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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밤늦게 도착해 역에서 바로 호텔로 직행한 터라 아침에서야 제대로 볼로냐 거리를 걷습니다. 로마나 피렌체보다 북쪽으로 많이 올라와서 그런지 아침 공기가 한결 더 서늘하게 느껴집니다.

볼로냐를 이번 이탈리아 미술 기행 일정에 하루라도 넣은 것은 오로지 '볼로냐 대학' 때문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볼로냐 대학에 있는 움베르토 에코 교수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그의 열렬한 팬이 되었습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바우돌리노>, <푸코의 추>, <전날의 섬>,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 그리고 근래의 <프라하의 묘지>까지 모두 탐독했습니다. 소설 이외에도 미학, 철학, 사회비평 등에 관한 그의 여러 저작도 물론 읽었습니다. 말하자면 10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내 정신세계의 한 부분은 항상 움베르토 에코로 채워져 있는 셈이지요.

그래서, 볼로냐에서 가장 보고 싶고 느끼고 싶은 것은 다른 유명한 유적이나 예술 작품이라기보다 움베르토 에코의 문학적, 철학적 성과가 살아 숨 쉬는 이곳의 분위기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볼로냐의 문화 예술을 만만하게 볼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볼로냐 마조레 광장의 '야한' 분수 조각상

볼로냐의 중심, 마조레 광장에 있는 넵튠의 분수입니다. 잠 볼로냐가 제작한 것입니다.
▲ 마조레 광장의 넵튠 분수 볼로냐의 중심, 마조레 광장에 있는 넵튠의 분수입니다. 잠 볼로냐가 제작한 것입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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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호텔을 나서 볼로냐 특유의 회랑 거리를 지나 '마조레 광장(Piazza Maggiore)'으로 향합니다. '마조레 광장'은 시청사를 비롯하여 '포데스타 궁전(Palazzo del Podesta)', '산 페트로니오 성당(Basilica di San Petronio)' 등이 모여 있는, 볼로냐의 중심으로 모든 여행객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입니다.

초겨울 이른 아침의 '마조레 광장'은 아직 텅 비어 있습니다. 먼저 광장 중앙의 '넵튠의 분수(Fontana del Nettuno)' 앞에 섭니다. 이 분수는 교황 피오 4세의 명령으로 잠 볼로냐가 제작한 16세기 매너리즘 양식의 작품입니다.

상대적으로 교황에 대한 반발심이 심했던 볼로냐(지금도 이탈리아에서 좌파적 성향이 가장 강한 도시가 볼로냐라고 합니다)에 교황의 권위를 보여주기 위해 제작한 것이라고 하는데…. 사실 이 분수가 유명한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그것은, (좀 민망하긴 하지만) 내 생각으로 세상에서 가장 야한(섹슈얼리티한) 분수란 점입니다.

넵튠 분수의 아래 부분은 이처럼 민망할 정도로 야한 세이렌상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 세이렌상 넵튠 분수의 아래 부분은 이처럼 민망할 정도로 야한 세이렌상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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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지창을 들고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넵튠의 모습 아래 조각된 바다의 요정, 세이렌들. 그녀들이 너무나도 선정적인 자세로 앉아 있는 것입니다. 보는 사람이 다 민망할 정도죠 (글로 표현하기도 민망하니 사진을 봐 주십시오). 때마침 사춘기를 갓 넘긴 남학생 몇 명이 세이렌 상들을 보며 킥킥거리더니 지나갑니다. 덕분에 아무도 없는 광장 한가운데서 나 혼자만 얼굴이 붉게 물듭니다.

아침 댓바람부터 너무 야한 조각을 본 탓일까요? 광장 남쪽의 '산 페트로니오 성당'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더 조심스러워 집니다. '산 페트로니오 성당'은 1388년 건축을 시작해서 1390년 완공되어 이후 1600년대 중반까지 개축된 초대형 성당입니다.

