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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국 변호사
 권영국 변호사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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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국(52) 변호사는 온갖 집회 현장에 나타난다. 그리고 가장 맨 앞줄에 선다. 때론 경찰관에게 멱살을 잡히고, 최루액을 정면으로 맞기도 한다. 요즘에는 '피고인'으로 불린다. 분명 직업은 변호사인데….

지난 20일, 권 변호사는 두 번째 형사재판의 1심을 마쳤다. 검찰은 그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에서 경찰관을 때렸고(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죄), 차량 통행을 막았다(일반교통방해)며 기소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그의 주요 혐의에 대부분 무죄를 선고했다(관련기사 : '대한문 집회 무더기 기소' 민변 변호사들 무죄).

다음날 오후 서울시 서초구에 있는 그의 '해우법률사무소'를 찾아갔다. 경찰과 다투다 끌려가고, 자꾸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는 이유가 궁금했다. 권 변호사는 쌍용차와 세월호 참사 관련 집회 등에서 경찰에 항의하다 세 번이나 구속당할 뻔했다. 조만간 '법정소란죄'로 새로운 재판도 받는다.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선고기일에 헌법재판관들을 향해 "오늘은 헌법이 정치와 민주주의를 살해한 날이다, 역사적 심판받을 것"이라고 소리 질렀기 때문이다.

그가 걸어온 길을 돌아볼 때 이해하기 힘든 행동은 아니다. 서울대학교 금속공학과를 나와 풍산금속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쫓겨난 권 변호사는 2002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줄곧 '거리의 변호사'로 살아왔다. 부당하게 해고당한 사람들을 위해, 가족을 잃고 국가에 외면당한 용산과 세월호 참사 유족들을 위해, 사람대접받지 못하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싸워왔다.

하지만 13년이라는 세월 동안 권 변호사가 목격한 것은 '후퇴'였다. 그는 "저 역시 심리적으로 좀 지친다, 육체적으로 많이 지쳤다"고 털어놨다. 돈 많이 못 버는 노동 전문 변호사라 가족들에게도 미안해했다.

그런데도 그는 변함없이 거리로 나선다. 행복해지고 싶어서다. 권 변호사는 "'이 몰상식한 현실이 존재하는 한 내 삶도 행복하지 않겠다, 조금이라도 행복해지려면 현실을 (제 자리로) 되돌려놔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커진다"고 말했다.

행복해지고 싶어 싸우는 이 남자는 만나자마자 판결문을 들여다보며 입을 뗐다. 하루 전 법원 판결이 아쉽다며 '또 싸우겠다'는 얘기였다.

자꾸 재판받는 '이상한' 변호사

 2013년 대한문 앞에서 열린 쌍용차 사태 관련 집회에서 경찰관을 폭행했다는 혐의 등으로 기소된 권영국 변호사가 20일 1심 무죄 판결 뒤 축하를 받고 있다.
 2013년 대한문 앞에서 열린 쌍용차 사태 관련 집회에서 경찰관을 폭행했다는 혐의 등으로 기소된 권영국 변호사가 20일 1심 무죄 판결 뒤 축하를 받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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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20일) 법원에서 2013년 대한문 집회 때 경찰관을 폭행했다는 혐의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2012년 5월 10일 청운동 집회 일반교통방해죄랑 2014년 7월 20일 세월호 집회 때 경찰관에게 욕설한 것(모욕죄)은 유죄가 인정돼서 벌금 300만 원이 나오긴 했다.
"예상했다. 그래도 청운동 집회를 제외하면 일반교통방해죄는 오히려 (예상보다) 더 무죄가 나왔다. 지금 법원이 일반교통방해죄를 적용하는 경향이 엄격해지고 있다. 단순히 거기(도로, 인도 등)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신고한 집회에서 단순 참가자가 사람들을 따라가다가 일반 차로까지 넘어간 경우까지 어떻게 할 수 없지 않은가."

- 핵심 쟁점이 무죄여도 일부 유죄니 항소할 생각인가. 검찰이야 당연히 할 텐데.
"검찰이 하면 저도 항소해서 다퉈보려고 한다. 일반교통방해죄는 (당시 교통 상황이) 완전히 불통이냐, 현저히 불통이냐에 따라 (유죄냐 무죄냐가) 달라진다. 그런데 청운동 집회의 경우 당시 경찰이 우리를 에워쌌지만, 다른 한쪽 길은 열려있어서 자동차들도 왔다 갔다 했다.

