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몇 차례 태풍의 영향으로 더위가 한풀 꺾였다곤 하지만 한낮의 더위는 여전히 기세등등하다. 지난 17일 소설가 홍명진(49)씨를 인천 서구 석남동 그녀의 집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2001년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고 2008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한 홍 작가는 1989년 인천노동자문학회 활동을 시작으로 본다면 30여 년이나 소설을 써온 베테랑 작가다. '많은 작품을 써왔지만 애정이 가는 작품이 없어 모두 다시 쓰고 싶다'는 그녀의 이야기는 30도가 넘는 뜨거운 낮, 작은 카페에서 나누기엔 벅찼다.

영덕 아가씨 인천 상경기

홍명진 소설가
 홍명진 소설가
ⓒ 김영숙

관련사진보기

1967년 경북 영덕에서 태어난 홍 작가는 초·중·고등학교 모두 영덕에서 졸업했다. 7남매 중 여섯째인 그녀의 가정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다. 배를 타던 아버지와 해녀였던 어머니를 부끄러워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해녀의 삶은 거칠어요. 해먹고 살 게 없으니까 하는 거죠. 배를 타던 아버지가 술을 심하게 마셔 엄마 혼자 물질해서 살았어요. 초등학교 때 엄마가 작업하다가 뭍으로 올라오면 미리 불도 펴놓고 있어야하고 고무 옷(해녀 옷) 벗는 걸 도와줘야해 엄마를 따라다녔어요. 같은 학교 아이들이 엄마 옷 벗는 걸 보려고 숨어 있다가 나에게 돌팔매질을 했어요. 사춘기 시절에는 엄마가 해녀라는 게 부끄러웠어요. 도둑질하는 것도 아닌데 애들한테 놀림을 당해 싫었던 거죠."

자식을 낳고서야 엄마가 자랑스러웠다는 홍 작가는 강인한 생활력을 갖고 있는 해녀의 딸로 태어난 게 장하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여자 상업고교로 진학하길 바란 엄마의 뜻에 맞서 사립학교인 영덕여고에 입학했다. 주산· 부기를 우선으로 하면 책을 못 읽을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었다.

"초·중학교 때 문예반 활동을 했어요. 친구 연애 편지를 대신 써주던 문학 소녀였다고나 할까요? 단순히 문학에 대한 갈망으로 사고를 친 거죠."

경북 영덕군에서는 매해 봄, 복사꽃큰잔치(복사꽃축제)를 연다. 올해 24회인 이 축제는 영덕군에서 큰 잔치다. 홍 작가는 고교 2학년 때 이 축제에서 연 백일장에 참여해 장원을 했다. 그러나 그 후 문학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1989년 인천에 와 인천노동자문학회 활동을 하기 전까지.

오로지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당시 인천노동자문학회의 활동 장르는 시(詩)가 주류였다.

"소설을 쓰라는 사람도, 가르쳐준 사람도 없었어요. 문학회에서 저만 소설을 썼는데 오로지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던 거죠. 영덕에서 장원을 했을 때도 이야기 형식의 산문시를 썼어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 먼 길을 돌아왔다고 말하는 홍 작가는 그래서 '나쁜 습관'이 많이 생겼다고도 했다.

문학회에서 만난 남편과 1992년에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느라 한동안 문학회 활동을 못했다. 그러나 꾸준히 작품을 써왔고 2001년에는 <바퀴의 집>이라는 소설로 10회 전태일문학상 소설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소설이 뭔지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어 이듬해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에 들어갔다.

거기서 배운 게 문학 수업의 전부라고 말하는 홍 작가는, 남편이 운영하던 작은 회사에 문제가 생기면서 본인이 생계를 책임져야해 월간 잡지사에서 교정 교열 업무를 해야 했다. 잡지사에 근무하면서도 글을 쓰고 싶은 미련은 계속돼 작품을 계속 썼다. 드디어 2008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터틀넥 스웨터>로 당선됐다.

글쓰기에 집중하라는 우주 만물이 보내 오는 신호인지 그 해 홍 작가는 8년간 다니던 잡지사에서 해고됐다. 광우병 쇠고기 파동이 한창이던 때, 쇠고기 수입 개방 반대 집회에 참석한 게 해고 이유였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 등단하고 청탁이 오지 않으면 작가의 생명이 끊길 수도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단편 소설을 계속 썼죠. '소설을 쓰지 않으면 차라리 굶어죽자'라는 문구를 컴퓨터 앞에 붙여놓기도 했습니다."