원래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보다도 크게 지으려 했으나 교황이 이를 승인하지 않아서 지금처럼 정면, 파사드 위쪽은 미완성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완성인 모습이 오히려 더 당당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원래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보다도 크게 지으려 했으나 교황이 이를 승인하지 않아서 지금처럼 정면, 파사드 위쪽은 미완성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 산 페트로니오 성당 원래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보다도 크게 지으려 했으나 교황이 이를 승인하지 않아서 지금처럼 정면, 파사드 위쪽은 미완성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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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안에는 여러 개의 작은 카펠라(부속 예배당)들이 이어져 있는데, 그 중 특히 볼로냐의 수호성인인 '성 페트로니오의 카펠라'는 화려한 조각과 그림들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카펠라의 문을 닫아 놓아서 자세히 보기가 힘듭니다. 주 제단에는 15세기에 만들어진,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파이프 오르간이 있는데 미사 시간이 아니니 당연히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너무 일찍 간 탓인지, 아니면 복원 공사 때문인지, 대부분의 카펠라가 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그 내부를 자세히 보기가 힘듭니다. 더구나 부속 박물관마저 문을 닫은 상태여서 잔뜩 기대하고 온 나는 안타까운 마음을 안고 성당을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으로 시청사로 향합니다. 이 시청사도 13세기에 처음 건축된 이후 여러 차례 개축된 유서가 깊은 건물입니다. 청사 2층을 미술관으로 꾸며 놓았는데, 이 미술관도 어쩐 일인지 오늘은 문을 열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미술관 입구에서 발길을 돌립니다.

볼로냐에서의 두 개의 중요한 일정이 그렇게 어정쩡하게 지나간 탓인지 기분이 썩 좋진 않습니다. 그래서 볼로냐의 또 다른 상징, 두 개의 탑, '아시넬리와 가리센다 탑(Le due Torri : Garisenda e degli Asinelli)'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볼로냐에 남은 60개의 탑

볼로냐의 상징, 두 개의 탑입니다. '아시넬리 탑'은 그보다 훨씬 키가 작은 '가리센다 탑'과 나란히 서 있습니다. '가리센다 탑'은 건축 중 기울어지기 시작해서 지금처럼 미완성의 모습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 아시넬리 탑, 가리센다 탑 볼로냐의 상징, 두 개의 탑입니다. '아시넬리 탑'은 그보다 훨씬 키가 작은 '가리센다 탑'과 나란히 서 있습니다. '가리센다 탑'은 건축 중 기울어지기 시작해서 지금처럼 미완성의 모습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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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산 지미냐노에 잠시 언급했듯이 교황파와 황제파 사이에 피비린내 나는 권력 투쟁이 벌어졌던 12~13세기 이탈리아. 볼로냐 권력자들도 탑 건축을 통해 자신들의 권위를 나타내었습니다. 그래서 약 200여 개의 탑을 건립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60여 개 정도의 탑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아시넬리 탑'에 오르기로 했습니다. '아시넬리 탑'은 그보다 훨씬 키가 작은 '가리센다 탑'과 나란히 서 있는데 '가리센다 탑'은 건축 중 기울어지기 시작해서 지금처럼 미완성의 모습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탈리아에 와서 거의 매일 높은 곳에 오르다 보니 이제 이골이 날만도 한데 여전히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것은 힘이 듭니다. 더구나 꼭대기까지 낡고 좁은 나무 계단과 다리가 이어져 있어 다리도 후들거리고 평소보다 더 많이 힘듭니다.

탑 위에서 아침 햇살 속에 빛나는 시가지를 보니 볼로냐가 생각보다 큰 도시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붉은 도시'란 별명답게 전체적으로 붉은 톤의 건물들이 도심에 가득합니다. 하지만 대도시의 이미지가 강해서 그런지 피렌체나 산 지미냐노 같은 곳에 느꼈던 감흥보다는 조금은 아쉬운 느낌입니다.

아시넬리 탑에서 바라본 볼로냐의 전경입니다. '붉은 도시'란 별명답게 전체적으로 붉은 톤의 건물들이 도심에 가득합니다. 하지만 대도시의 이미지가 강해서 그런지 피렌체나 산 지미냐노 같은 곳에 느꼈던 감흥보다는 조금은 아쉬운 느낌입니다.
▲ 볼로냐의 전경 아시넬리 탑에서 바라본 볼로냐의 전경입니다. '붉은 도시'란 별명답게 전체적으로 붉은 톤의 건물들이 도심에 가득합니다. 하지만 대도시의 이미지가 강해서 그런지 피렌체나 산 지미냐노 같은 곳에 느꼈던 감흥보다는 조금은 아쉬운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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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겨 '볼로냐 대학' 안에 있는 '볼로냐 국립 회화관(Pinacoteca Nazionale di Bologna)'으로 향합니다. 대학이라곤 하지만 유럽의 다른 대학들이 그렇듯이 어디까지가 대학이고 어디까지가 시가지인지 구분할 수 없습니다. 단지 젊은 학생들이 좀 많아지고, 담벼락 여기저기가 그래피티와 낙서, 대자보들로 지저분해지면 거기가 바로 대학 건물인 셈입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볼로냐 대학'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입니다. 교육 기관으로서 공식 문서에 처음 등장한 것이 1088년이었으니 실제로는 그보다 더 오래되었겠지요. 특히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1세가 1158년 칙령을 통해 교육기관으로 인정한 후로는 외부의 압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학문과 연구의 전당의 지위를 다지게 되었습니다.