또 하나, 모욕죄는 판결문에 '집회 해산명령절차가 위법할 여지가 있다'고 나온다. 하지만 항의 수단(경찰관에게 욕설)이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거기서 다른 방법이 가능한지…. 제가 처음에는 '여기 지금 불법행위가 어디 있느냐, 불법행위가 있다는 방송을 중단하라'고 몇 번씩 요구했다. 그런데 그 장면이 법정에 증거로 나오지 않았다. 경찰이 제가 항의하는 장면을 증거로 수집한 동영상이 분명히 있을 텐데….

재판부도 제 불법행위는 전혀 없었고, 오히려 '공권력 남용의 여지가 있다'고 했다. 처음부터 욕할 수야 없지 않느냐. 그래서 저도 몇 번 얘기했지만, 계속 경찰이 들이대니까 열 받아서 '야, 이 XXX야' 한 거다. 여기서 다른 어떤 수단이 있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 먼저 때려야 하나, 아니면 마이크를 뺏어야 하나? 정말 답답하더라."

- 그런데 2009년 쌍용차 노조 파업 때도 경찰에 항의하다 공무집행방해 등으로 기소됐다(2심까지 모두 무죄). 변호인이 아닌 피고인으로 재판받는 심정은 어떤지 궁금하다.
"'변호인 권영국'은 하고 싶은 얘기를 자유롭게 하는 편이고, 검사나 재판부에 이의제기도 강하게 한다. '피고인 권영국'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당사자라, 제 태도에 따라 재판부가 어떤 선입견을 품을 수 있다는 우려를 하게 됐다. 상당히 조심스러워지더라. 우리 변호인들이야, 제가 그렇지 않았다고 하는데(웃음)."

- 아무튼 현직 변호사가 또 재판을 받는 데다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들이 무더기로 기소됐다는 점에서 유명한 사건이었다. 재판과정에서 특별했던 장면을 꼽는다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재판 처음 시작할 때 법정을 가득 메웠던 변호사들이 기억난다(동료 변호사들은 그를 변호하겠다며 선임계만 109명이 냈고, 1차 공판에는 변호인단과 동료 변호사 등 38명이 출석했다. - 기자 주). 재판장이 조금 놀라는 표정이었다. 한편으론 무척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론 (사람들이) 의리가 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정말 뿌듯했다(웃음)."

- 그 일은 여러모로 화제였다. 한편으론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지난 4월에 (세월호 참사 관련 집회로) 검찰이 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됐는데, 그때는 좀 (멋쩍어하며) 민폐 끼치는 것 같아서…. 2009년 쌍용차 파업 기간에 연행된 다음 체포적부심(체포의 적법성 등을 법원이 심사하는 것)을 받았을 때랑 2013년 7월 25일 대한문 집회 때문에 영장이 청구됐을 때까지는 (다른 사람들과) 책임을 공유한다는 차원에서 괜찮다고 여겼는데…. 세월호 집회로 다시 한 번 구속영장이 청구됐을 때는 미안했다."

☞ 사측 공장 진입... 결국 파국으로 가나
☞ 법원, 권영국 변호사 구속영장 기각... 민변 "당연한 결과"
☞ 세월호 집회, 법원의 '엇갈린 판단'

- 또 구속영장이 청구될 일은 없을까?
"모르겠다. 우리 사회가 제대로 가면 괜찮을 텐데…. 비정상적인 경향이 강해질수록 갈등이 불가피하게 높아지지 않은가? 그러면 소위 인권변호사라는 사람들은 계속 인권옹호활동을 해야 할 테고, 그 갈등에서 벗어날 수는 없으니까."

- 재판도 재판이지만, 검찰이 민변 변호사들을 무더기로 기소하면서 대한변호사협회에 징계 개시 신청까지 해서 화제였다. '민변 표적 수사' 논란이 적지 않았는데.
"공안검찰이 민변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를 여러 가지로 한 것 아닐까. 대한문 집회 무더기 기소가 있고, 기소되지 않은 변호사들의 진술거부권 권유까지 트집 잡아 징계 개시 신청을 하고, 이후에도 과거사 사건 수임 관련해서…. 물론 그것은 좀 판단이 갈릴 수 있는데, 어쨌든 이런 일들을 보면 민변의 사회적 신뢰도에 흠집을 내려는 것 아닌가 의심스럽다.

