이 아니구나', '와 볼 만한 곳이구나', 그런 반응이 나올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자연스러운 힐링의 시간...웰빙하려면 웰다잉해야"

"사람이 죽는다는 건 필연이고 숙명이잖아요. 웰다잉 투어를 통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된다고 얘기들 하세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겠구나, 언젠가는 나도 죽을 테니까, 지금 이 순간에 좀 더 충실하면 좋겠다고, 주변 사람들을 좀 더 사랑해야겠다고 말씀들 하세요. 자연스럽게 힐링을 할 수 있는 시간들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 끝으로 묻고 싶네요. 웰다잉,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잘 죽자'는 거잖아요. 잘 사는 게 잘 죽는 것 아닐까요. '웰다잉 투어'를 기획하면서 더욱 와 닿았던 말이 메멘토모리('당신이 죽는다는 걸 기억하라'를 뜻하는 라틴어)였어요. 내가 죽는다는 걸 인지하는 자체가 지금 삶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 웰빙을 가능케 하는 게 웰다잉이라고 생각해요."

토요일마다 떠나는 3색 투어


웰다잉 투어는 11월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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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일 첫선을 보인 웰다잉 투어는 11월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진행되는 일일여행이다. 사색투어, 생생투어, 성찰투어 등 3가지 테마로 6개 코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자신의 취향에 따라 맞춤형 코스를 선택해서 예약하면 된다. 코스별로 다소 차이는 있으나 5시간∼6시간 정도 소요된다.

사색투어는 장사 문화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용미리 1묘지와 각계 저명인사들이 안장되어 있는 망우리 묘지를 돌아보는 코스다. 생생투어는 이름 그대로 생생한 삶의 모습을 체험하는 코스. 이화마을, 북촌 한옥마을, 양화진 선교사 묘원을 돌아보는 '마을과의 만남', 김수영 문학관과 4.19 민주묘지를 방문하는 '사람과의 만남'으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

성찰투어는 종교별로 삶과 죽음의 공간을 접목시킨 것이 특징이다. '천주교 코스'는 가회동 성당, 새남터 성당, 절두산 순교 성지를 돌아본다. 불교의 경우는 길상사-심우장-망우리 묘지를, 기독교문화를 중심으로는 정동교회-배재학당-양화진 선교사 묘원을 찾게 된다.

여행의 '질'을 높이려는 차원에서 각 코스별 선착순 3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서울시 공공서비스 예약사이트(http://yeyak.seoul.go.kr)에서 예약할 수 있다. 봉사 활동 시간(5시간)으로 인정되는 투어 프로그램이며, 초등학생의 경우는 보호자가 동반해야 한다. 참가비는 1인당 1만 원이다.



○ 편집ㅣ박정훈 기자



태그:#웰다잉, #웰빙, #조봉암, #김수영, #버킷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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