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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주노동자의 노동 3권을 인정해야 한다며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주노조)가 서울지방노동청을 상대로 한 노조설립신고서 반려처분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를 확정지었다. 판결을 듣고 나온 이주노조 관계자들은 소송을 시작한 지 10년만에 나온 결과에 환호하며 만세를 외쳤다.
 25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주노동자의 노동 3권을 인정해야 한다며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주노조)가 서울지방노동청을 상대로 한 노조설립신고서 반려처분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를 확정지었다. 판결을 듣고 나온 이주노조 관계자들은 소송을 시작한 지 10년만에 나온 결과에 환호하며 만세를 외쳤다.
ⓒ 박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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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일 자로 일주일째 이주노조가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무덥고 습한 날씨 속에 농성을 벌이고 있다. 매일 네팔, 방글라데시, 베트남, 캄보디아, 버마 등 여러 이주노동자들이 찾아와서 힘을 보태고 있다. 푹푹 찌는 더위에 연신 땀이 흘러내리지만 이주노조는 이번에는 반드시 설립필증을 받고야 말겠다는 태도다. 노동부는 왜 노조 설립필증을 내주지 않고 있는 것일까?

처음엔 미등록체류자, 이번엔 정치운동 핑계

10년 전 이주노조가 설립되었을 때, 대다수 성원들은 체류기간이 초과하여 비자가 만료된 미등록 노동자들이었다. 헌법에 의하면 노조 설립은 신고만 하면 되는 신고제이고, 노조법상으로도 국적이나 사회적 지위에 따른 별다른 제약은 없으니 설립신고는 문제없을 것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당시 서울노동청은 미등록 체류자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없다며 설립신고를 '반려'했다. 노조 설립은 사실 정부의 허가제였던 것이다.

그때부터 소송이 시작되었다. 2007년 2월에 서울고등법원은 기념비적 판결을 내렸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역시 임금과 그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살아가는 노조법상 근로자이므로 노조 설립을 할 수 있다는 판결이었다. 그러나 노동부는 곧바로 대법원에 상고를 했다. 시간끌기용이 뻔했다. 대법원에서는 주심 대법관이 세 번이나 바뀌면서까지 이 사건이 묵혀졌다. 장장 8년 4개월! 김황식, 양창수 대법관에 이어 사건을 넘겨받은 권순일 대법관의 주도로 6월 25일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재판관 13명 중 12명 다수 의견으로 고등법원 판결을 재확인한 것이다.

결국 10년 만에 이주노조 합법화 판결이 내려졌으나, 노동부는 이번엔 '정치운동' 이유를 들고 나왔다. 노조법에 '주로 정치운동을 목적으로 설립하는 경우'에 설립신고를 반려할 수 있게 되어 있다며, 이주노조 규약에 들어 있는 '단속추방 반대, 이주노동자 합법화, 고용허가제 폐지' 등을 문제 삼았다. 10년 전엔 하지 않던 얘기를 이제야 꺼내다니 참 비겁하기 그지없다. 이주노조는 총회를 열어, 핵심 내용은 살리되 문구를 가다듬어 수정된 규약을 다시 제출하였다. 그러자 노동부는 다시금 '이주노동자 합법화', '노동허가제 쟁취'가 정치운동에 해당할 수 있다며 보완통보를 해 왔다. 노조설립을 실질적으로 허용하지 않겠다는 태도라고밖에 볼 수 없다.

과연 '정치운동'은 무엇인가

노조법에 있는 정치운동 관련 규정의 취지는 정당 등에 노조가 종속되는 것을 막아서 자주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즉 노조가 정치세력의 하부단위로만 기능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이 조항이 적용되어 노조 설립이 반려된 사례도 알려져 있지 않다. 이주노동자들은 투표권도 없고 정당에 참여할 수도 없다. 그런데 무슨 정치운동 운운한단 말인가.

한국 내 여타 노조들의 강령을 예로 들어 보자. 한국노총 강령 제5조는 "우리는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을 결합하여 노동자의 경제, 사회, 정치적 지위를 개선한다."고 되어 있다. 민주노총 강령 제2조는 "우리는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실현하고 제 민주세력과 연대를 강화하며, 민족의 자주성과 건강한 민족문화를 확립하고 민주적 제 권리를 쟁취하며 분단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실현한다."고 아예 정치세력화를 명시하고 있다.

최대 산별노조인 금속노조 강령에는 "우리는 초국적 자본과 독점자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다수의 빈곤을 기반으로 소수의 부를 보장하는 정치, 경제, 사회구조를 개혁하고 평등사회건설을 위해 투쟁한다.", "우리는 노동자 중심의 정치세력화가 중요함을 인식하고, 노동자·민중의 정당 강화를 통해 노동자·민중 정권 창출을 위해 투쟁한다.", "우리는 우리의 국토를 강점한 미군을 조속히 철수시키며,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원칙에 기초해 통일조국을 건설하기 위해 투쟁한다." 등이 규정되어 있다.