저만 해도 이번에 여러 사건이 섞여서 기소됐는데, 그러면 (핵심은) 물타기가 된다.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경찰이 집회의 자유를 침해했느냐, 아니면 우리가 공권력에 도전했느냐'였다. 그런데 여기에 일반교통방해죄, 모욕죄 등이 섞이니 어떤 기자는 20일 판결을 '경찰관 폭행 권영국 변호사 벌금 300만 원'이라고 썼더라. 유죄 나온 혐의는 폭행도 아닌데. (핵심 쟁점이 무죄가 나왔음에도) 뒷맛은 굉장히 씁쓸했다."

의뢰인도 걱정하는데... "저는 안 해요"

"헌법이 민주주의 파괴했다"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밥재판소에서 진행된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에서 해산 판결이 나자 권영국 변호사가 "오늘로써 헌법이 민주주의를 파괴했다.역사적 심판을 받을 것이다. 역사적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고 외치며 항의하다 입이 틀어막힌 채 끌려나가고 있다.
▲ "헌법이 민주주의 파괴했다" 지난 2014년 12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진행된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에서 해산 판결이 나자 권영국 변호사가 "오늘로써 헌법이 민주주의를 파괴했다.역사적 심판을 받을 것이다. 역사적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고 외치며 항의하다 입이 틀어막힌 채 끌려나가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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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피고인 권영국' 재판이 더 있다. 2014년 12월 19일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때 소리를 질러서 법정소란죄 혐의로 기소됐는데, 도대체 어떤 심정이었나.
"갑자기 선고일이 잡혔다는 소식에 결론은 예상했다. 하지만 전날까지는 (직접 보러 갈) 생각이 없었다가 당일 아침 갑자기 '오늘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확 들더라. 솔직히 진보당에게 화가 났다. 하지만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 의견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다'는 유명한 말이 있지 않은가? 또 헌법재판소가 정말 반역사적인 선고를 한다면, 누군가는 법정 안에서 '당신들은 잘못했다'고 말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했다."

- 선고를 보려면 방청권이 있어야 했다. 미리 나눠줘서 당일에는 구하기 힘들었을 텐데.
"언론 보도로 방청권이 필요하다는 건 알았는데, 없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니까 무조건 간 거다. 또 변호사라 둘러댈 말이 있으니까 그걸 믿었다. 실제로 중간에 여러 번 검문 당했는데, 교묘히 빠져나갔다(웃음). 제 자리에 방청석 번호가 있는데도 제가 먼저 앉아있는 걸 보고 다른 사람이 안 들어왔는지 계속 그 좌석에 앉아 있었다."

- 정확히 어느 시점에 일어났나.
"(재판관 의견이) 8대 1이라는 설명이 나왔을 때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입이 안 떨어지더라. 심판정은 조용하고, 재판관들 앉은 곳은 높고. 그날 성호를 몇 번 그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일어났는데, 방호원이 와서 앉히더라. 나중에 (박 소장이) 주문을 다 읽고 '마치겠습니다' 말할 시점이 됐다. 그때는 지금을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다시 일어나서 소리쳤다.

내가 쌍용차 정리해고 취소소송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될 때 열패감을 느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아무 얘기도 못 하다 조용히 나왔다. 나와서야 울고. 그것도 굉장히 화났다. 또 (대법관들에게) 나중에 잘못했다고 역사적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누군가 말해줘야 하는데…. 정당해산심판 때는 꼭 얘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분명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 숨 막히던 '최후의 31분'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풍경은

- 어쨌든 자꾸 체포에, 기소당하는 모습을 보면 수사기관에 단단히 찍힌 것처럼 보인다. 만약 유죄가 확정되면 변호사 일에도 지장이 있을 텐데, 두렵지 않은가.
"정작 나는 걱정을 안 했다(웃음). 법대 출신이 아니라 변호사가 천직이라는 생각까진 안 든다. 사명을 다 해야 한다는 생각이야 매우 강하게 갖고 있지만. 하지만 의뢰인들이 걱정하더라. '변호사님, 계속 그렇게 하면 사건 제대로 진행할 수 있겠어요?'라고 묻는 분도 있다. 미안하다. 그런데 또 '변호사님 용기 내십시오'라는 분들이 더 많다."

