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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할머니의 연세는 일흔 여섯이다. 많은 어르신들이 그러하듯 호적 나이와 실제 나이가 다르다. 할머니는 정확한 나이를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여든이 넘었다고 하신다. 생활은 해피라 불리는 강아지와 단둘이 산다.

할머니의 얼굴과 몸에는 크고 작은 상처들이 많다. 겨우 2~3센티도 안 되는 문턱 때문에 자꾸 넘어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히 큰 병은 없다. 다만 생노병사(生老病死)중 노(老)라는 긴 터널에서 병사(病死)를 만나는 중이다.

나이가 드니 질병이 없어도 신체 기능이 저하된다. 눈이 침침해 진작 돋보기를 썼는데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 뿐만 아니라 귀도 잘 들리지 않고, 손이 거칠어지며 촉감도 예민하지 않다. 골격과 근육이 퇴행하면서 일상생활에서 사고들이 잦게 일어난다. 무엇보다 기존의 주택이 노년의 삶을 고려하지 않고 지어져 노인들에게는 불편하고 위험하다. 할머니의 얼굴이나 몸 여기저기에 상처가 많은 이유다.

지난번 만날 때는 무릎이 크게 다쳐 고름 딱지가 앉았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졌다고 한다. 문제는 이렇게 사고가 나서 거동이 불편할 때다. 옆에서 누구라도 보살펴줄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도 없다. 어떤 때는 움직이기 귀찮아 끼니를 거르기도 한다. 그래도 김 할머니는 자신은 해피(강아지)라도 있어 의지가 된다고 말한다. 현재 저소득층 1인 가구의 경우 65세 이상 노인 비율이 무려 44.3%다. 다른 이와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공동의 거주공간을 조성하는 일이 정책적으로 필요하다.

최소한의 주거환경, 사회 안전망으로 강화돼야

무릎이 약해지면서 좌식 변기에 쪼그리고 용변을 보기가 더 이상 힘들어, 입식으로 직접 개조했다.
▲ 김할머니의 화장실 무릎이 약해지면서 좌식 변기에 쪼그리고 용변을 보기가 더 이상 힘들어, 입식으로 직접 개조했다.
ⓒ 강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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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신체 특성상 인지력이 떨어지면서 끼니처럼 먹는 약들의 오남용 문제나 집안일과 가사일 등 일상의 작은 움직임까지도 쉽지 않다. 그리고 좌식 위주의 생활도 사고를 유발하는 데 한몫을 한다.

노인세대에 익숙한 좌식 문화의 경우, 바닥의 이불을 펴거나 개킬 때 또는 누웠다가 일어나는 동작에서 어지럼증이나 현훈증의 위험이 있다. 마당으로 이동도 힘겹다. 김 할머니의 집의 경우 제법 높은 마루가 있다. 젊었을 때야 가뿐하게 올라 다녔지만 지금은 힘에 부친다. 그래도 할머니는 하루에 몇 번이고 마루를 넘어 부엌과 화장실을 다녀야 한다.

화장실도 심각한 상황이다. 지금은 흔치 않는 재래식 화장실로 쪼그려 앉아서 용변을 봐야 한다. 무릎이 좋지 않은 할머니는 의자를 가져다 놓고 좌식으로 개조했다. 이런 할머니에게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갈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자신이 죽으면 딸에게 집을 물려줘야 한다며 집의 권리관계가 복잡해 집을 지켜야 한단다. 또 당신에게는 자식이 있다며 요양병원 이야기는 경계한다. 아마도 가족에게 버려진 노인이 가는 곳으로 인식하는 듯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오랜 시간 살아와서 정든 이 집이 좋다. 비록 다른 사람 눈에는 허름하게 보이더라도, 자신에게는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다리 쭉 뻗고 쉴 수 있는 안식처다. 그렇다면 혹시 집이 위험하거나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니, 이 정도면 살만하다고 한다. 하지만 노인 대부분이 집에서 사고를 당한다. 한국 소비자원의 고령자 안전사고 사례 분석을 보면 안전사고의 발생장소 가운데 '집'에서 발생한 사고가 전체의 61.5%를 차지할 만큼 높다. 김씨 할머니의 경우도 자신의 얼굴이 상처투성이고 무릎이 패일 정도로 넘어졌는데도, 자신의 집이 세상에서 가장 편하다고 믿는 것이다.

오래 살아와서 익숙한 또 어쩌면 가장 안전하다고 믿는 집에서 심각한 부상을 당하는 것을 보니, 노인 당사자의 안전 감수성을 깨우는 교육이 요구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씨 할머니처럼 집에서 넘어지고 미끄러져서 생명까지도 위협받는 집들은 주거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개인의 삶이 존중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주거환경이 사회 안전망으로 강화되어야 한다.

노년의 삶에서 건강한 자립생활은 중요하다. 주택개조를 통해 사고가 예방된다면 자신이 살던 집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 비용도 감소가 된다. 개인의 의료비 뿐 아니라 국가 입장에서도 사고를 당한 노인들의 장기 입원과 치료비용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노년의 삶에서 집은 행복의 기본 전제이다. 안식처로서의 기능과 이웃관계 및 사회생활의 토대가 된다. 특히 집은 자신의 기억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자존감과 정체성 그리고 삶의 존엄까지도 결정된다.

노인들의 주거를 개조할 때 우리가 꼭 지켜야 할 것은 개개인의 삶의 품격을 기억하는 일이다. 행복의 척도는 꼭 경제적인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랜 손때가 묻은 주택을 개조하고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하면 삶의 질을 더욱 높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풍족하든 풍족하지 않던 삶의 품격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참고: 2014년 주거실태조사 연구 보고서
2012년도 고령자 안전사고 사례분석 /소비자안전센터

덧붙이는 글 | 강미현씨는 건축사이자 (사)전북주거복지센터 대표입니다. 이 기사는 새전북 신문에도 실립니다.



태그:#노인주거, #주택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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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통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집을 짓고 건축가를 만나라(효형출판)저자, 건축스튜디오 사람 공동대표, 건축사사무소 예감 cckan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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