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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밤에 누군가 담장을 넘고 있다. 이런 장면을 보고도, 나는 한때 "도둑이야!"라고 소리쳐도 좋을지 고민했다. 만에 하나 도둑이 아니라, 집에 열쇠를 두고 나온 주인이 자기 집 담을 넘는 거라면, 허위사실을 공표한 셈이기 때문이다. 내 의식은 가위에 눌려 있었다.

나는 지난 2013년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검찰에 의해 기소당해 1심에서 벌금 500만 원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굿~! 한미 FTA를 빨리 날치기하라고 단식했던 정○○ OUT!" 이라는 누군가의 트윗을 리트윗한 게 공직선거법 250조 2항의 허위사실 공표죄에 해당한다는 것이 기소 이유였다.

형이 확정되면 시의원직 상실에 5년간 피선거권을 박탈당해야 했다. 리트윗 하나에 대해 이렇게 끔찍한 판결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경악했다. 누가 담을 넘어도 "도둑이야!"라고 외치지 못할 정도로 의식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지난 2011년 11월 13일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의 국회 비준을 앞두고 여야가 격렬히 맞서고 있을 때, 당시 정아무개 의원은 국회 폭력이 사라져야 한다며 한미FTA의 여야 합의 처리를 촉구하는 단식 농성을 벌였다.

정 의원은 단식 농성 열흘째인 22일 한미FTA 국회 비준을 이른바 '날치기'로 처리하기 위해 열린 본회의에 출석하여 의사 정족수를 보태준 뒤 기권표를 던졌다. 날치기에 반대하는 단식 농성을 한 뒤, 날치기를 위해 열린 국회의 의사정족수를 채워주는 모순된 행위를 한 것이다. 문제가 된 트윗은 이를 비꼬아서 "한미 FTA를 빨리 날치기하라고 단식했던 정○○"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검찰과 1심 재판부는 "정아무개는 한미FTA의 합의에 따른 비준 동의와 국회에서의 몸싸움 방지를 위한 국회법 개정을 위하여 단식한 사실이 있을 뿐, 한미FTA를 빨리 날치기하라고 단식한 사실이 없으므로 피고인이 리트윗한 위 트윗은 '허위사실의 공표'에 해당한다"며 유죄 판결을 내렸다. 그 트윗은 누가 보더라도 정 의원의 모순된 행동을 비꼰 풍자적 표현임에도, 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해 허위사실 공표라고 판결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항소심 재판부는 이성과 상식에 따른 판결을 내렸다. 항소심 재판부는 진술이 사실인가 의견인가 구별할 때는 "언어의 통상적 의미와 용법, 입증 가능성, 문제 된 말이 사용된 문맥, 그 표현이 행하여진 사회적 정황 등 전체적 정황을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례를 바탕으로, 그 트윗 문구는 "문맥에 비추어 보면 실제 사실을 전달하거나 보고하기보다는 반어적이거나 희화적인 견해 내지 평가를 표현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나 자신에게도 매우 다행스러운 판결이지만, 무엇보다 대한민국이 풍자의 자유가 있는 나라임을 확인해준 판결이기에 머리 숙여 감사드렸다.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조희연 교육감

지난해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고승덕 변호사의 미국 영주권 의혹을 제기해 1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 받은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지난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2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항소심 출석하는 조희연 지난해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고승덕 변호사의 미국 영주권 의혹을 제기해 1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 받은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지난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2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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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똑같이 공직선거법 250조 2항을 위반한 혐의로 지난 4월 23일 1심에서 유죄이자 당선 무효형인 5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의 경우 또한 우리의 의식이 가위눌리도록 만드는 사건이다.

조 교육감은 선거운동 기간 "고승덕 후보의 미국 영주권 보유 의혹을 해명해달라"고 요구했는데, 검찰과 1심 재판부는 이 요구가 '고 후보가 미국 영주권자임'을 '암시'했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가정법을 이용한 허위사실 공표라는 논리도 나왔다. 나를 기소할 때는 풍자적 표현의 본뜻을 외면하고 억지로 축자 해석해 허위사실 공표죄를 걸었던 검찰이, 이번에는 명백한 문자 표현을 외면하고 그 표현이 '암시'하는 것을 걸어 유죄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어떤 때는 귀에 걸어서 축자 해석하고, 어떤 때는 코에 걸어서 '암시'를 단죄한다면, 대한민국의 검찰은 그 누구의 어떤 발언도 유죄로 둔갑시킬 수 있을 것이다. '걸면 걸 수 있다'는 검찰의 논리가 관철될 때, 누구도 감히 "도둑이야"를 외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환경은 도둑이 활보할 공간을 넓혀줄 것이며, 선거에서 충분히 검증을 거치지 않은 후보가 당선되어 요직을 맡을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다.

나는 그래도 이 나라의 사법부에 희망을 걸고 싶다. 조 교육감에 대한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두 차례 공판이 진행됐고, 1심에 적용한 법리에 대한 변호인 측의 반박이 제기됐다. 이제 결심과 선고 공판이 남았다. 나의 사건 항소심에서 재판부가 풍자의 자유를 시민에게 돌려주었듯, 조 교육감의 항소심에서는 재판부가 선거운동 과정에서 검증의 자유를 지켜주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문수 시민기자는 서울시의회 교육위원장입니다.



태그:#조희연 서울시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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