- '사서 고생'하는 것 같다. 집회든 파업 현장이든 계속 있다 보면 지칠 법도 한데.
"이제는 지친다. 자꾸 후퇴하니까. 10년 가까이 후퇴만 하고 있다. 사회가 계속 이렇게 가면 어떤(눈을 감으며) 가치나 방향성을 잃어버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표적인 예가 세월호 유족 비하다. 법원 판결이나 한국사 교과서 등으로 독재를 미화하고 거기에 면죄부를 주는 일들도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굉장히 위험하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절망한다. 우리가 그토록 열심히 한 일들이 한순간에 다 뒤엎어졌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라는 것이 돈 앞에선 하나도 보이지 않고 있다. 저 역시 심리적으로 좀 지친다. 육체적으로도 많이 지쳤고."

- 힘든 노동사건을 도맡아 하는 데다 요즘엔 재판까지 받아서 가족들이 싫어하진 않나.
"노동사건이 힘든 건 맞다. 기록이 두껍고, 돈도 많이 안 되고…. 가족들은 싫어하는 수준을 넘어서…. (말끝을 흐리며)... 걱정한다(두 눈을 감고 머리를 긁적임)…. '좋은 뜻으로 해도 문제 생기면 어떻게 하느냐.' 그럼 저는 '쫄아서 안 하면 더 웃기지 않느냐'고 말한다. 자녀들은…. 글쎄…. (목소리가 작아지며) 이해를 못 할 거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왜 꼭 저렇게 힘들게 할까'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안한 부분이 있다."

그가 오늘도 거리를 지키는 이유

'고인의 뜻을 이어 죽음이 헛되이 하지 않겠다' 권영국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가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 고 최종범 씨 노제에 참석해 고인의 뜻을 이어 죽음이 헛되이 하지 않겠다며 목청껏 외치고 있다.
최종범 씨는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수리기사로 일하던 중 근로조건 개선과 노동조합 활동 보장 등을 요구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지 50여 일만에 금속노조와 삼성전자서비스로부터 위임받은 한국경영자총연합회와의 협상이 타결되자, 전국민주노동자장으로 장례식이 치러졌다.
▲ '고인의 뜻을 이어 죽음이 헛되이 하지 않겠다' 권영국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가 지난 2013년 12월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 고 최종범 씨 노제에 참석해 고인의 뜻을 이어 죽음이 헛되이 하지 않겠다며 목청껏 외치고 있다. 최종범 씨는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수리기사로 일하던 중 근로조건 개선과 노동조합 활동 보장 등을 요구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지 50여 일만에 금속노조와 삼성전자서비스로부터 위임받은 한국경영자총연합회와의 협상이 타결되자, 전국민주노동자장으로 장례식이 치러졌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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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도 계속 똑같은 길을 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제 발목을 잡은 약속들이 있었다(웃음). 풍산금속에서 노조를 만들 때, '내가 너를 어떻게 믿느냐'는 질문을 받았고, '당신이 가라고 하지 않는 한 내가 먼저 떠나지 않겠다'고 답했다.

2006년에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조가 11개월 정도 파업을 했다. 4~5개월 됐을 때였던가…. 이미 조합원들 생계는 바닥났고, 다들 힘들어하던 시기였는데 노조에서 와서 힘주는 얘기 좀 해달라고 하더라. 그때 그랬다. '여러분이 동료를 배신하지 않고, 서로 믿고 계속 싸울 수 있다면 제가 변호사로 있는 한 사용자를 대리하지 않겠다'고. 바로 후회했다. 그래서 마이크에 대고 '하아, 여러분 그런데 제가 정말 후회스러운 약속을 했다'고 말했다(웃음). 실제로 그 원칙을 지금까지 지켜왔다.

지금은 이렇다. '우리가 상식적이지 않은 사회로 돌아왔다.' 대통령만 봐도 법 위에 존재한다. 소통이 안 될 뿐만 아니라 모든 정책이 기존에 있는 것들을 다 뒤엎고, 본인이 했던 최소한의 약속까지 다 깨버렸다. 사람들은 점점 더 고통 속으로 빠져들고. 그러니까 어떤 생각이 드느냐면…. '이 몰상식한 현실이 존재하는 한 제 삶도 행복하지 않겠다. 제 삶이 조금이라도 행복해지려면 이 현실을 (제자리로) 되돌려놔야겠다.' 이 생각이 점점 커진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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