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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대통령은 6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6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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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생중계가 막바지로 치닫던 그 시각, 스마트폰이 격렬하게 사이렌 소리를 울려댔다. 메르스 사태 초기 '낙타 주의'라는 애먼 대책을 내놨던, 국민안전처가 하필 대통령의 담화 발표 중간에 긴급재난 문자를 보낸 것이다. 내용? 설마 특이할 게 있었겠는가.

국민안전처가 '우리 일 열심히 하고 있어요'라고 홍보라도 할 요량이었는지, 아니면 청와대와의 긴밀한 공조(?)나 지시를 받았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 타이밍은 정말 기막히게 절묘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소설가 이외수 역시 그 시각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글을 적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발표하자마자 핸드폰에서 재난 경보가 두 번이나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대국민담화를 재난으로 간주하는 것 같아서 잠시 당혹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물론 국민안전처가 그런 반정부적인 일을 할 리가 없겠지만 쿨럭, 참 타이밍 한번 절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8.6일 현재 폭염특보 발령중! 농사일 및 야외활동 자제, 충분한 물마시기, 주변 노약자 돌보기 등 안전사고 유의'라고 국민안전처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국민이 어떻게 하라는 말만 적혀 있고 정부가 어떻게 하겠다는 말은 빠져 있네요. 정부는 재난문자 보내는 것으로 땡입니까."

타이밍은 절묘했지만, 내용도 형식도 엉망

국민이 폭염 속에 허덕이고 심지어 사망자까지 나오는 판국에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려대는 국민안전처도 문제지만, 스트레스 지수를 더 높이는 건 그 재난 문자와 경쟁을 하던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의 내용과 형식이었다.

기자와의 문답을 뺀 것은, 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재앙과도 같은 상황을 마주해야 하는 스트레스를 덜어 주려는 청와대의 배려라 헤아릴 수 있다. 십수 장에 가까운 내용을 박 대통령이 프롬프터로 읽어 내려간 것도 담화 내용을 국민에게 숙지시키려는 노파심의 발로라고 이해해 줄 수 있다.

그간 '유체이탈화법'이니 '박근혜 번역기'니 해서,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대통령을 국민이 얼마나 안타까워했던가. 기자와의 문답을 빼고, 프롬프터 내용만 열심히 읽은 것은 아마도 폭염 속에 불쾌지수가 높을 수밖에 없는 국민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덜어 보자는 대통령의 넓디넓은 아량의 발로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참을 수 없는 담화의 가벼움에 관해 몇 가지 꼽아보고자 한다. 휴가를 다녀와서 국정 하반기 철학을 국민에게 보고(라고 쓰고 하달이라 읽는)하고 각인시키기 위해 '붉은색' 옷을 입고 나온 대통령의 진심에 재를 뿌릴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일방적인 담화가 주는 폐해는 지적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번이 첫 번째 담화 발표도 아니고 말이다.

메르스 사태와 박근령 망언, 사과는 왜 안 하나 

첫째, 도대체 박근혜 대통령이 존경하는 국민은 누구인가. 담화문을 읽으며 박 대통령은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을 그렇게도 호명해댔다. 그것도 무려 7번씩이나. 드라마 <어셈블리>의 주인공인 국회의원 진상필 의원은 말했다. "존경의 뜻은 알고나 쓰는 거냐"고. "높을 존에 공경 공을 쓰는 글자"라고.

"이런 노력은 정부와 대통령의 의지만으로는 해낼 수 없는 것입니다. 모든 국정의 중심은 국민이고 혁신과 개혁의 동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옵니다. 국민여러분이 함께 손잡고 동참해 주실 때만이 나라와 가족과 개인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담화 말미, 박근혜 대통령이 읽어 내려간 내용이다. 좋은 개념어와 추상어들은 다 들어가 있다. 그러나 그 '존경'한다는 국민이 대통령의 철학에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은 찾아 볼 수가 없다. 무엇보다, 뒤늦은 국가안전처의 재난 문자를 발송을 반면교사 삼아 메르스 사태에 대한 책임과 사과, 재발 방지의 표명이 우선돼야 했다.