결국 노동부의 정치운동 잣대를 들이대면 이러한 노조 강령들은 전부 정치운동에 해당되어 설립신고 반려 사유가 된다. 그러니 정치적인 요구를 하거나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활동, 노동자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을 위한 대안을 추구하는 활동 모두를 노조법상의 정치운동으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 나라 거의 모든 노조들을 해산시켜야 할 것이다.

이주노조가 '주로' 이주노동자 합법화와 노동허가제 쟁취 투쟁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이를 지향으로 가지고 촉구하는 활동을 하지만 사실 이주노조 활동의 많은 부분은 임금체불, 산업재해, 사업장 변경, 퇴직금 미지급, 사업주의 폭행 등에 대한 상담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이다.

노동부가 이러한 내용을 모르지 않을 것인데 이주노조 규약을 물고 늘어지는 이유는 추측건대, 여전히 이주노조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정부 기류를 반영하는 것 같다. 노조 설립에 대해서 법무부가 완강하게 반대를 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또한 법무부는 지난 10년 간 이주노조 간부들을 '표적단속'해서 강제추방시켜 온 탄압의 장본인이기도 하다. 법무부가 노동부 뒤에 숨어서 이주노조 설립을 끝까지 방해하고 있다면 참으로 비열하고 뻔뻔한 일이다. 부서의 영문 이름에 유일하게 Justice(정의)를 쓰고 있는 법무부가 이주노동자 인권이라는 정의에 반하는 작태를 벌이고 있고, 대법원의 판결마저 부정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노조설립마저 인종차별

무수한 자료, 증언, 보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주노동자는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 심한 노동강도에 시달리며 일하고 살아간다. 사업장 밖에서도 차별적 시선은 늘 따라다닌다. 애초 한국사회가 필요해서 부른 노동력인데도, 사장님들과 정부는 그들을 가장 하층계급에 고정시켜 계속 부려먹으려 한다. 그렇게 해 놓아야 내국인 노동자들의 노동조건도 하락시키기 편리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가 임금과 고용을 개선하고 권리를 신장하며 정치, 경제, 사회적 지위를 향상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반드시 필요하다. 혼자서는 안되니 집단적인 힘을 발휘해야 하고 오랜 투쟁의 결과로 노조를 법으로 인정하게 된 것이 현대의 노동법이다.

그런데 정부는 겉으로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노동법이 다 적용되는 것처럼 포장하면서도, 이렇게 노조설립과 같이 직접적으로 조직화하고 세력화되는 것은 결사적으로 막으려한다. 전형적인 이중잣대이자, 인종주의다. 정부가 이주노조 설립을 훼방하는 것을 인종주의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다른 노조는 되는데, 왜 이주노조만 안되는 것인가? 다른 노조들은 정부 정책 비판도 하고, '노동해방'을 위해 투쟁하고 대안적 제도를 쟁취하자고 할 수 있어도 이주노동자는 할 수 없는 것인가? 왜 노조설립마저 차별과 배제를 당해야 하는가? 이주노동자는 순종과 복종만 해야 하고 잘못된 정책에 대한 목소리를 내서는 안 되는가? 정부는 이에 답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제 얼굴에 침 뱉지 말고 설립필증 발부해야

지난 10년간 이주노조 간부 표적단속 사건들과 설립신고 문제에 대해서 UN이나 ILO에서 한국정부에 많은 권고를 해왔다. 못해도 10여 차례 될 것이다. 그때마다 정부는 근로기준법, 고용허가제법 등에서 이주노동자를 차별하지 않는 규정을 두고 있으며 합법적 노조설립과 활동은 보장한다고 말해 왔다. 그런데 대법원이 이주노조가 합법적이라는 판결을 했는데 이를 수용하지 않고 설립신고를 반려한다면 그야말로 제 얼굴에 침뱉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작태다. 정부는 국제적 욕을 먹더라도 노조는 끝내 허용 안 하겠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게 그리 쉬운 게 아니다. 이주노동자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고, 이주노동자들이 있는 한 그들에 의한 노동조합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한테는 지금 아무런 법적 정당성도, 상식적 합리성도 없다. 최근 대전·충북지역 하청 노동자들이 결성한 '장그래 꽃분이 노동조합'의 설립신고서에 대해서도 규약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지위를 향상..' 부분에 '정치'가 들어갔다고 대전고용노동청이 반려했다고 한다. 도대체 정부는 어디까지 제 얼굴에 침뱉기를 할 것인가?

덧붙이는 글 | 정영섭(이주공동행동 공동소집자)
이주공동행동은 민주노총,민변노동위원회, 지구인의정류장 등 30여개 시민,사회,노동,이주인권 단체들이 함께 활동하는 연대모임으로서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 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의 약칭입니다.)



태그:#이주노조, #설립신고, #인종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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