'볼로냐 대학'은 그 당시로써는 혁명적일 정도로 진보적인 색채를 띠고 있었습니다. 11세기 후반 무렵에 벌써 여성이 수업을 들었고 심지어 그 학생이 강의를 진행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입니다.

점점 꼬여가는 일정, <장미의 이름>을 다시 읽었다

유럽의 다른 대학들이 그렇듯이 어디까지가 대학이고 어디까지가 시가지인지 구분할 수 없습니다. 단지 젊은 학생들이 좀 많아지고, 담벼락 여기저기가 그래피티와 낙서, 대자보로 지저분해지면 거기가 바로 대학 건물인 셈입니다.
▲ 볼로냐 대학의 그래피티 유럽의 다른 대학들이 그렇듯이 어디까지가 대학이고 어디까지가 시가지인지 구분할 수 없습니다. 단지 젊은 학생들이 좀 많아지고, 담벼락 여기저기가 그래피티와 낙서, 대자보로 지저분해지면 거기가 바로 대학 건물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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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最古)의 대학인만큼 출신 인물들의 면면도 화려합니다. 단테, 페트라르카, 에라스무스, 코페르니쿠스 등 중세를 극복하고 근대의 기틀을 마련했던 인물들로부터 최근의 루이지 갈바니, 마르코니와 같은 과학자들 그리고 파시스트 독재자인 무솔리니도 볼로냐 대학 출신입니다.

대학생들의 활기를 여기저기서 느끼다 보니 어느새 '국립 회화관'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국립 회화관' 문이 굳게 닫혀 있습니다. 어떤 공고문도 붙어 있지 않고 그냥 닫힌 상태입니다. 나 말고도 회화관을 찾은 여러 명의 여행객이 문이 닫힌 사실을 알고는 어리둥절해 하며 발길을 돌립니다. 그리고 그들 중엔 (아마 수업을 들으러 온 것 같았는데) 문이 닫힌 회화관 앞에서 환호를 지르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세상 어디를 가나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건 휴강인가 봅니다.

그나저나 나는 우두망찰했습니다. 볼로냐에서의 일정이 계속 꼬여가기 때문입니다. '산 페트로니오 성당'의 부속 박물관도 문이 닫혀 있었고, 시청의 미술관도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정보다 일찍 '아시넬리 탑'에 올라갔다 온 탓에 '국립 회화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계획이었는데 그마저도 어긋난 것입니다. 한국에서 예매한 밀라노행 기차는 오후 6시 이후. 그전까지는 어떻게든 볼로냐에서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우선 어떻게 될 판인지 상황을 보기 위해 회화관 앞 광장 벤치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꽤 추워진 날씨 탓에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회화관 옆 간이 카페에 앉아 카푸치노 하나를 시켜 놓고 시간을 보내며 글을 썼습니다.

한 시간 반 정도 그렇게 있다가 다시 회화관 문 앞에 가 보니 여전히 닫혀있는 문. 될 대로 되라 하는 심정으로 대학 건물 아무 곳이나 일단 들어갔습니다. 그곳은 마침, '파인아트 컬리지'였는데 안내데스크가 있었습니다. 왜 회화관 문을 열지 않느냐고 했더니 오후 2시에 연다고 합니다. '이런, 젠장. 공지라도 붙여 놓지.' 이탈리아에 와서 처음으로 짜증이 밀려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이어질 수 없는 게 여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건 그렇고, 아직 2시간 가까운 시간을 그냥 보내야 합니다. 볼로냐의 다른 곳에 가볼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결국 대학가에 있는 작은 카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글을 쓰다 책을 읽었습니다. 바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말입니다. (여행 짐이 너무 많아 읽을 책을 따로 가져가진 않았지만, 태블릿 PC에는 200여 권에 이르는 세계문학 E북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장미의 이름>을 몇 번이나 읽었을까요? 최소한 열 번은 읽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읽을 때마다 감탄하고 또 새로운 문장을 발견하는 기쁨을 느낍니다. 오늘은 바로 이 문장입니다.