아니, 어디 메르스 사태뿐인가. 국정원 해킹 사태를 비롯해 유승민 정국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난항 등 메르스 사태 이후 난맥을 보인 국정 상황에 일언반구도 없다는 것은 국민을 존경은커녕 철저하게 무시하고 또 무시하는 태도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간 국민은 대선공약을 시작으로 대통령의 거짓말을 신물 나게 겪어야 했다. 말을 줄이고 자신이 할 말만 한다고 전부가 아니다. 존경을 운운하려면 그간의 의혹이나 난맥상에 대해 최소한의 사과라도 했어야 한다. 그 누구도 존경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노동개혁이 정말 '일자리'라고 생각하는가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이 TV 모니터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담화 발표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이날 박 대통령은 '경제 재도약을 위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담화를 통해 노동개혁과 공공개혁, 교육개혁, 금융시스템 개혁의 필요성을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 담화 지켜보는 시민들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이 TV 모니터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담화 발표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이날 박 대통령은 '경제 재도약을 위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담화를 통해 노동개혁과 공공개혁, 교육개혁, 금융시스템 개혁의 필요성을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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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동생인 박근령씨의 국제적인 망발은 어떻게 할 건가. 도대체 언제까지 모른 체 할 건가. 아니 모른 체 해서 될 일인가. 박근령씨는 일본이 피폭 70주년, 한국이 광복 70주년을 맞은 이 시기에 하필 일본까지 건너가 격이 떨어지는 인터넷 방송과 대담을 했다. 내용은   거론하고 싶지도 않을 만큼 목불인견 수준이다.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체결한 '한일협정'의 정당성을 운운하는 대목에선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다 언니인 박근혜 대통령과의 불화에서 비롯됐다고 보기에도 무참한 수준이다. 연좌제를 덧씌울 생각은 없다. 그럼에도 외교적으로 중요한 시점에 대통령의 동생이 일본으로 날아가, 망언의 연쇄에 가까운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 내용이 온 천하에 공개됐다. 그렇다면 청와대 차원의 해명이 필요한 것 아닌가. 설마, 이런 동생의 망언도 임시공휴일 지정과 같은 미봉책으로 덮으려는 건 아닐 거라 믿고 싶다.

셋째, 노동개혁이 정말 '일자리'라고 생각하는가. 아니, 노동문제가 정말 개혁해야 할 대상이라고 보는 건가. 그렇다면 왜 그 노동의 또 다른 주체가 될 대기업들은 건드릴 생각을 하지 않는가. 최저임금이 고작 6000원대인 이 나라에서 실업급여를 10% 올리고, 그 기간을 30일 연장하는 게 뚜렷한 해결책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양대 노총의 반발이 극심한 이때 국민에게 "비정규직 보호"니 "노사정 대타협"이니 철지난 얘기들만 하고 있는 박 대통령. 청년들에게 "중동으로 가라"던 목소리가 아직까지 생생한데, 허울뿐인 몇몇 개선책이나 이미 폐해가 지적되고 있는 임금피크제를 역설하는 대목은 안타까울 따름이다.

넷째, 8.15 사면에 대해선 왜 언급하지 않는가. 이미 '역대 최대 규모의 특별 사면'이란 보도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 지 오래다. 최태원 SK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등은 이미 확정된 분위기다. 반면 정봉주 등 정치인들에 대한 사면은 갑론을박이 분분하다. 그건 국민의 시각도 마찬가지다.

확인됐거나 지표화되지도 않은 경제인들의 사면을 투자활성화를 이유로 들어 대대적으로 단행하는 이 정부의 철학이 진심 궁금해진다. 거기다 박근혜 정부 국정 후반의 경제 정책 드라이브를 위해 대선 공약을 '셀프 파기' 하면서까지 단행하는 특별 사면에 대해 반대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공약 파기범'이란 표현이 등장하는 이유다.  

다섯째, 야당과의 대화에는 영영 나서지 않을 셈인가. 국민은 이미 '유승민 정국'이 불러온 참상을 확인한 바 있다. 대통령이 역정을 내고, 여당이 넙죽 엎드리고, 야당이 끌려가는 지난한 한국 정치의 현주소를 말이다. 그 중심엔 물론 박근혜 대통령이 있었다.

국민에게 도와 달라 읍소 아닌 읍소를 해 볼 수는 있다. 그러나 야당 또한 정국의 파트너가 분명하다. 그 정책들을 조율하는 것도 바로 야당이다. 비록 말도 많고 탈도 많은데다 무능력하다고 찍힌 야당이지만, 그 야당의 일부 목소리는 분명 민의를 대변하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도 언제까지 그렇게 '나 홀로 고고한' 여왕폐하 정치를 계속할 텐가. 그러고도, 국민을 존경한다고 일곱 번이나 본인의 목소리로 발성할 수 있는 건가. 혹시, 이번 담화 역시 기존의 공약 파기와도 같은 '거짓말 정치'의 일환인 건가.

○ 편집ㅣ최유진 기자



태그:#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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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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