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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국가에서 법률은 모든 국가작용의 근거가 된다. 그래서 법률의 제·개정 및 폐지는 국회의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권한이다. 19대 국회의원들이 지난 2013년 6월까지 발의한 법안 4622건 중 295건만 가결됐다. 철회·폐기된 것을 제외한 나머지 3869건 중 상당수도 충분한 논의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이들 중에서 "제법이네"라는 말이 나올 만큼, 실생활 속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거나 사회의 불합리한 부분을 바로잡는 '제대로 된 법안'들을 찾아내서 생생한 현장과 인터뷰를 통해 소개한다. [편집자말]
"너의 죄를 사하노라."

과거 크게 흥행한 드라마 여주인공의 이 대사는 지금 또 꾸준히 회자된다. 멀리 보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단순히 법률적 범죄로 한정했을 때,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죄를 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사면·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라는 헌법 79조 1항에 따라 사면권은 대통령만의 고유한 권한이 됐다.

사면권은 별다른 견제수단이 없는 아주 특수하고 특별한 권력이다. 군사독재 시기부터 사면권을 이용해 사법권을 무력화 시키는 각종 부당한 사례들이 있었다. 특히 이는 정치권과 재벌 대기업의 '검은 거래'로 이어졌다. 부정과 부패, 횡령, 배임, 비자금 조성 등의 반사회적, 반경제적 범죄를 저지른 기업인들은 벌을 받지 않았고, 똑같은 범죄를 또 다시 저질렀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자 대통령의 특별사면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커졌다. 국민들은 더 이상 대통령이 마음대로 재벌 총수들을 풀어주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대기업 지배주주, 경영자의 중대 범죄에 대한 사면권 행사를 제한하겠다"라며 특별사면에 엄격한 제한을 공약한 것도 같은 이유다. 그러나 상황은 또 다시 달라졌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회동에서 광복절 특별 사면을 언급했고, 김 대표는 경제인 사면을 요청했다. 이후에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박 대통령은 대기업 총수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식사를 했고, 그 자리에서 경제인들의 사면 요청을 받았다. '국민대통합'과 '경제활성화'를 명분으로 한 비리 재벌 총수들의 특별사면이 기정사실화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통령의 사면권을 일부 제한하는 법률 개정안이 발의됐다. 노웅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 7월 1일 대표발의한 '사면법 일부 개정안'이다. 대통령의 사면권한을 구체화 한 '사면법'을 일부 개정해 비리, 횡령, 배임 등 반사회적 범죄의 경우 사면이 불가능하게 하고,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사면심사위원회를 통해 사면 대상자를 선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사면권 제한 없는 현행법 고친다

최태원 SK회장 '법정구속' SK 그룹 계열사 자금 수백억 원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SK 그룹 회장이 3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1심 선고 공판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날 선고공판에서 최 회장은 징역 4년을 선고받아 법정구속됐다.
▲ 최태원 SK회장 '법정구속' SK 그룹 계열사 자금 수백억 원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SK 그룹 회장이 지난 2013년 1월 3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1심 선고 공판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날 선고공판에서 최 회장은 징역 4년을 선고받아 법정구속됐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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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사면법에는 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경우가 전혀 명시돼 있지 않다. 어떤 범죄행위라도 대통령이 마음을 먹으면 사면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면심사위원회가 있기는 하지만 대통령이 임명하는 법무부장관 소속이고, 위원장도 법무장관이 맡는다. 또 위원 9명 가운데 5명을 공무원으로 임명할 수 있다. 사실상 대통령 마음대로 사면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다.

노 의원이 발의한 법률 개정안에 따르면 뇌물, 횡령, 배임 범죄 등 반사회적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특별사면을 할 수 없도록 제한된다. 또 사면심사위원회를 대통령 소속으로 두고 위원장을 포함한 총 10명의 위원 가운데 6명을 국회(3명)와 대법원장(3명)이 임명한다. 여기서 사면 대상을 사면심사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결정하면서, 대통령의 권한을 견제할 수 있게 된다.

이 법안이 당장 개정돼 이번 광복절 사면부터 적용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최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재벌 총수 등 경제범 특별사면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54%로 과반을 넘었던 점을 감안하면 법안 개정이 탄력을 받을 수는 있다. 이 조사에서 사면 찬성은 35%였고, 11%는 의견을 보류했다. 최근 롯데 그룹의 경영권 다툼으로 재벌 총수 사면에 여론은 더욱 부정적이 되고 있다.

노웅래 의원은 "대통령의 자의적 사면권 행사는 사법권을 무력화 시키고 법치주의에 불신을 일으켰다"라며 "부패와 비리 등 범죄를 일으킨 사람의 특별사면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리 경제인들 사면은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발목을 잡는다"라며 "총수가 없다고 해서 그 회사가 문을 닫거나 엄청난 위기에 있는 것도 아니"라고 꼬집었다.