"In omnibus requiem quaesivi, et nusquam inveni nisi in angulo cum libro(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중

그렇습니다. 한 달이라는 내 생애 첫 여행의 설렘 속에서도 어쩌면 이렇게 책 읽을 구석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루하루 정말 규칙적인 일정을 정말 힘들게 소화하면서도, 그래서 숙소에 오면 발과 허리가 아파 견딜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잠들기 직전까지 마지막으로 내 손에 붙들려 있는 것은 읽을거리였습니다. 그게 다음날 일정의 준비였든 아니면 다른 책이든 말입니다. 에코를 읽을 때마다 언제나 찬탄을 금할 수 없었던 나. 오늘 나는 이곳 볼로냐에서 그에게서 또 하나의 새로운 가르침을 받은 셈입니다.

<장미의 이름>을 읽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흘러가 버렸습니다. 서둘러 카페를 나와 '국립 회화관'으로 향합니다.

이탈리아 대부분 미술관이 그렇듯이 전시실의 시작은 중세 미술부터입니다. 밀라노행 기차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작품들을 빠르게 스쳐 지나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 '볼로냐 국립 회화관'의 핵심은 뭐니 뭐니 해도 '볼로냐 화파'의 작품들이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볼로냐 화파 작품들

로도비코 카라치, '그리스도의 승천' 외. 볼로냐 국립 회화관. 르네상스 대가들의 장점들을 연구하여 절충주의적 형태를 띠게 된 '볼로냐 화파'의 핵심적 작가 로도비코 카라치의 작품들입니다.
▲ 그리스도의 승천 로도비코 카라치, '그리스도의 승천' 외. 볼로냐 국립 회화관. 르네상스 대가들의 장점들을 연구하여 절충주의적 형태를 띠게 된 '볼로냐 화파'의 핵심적 작가 로도비코 카라치의 작품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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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열풍이 끝나고, 고전의 답습과 일탈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던 매너리즘 시기, 이곳 볼로냐에서는 로도비코 카라치와 안니발레 카라치 등의 카라치 가문과 그들이 만든 '아카데미아 델리 인카미나티(Accademia degli Incamminati)' 미술학교를 중심으로 새로운 화파가 형성됩니다. 이름하여 '볼로냐 화파'. 그들은 르네상스 대가들의 작품의 특징을 체계적으로 연구해서 그 장점을 취하는 일종의 '절충주의'적 경향을 띠게 됩니다.

특히 안니발레 카라치는 로마에서 활약하던 시절, 베네치아 화파의 색채와 빛, 사촌 형인 로도비코의 감정 표현, 라파엘로의 고전적 묘사 등을 종합하여 역동적이고 극적인 화풍을 개척하게 됩니다. 환상적이며 장식적인 바로크 양식의 탄생이죠. 비록 동시대의 영웅, 카라바조의 사실주의보다 저평가되긴 하지만 바로크 양식을 개척한 안니발레 카라치의 업적과 영향은 다음 세대로 이어져 미술사의 주요한 흐름이 됩니다.    

'볼로냐 국립 회화관' 곳곳에는 이들 카라치 가문과 '볼로냐 화파' 거장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대단히 훌륭한 작품들인 것은 분명하지만 왠지 어디서 본 듯한 느낌, 말 그대로 '절충주의'적 화풍은 내 취향이 아닌 것 같습니다.

계속 비슷비슷한 구도와 색채의 그림들을 보다 보니 주제넘게도, 너무 매끈하게 너무 잘 그려진 그림이란 느낌만 듭니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의 걸작들을 이름만 확인하고 지나갑니다. 로마에서 안니발레 카라치의 천장화를 만나지 못했던 것이 살짝 후회되기도 합니다.