홍 작가는 지금도 '가난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쨌든 살아지더라'고도 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내 방을 올해 처음 가졌어요. 작가가 자기 방이 없었죠. 딸, 아들 네 명이 16평 빌라에 살다보니 글 쓸 책상 놓을 자리도 없었어요. 내 방이 없으니까 애들이 자는 밤에 거실에서 글을 썼죠. 올해 아들이 대전에 있는 대학에 입학해 아들 방이 내 방이 됐습니다. 많이는 못 벌었지만 이야기를 써서 먹고 살고 있어요."

미래의 작가, 청소년들과 만나다

홍 작가는 2012년 소설 <우주 비행>으로 10회 사계절문학상과 2013년 (재)인천문화재단이 수여하는 우현예술상을 받았다. 이 소설은 낯선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탈북 청소년인 주인공 '박승규'가 주변 사람들과 관계 맺기로 자신의 삶을 복원해나가는 과정을 밀도 있게 그렸다.

"친구가 탈북 여성을 소개해줘 만났어요. 그 후 탈북과 새터민 관련 자료를 많이 준비했고 남북관계가 경색되기 전 개성 관광도 다녀오면서 작품을 쓰고 있었죠. 원래는 아들과 함께 탈북한 40대 여성이 주인공이었는데 일 년 반 동안 원고지 900매 정도 쓰다가 포기했어요."

문체가 어둡고 유머가 없다는 지적을 많이 받은 홍 작가는 이 작품 또한 그런 분위기를 벗어나지 못해 고심했다. 주인공을 바꿔 어머니가 아닌 아들을 화자로 다시 이야기를 구성했다. 가볍게 잘 써졌다. 지인들한테 작품을 보여줬더니 좋다고 해, 사계절문학상에 응모했다. 등단한 작가라는 부담으로 딸 이름으로 출품했다.

"본심에 올라온 작가 5명 중 언제 최종 발표가 나는지 출판사로 전화하지 않은 사람은 저밖에 없었대요. 작가 이름을 검색해도 나오지 않아 출판사와 심사위원들이 실력 있는 신인 작가를 발굴할 모양이라고들 좋아했는데, 내 이름이 밝혀지자 좋다가 말았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 후, 청소년 작가로 더 많이 알려져 여러 출판사에서 청소년 소설을 출간했다. <타임캡슐 1985>(사계절. 2014)와 <앨리스의 소보로빵>(북멘토. 2015) 등 장편소설과 엔솔로지로 엮은 <콤플렉스의 밀도>(문학동네. 2014)와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들을 모은 <세븐틴 세븐틴>(사계절. 2015) 등을 출판했다.

단편 소설도 꾸준히 발표했지만 그것은 반응이 없고 청소년 소설 쪽으로만 청탁이 와 아쉽단다. 뿐만 아니라 전국으로 청소년 대상 문학 강연이나 '작가와의 만남'을 하러 다닌다.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면 청소년과 만나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기 때문이다.

"작가가 되기 전까지 작가가 되리라곤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누가 나에게 이쪽에 재능이 있다고 한마디라도 해줬다면 좀 더 빨리 뭔가를 했을지도 모르죠. 저는 학창시절에 작가라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어요.

청소년들을 만나면, '작가가 되는 지름길'을 많이 물어요. 저는 '인생에서 지름길은 없다'고 얘기해줘요. 하지만 제가 청소년 시절에 작가를 만났더라면 경이로운 일이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던 것이 아쉬워, 그들에게 작가를 만났다는 경험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생각으로 만나러 갑니다."

작가든 음악가든 미술가든 모든 작품은 자기의 분신이라 말하는 홍 작가는 그래서 중요한 건 작가의 정체성이라고 강조했다. 등단한 수많은 작가 사이에서 아직은 작은 별에 불과하지만 스스로 빛을 내며 준비해야 언젠가 발현될 수 있다고도 했다.

덧붙이는 글 | <시사인천>에 실림



태그:#홍명진, #인천노동자문학회, #터틀넥 스웨터, #우주비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