한편, 법무부가 최근 마련한 사면 대상자 초안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최 회장은 2013년 1월 회삿돈 횡령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2년 7개월째 수감 중이고, 김 회장은 지난해 2월 배임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의 형이 확정됐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설을 맞아 서민·생계형 사범 5925명을 특별사면한 바 있다.

"재벌 총수 사면, 국민들은 박탈감 느껴"
[인터뷰] '사면법 일부 개정안' 대표발의한 새정치민주연합 노웅래 의원

 노웅래 민주통합당 의원
 노웅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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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웅래 의원은 지난 2013년 1월 신세계 이마트에서 벌어진 사측의 직원 사찰과 불법적인 노조탄압, 불법파견 의혹을 제기해 비정규직들의 대규모 정규직화를 이끌어 낸 바 있다. 당시도 불법을 저지른 경영진들이 재판을 받았지만 처벌 수위는 미비했다. 노 의원은 소위 '가진 자'들에게만 법이 온정을 베푸는 모습이 반복되는 걸 지켜봤고, '법의 불평등'을 바로 잡기 위해 대통령의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다음은 노 의원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오는 광복절에 특별사면을 실시할 예정이다. 대규모 경제인 사면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면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
"어려운 경제상황에 생활이 어려운 생계형 서민을 사면해주는 것이라면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 광복 70주년을 맞아 국민대통합을 위한 사면을 한다면 당연히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국가발전'이나 '경제살리기'를 핑계로 부정부패, 반사회적 범죄를 일으킨 재벌 대기업 총수 사면을 거론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 비리 뇌물, 횡령, 배임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하여 특별사면을 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법률개정안을 발의했다. 어떤 취지인가?
"역대 정권마다 부정비리를 저지른 정치인이나 횡령, 배임, 분식회계 등 반사회적 범죄로 유죄가 확정된 재벌 총수들을 사면시켜 왔다. 특별사면은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고유권한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사회적 합의 없이 대통령의 자의적 판단으로 사용돼 오히려 국민적 반감을 일으켜 왔다. 특히 대통령의 사적, 자의적 사면권 행사는 사법권을 무력화 시키고 법치주의에 불신을 일으켰다. 그래서 부패와 비리 등 사회와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범죄를 일으킨 사람의 특별사면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대통령의 특별사면권이 불공정하게 사용되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 그동안 사면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으로 범죄 유형에 관계없이 적용돼 왔다. 특정 범죄에만 사면권 제한을 두는 건 오히려 역차별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나?
"그동안 잘못해 왔던 관행을 계속하자는 게 과연 역차별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난 2004년부터 10년 동안 40대 그룹 총수 일가가 실제 형을 살게 된 경우는 총 25건 가운데 3건이다. 나머지는 다 집행유예나 경미한 처벌을 받았다. 집행유예를 받은 경우에도 대부분 금방 사면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그런 범죄를 저지른 경제인들에게 특별사면이 계속된다면 힘없고 '빽'없는 국민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위화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건 국민통합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분열을 조장하는 일이다."

- 정부는 경제 활성화를 명목으로 경제인 사면을 실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그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전두환 정권 이후 '경제활성화'를 이유로 많은 기업인을 사면했지만 경제가 활성화됐다는 실증적인 증거는 하나도 없다. 이건희 회장이 사면 받으면서 한 약속이 다 지켜졌나? 그렇게 많은 재벌 총수들이 경제활성화를 약속하고 사면을 받았는데 지금 경제는 왜 이렇게 어려운가? 오히려 대기업들의 횡령이나 배임, 비자금 등의 비리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비리 경제인들에 대한 사면은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발목을 잡는다. 또 재벌 총수가 없다고 해서 그 회사가 문을 닫거나 엄청난 위기에 있는 것도 아니다."

- 법안이 아직 개정되지는 않았지만 그 취지에 따라서 이번 사면에서 제외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사가 있나?
"특정 기업인을 대상으로 법을 발의한 건 아니다. 다만 이번에 사면 대상자로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구자원 LIG 회장, 구본상 LIG넥스원 부회장 등이 거론되고 있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이미 밝힌 대로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사면인 건지 제대로 검토해야 한다. 최근 롯데그룹의 볼썽사나운 경영권 다툼을 보고 있는 국민들이 이런 재벌 총수의 사면을 원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 법률 개정 가능성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나?
"박 대통령은 대선 때 '대기업 지배주주, 경영자의 중대 범죄에 대한 사면권 행사를 제한하겠다'라며 특별사면에 엄격한 제한을 공약했다. 이것은 대다수 국민들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특별사면이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고유권한이지만, 그것이 자의적으로 남용되지 않도록 제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여야의 공감대도 충분하다. 대통령이 공약했고, 정치권이 공감하고, 국민들이 지지하는 상황에서 법안 처리가 당연히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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