구이도 레니, ‘피에타 데이 멘디칸티’ (중앙), '성 세바스티아노'(왼쪽), '성 안드레아 코르시니'(오른쪽), 볼로냐 국립 회화관. 리드미컬한 색채감과 부드러운 정조가 특징인 구이도 레니의 명작들이 개인전처럼 전시되어 있습니다.
▲ 피에타 데이 멘디칸티 외 2편 구이도 레니, ‘피에타 데이 멘디칸티’ (중앙), '성 세바스티아노'(왼쪽), '성 안드레아 코르시니'(오른쪽), 볼로냐 국립 회화관. 리드미컬한 색채감과 부드러운 정조가 특징인 구이도 레니의 명작들이 개인전처럼 전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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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독특한 개성이 살아 있는 구이도 레니의 작품들 앞에서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로마와 피렌체에서도 몇 번 만난 적 있는 '볼로냐 화파'의 슈퍼스타, 구이도 레니. 그를 상징하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살짝 들고 있는 아름다운 얼굴의 인물'들이 한 전시실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십자가형', '승리의 삼손', '성 안드레아 코르시니', '성 세바스티아노', '죄 없는 이들의 학살', 그리고 초대형 작품인 '피에타 데이 멘디칸티' 등 율동적인 색채감과 부드러운 정조가 전시실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마치 구이도 레니의 개인전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특히, '승리의 삼손'은 지금까지 봐왔던 구이도 레니의 다른 작품들보다 훨씬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성서 속 인물이지만 성인이 아닌, 마치 그리스 신화 속 헤라클레스와 같은 비극적 영웅인 삼손. 구이도 레니의 삼손은 근육질이지만 날씬하고 매끈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죽인 블레셋인들을 밟고 무기인 당나귀 턱뼈를 든 채 승리의 포즈를 취하고 있죠. 생각해 보면 굉장히 폭력적인 장면인데 구이도 레니는 이처럼 특유의 이상화된 아름다움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구이도 레니, '승리의 삼손', 볼로냐 국립회화관. 굉장히 폭력적인 장면인데 구이도 레니는 이처럼 특유의 이상화된 아름다움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 승리의 삼손 구이도 레니, '승리의 삼손', 볼로냐 국립회화관. 굉장히 폭력적인 장면인데 구이도 레니는 이처럼 특유의 이상화된 아름다움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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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처럼 '볼로냐 화파' 거장들의 작품이 가득한데 또 라파엘로에 집중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회화관에 걸려 있는 유일한 라파엘로의 그림, '성 세실리아의 법열' 때문입니다. 몇 번이나 언급했지만 이곳 이탈리아에서 소름 돋는 전율을 자주 경험했습니다. 특히 라파엘로의 그림들은 만날 때마다 그랬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집니다. 나는 라파엘로를 정말 사랑합니다.

라파엘로, '성 세실리아의 법열', 볼로냐 국립회화관. 이 그림은 회화관에서 만난 유일한 라파엘로의 작품입니다.
▲ 성 세실리아의 법열 라파엘로, '성 세실리아의 법열', 볼로냐 국립회화관. 이 그림은 회화관에서 만난 유일한 라파엘로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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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언급할 작품이 하나 더 있습니다. 두 명의 여인이 화난 얼굴(거의 욕하듯이)로 한 곳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녀들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 그곳에는 한 남자가 벽에 대고 실례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남자 위 창문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남자를 화난 듯이 쳐다보고 있죠.

이 그림은 쥬세페 마리아 크레스피가 그린 '농장의 한 장면'이란 작품인데, 말 그대로 17세기 시골 농장의 한 장면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소품입니다. 특히 고양이의 화난 모습이 재미있고 인상적입니다. 그래서 급하게 구글링으로 작가와 작품에 대해 찾아봅니다. 그랬더니 이 작품에는 의외의 비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작품이 카메라 옵스큐라를 사용해 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카메라의 원리와 같이, 암실에 빛이 들어올 수 있는 작은 구멍을 만들어 놓고 그곳을 통해 들어온 풍경을 캔버스에 그대로 그린 것이란 말이죠. 요즘 말로 하면 스냅 사진인 셈입니다.

작품에 대해 알고 나니, 마치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작품을 발견한 것처럼 기분이 좋아집니다. 꼭 거장의 위대한 작품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소소한 행복을 준다면 그것이 명작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쥬세페 마리아 크레스피, '농장의 한 장면', 볼로냐 국립회화관. 카메라 옵스큐라를 사용해 제작된 이 그림은 여러 면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줍니다.
▲ 농장의 한 장면 쥬세페 마리아 크레스피, '농장의 한 장면', 볼로냐 국립회화관. 카메라 옵스큐라를 사용해 제작된 이 그림은 여러 면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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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스피의 그림을 끝으로 '국립 회화관'에서 나옵니다. 이미 해는 저물고 찬바람이 세차게 불어옵니다. 볼로냐에서의 짧은 1박 2일. 당연히 움베르토 에코는 만나지 못했고 계획했던 일정들도 틀어져서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하지만 다음이란 게 있으니 크게 아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늦은 저녁을 급하게 먹고는 밀라노행 밤 기차에 지친 몸을 실었습니다.

'회랑의 도시'라는 별명답게 도로 양 옆에 저처럼 회랑이 이어져 있습니다.
▲ 볼로냐의 야경 '회랑의 도시'라는 별명답게 도로 양 옆에 저처럼 회랑이 이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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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편, 밀라노 1편으로 이어집니다.)

○ 편집ㅣ김준수 기자



태그:#볼로냐, #국립회화관, #움베르토에코, #이탈리아, #이탈리아미술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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