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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짓는 냄새가 온 동네에 가득하면 아이들은 노는 것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간다. 낮 시간 동안 밖에 나갔던 가족들은 함께 밥을 먹으며 서로의 안녕을 확인한다. 모락모락 김이 나던 하얀 밥 그리고 된장국. 오랜 시간이 흘러도 '집'하면 떠오르는 것은 함께 먹던 밥과 가족이다. 집과 밥과 가족. 집은 행복의 다른 이름이다.

집을 생존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겨울에 보일러 가동을 못해 전기장판으로 겨울을 나는 사람들. 온수가 아닌 찬물로 겨우 설거지를 하는 사람들. 다리에 힘이 풀려 자신의 집 마루에서 떨어져 다치는 노인들, 그런 이웃들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 일부 장애인도 그 가운데 하나다.

집으로 가지고 갈 수가 없는 전동휠체어는 밤새 누구나 들락이는 계단실에 놓여 있어 분실될까 봐 노심초사하게 된다.
 집으로 가지고 갈 수가 없는 전동휠체어는 밤새 누구나 들락이는 계단실에 놓여 있어 분실될까 봐 노심초사하게 된다.
ⓒ 강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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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사용인 A씨는 다가구 주택 1층에 살고 있다. 1층이라지만 그의 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건물 출입구에서 4개의 계단과 복도를 거쳐야 한다. 계단이 있기 때문에 휠체어 이동이 불가능하다. 외부 활동을 마치고 집에 오면 휠체어는 건물 출입구에 두고 목발을 이용해서 집으로 이동한다. 이때 혼자 힘으로는 할 수가 없어 항상 누군가가 도와주어야 한다.

휠체어 장애인뿐 아니라 비장애인도 열고닫기 힘든 화장실 구조.
 휠체어 장애인뿐 아니라 비장애인도 열고닫기 힘든 화장실 구조.
ⓒ 강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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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의 화장실은 비장애인도 문을 열고 닫기 힘든 구조다. 불편해서 고치고 싶어도 나중에 나갈 때 원상복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중으로 들어갈 돈이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냥 불편한 채 집에 몸을 맞춰 살고 있다.

그렇다면 집을 옮기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다. 현재 그는 LH에서 운영하는 매입임대 주택에 살고 있다. 저소득계층의 주거안정을 위한 LH의 주거복지 사업의 일환이다. 소득이라는 '돈'으로는 맞춤형 주거일지 몰라도 맞춤형 주거복지 실현을 논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그 집 아니면 갈 곳이 없는 A씨의 근심거리는 건물 출입구에 세워 두어야 하는 비싼 전동 휠체어가 밤새 도난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다.

최소화한 난방 그리고 전기장판으로 겨울을 보냈다 경직이 심한 그에게 겨울은 힘든 계절이다.
 최소화한 난방 그리고 전기장판으로 겨울을 보냈다 경직이 심한 그에게 겨울은 힘든 계절이다.
ⓒ 강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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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휠체어 사용인 B씨의 집은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몸의 경직이 심해서 따뜻하게 생활해야 하는데 (따뜻이라고 표현하지만 보일러 가동은 최소화를 하고 전기장판으로 생활한다. 휠체어에서 생활하는 그에게는 전기장판보다는 공기가 따뜻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그런 점에서 겨울철 다른 집보다 난방이 불리하다.

도로변에 위치한 현관-주차를 금지한 안내문과 시설물이 보인다.
 도로변에 위치한 현관-주차를 금지한 안내문과 시설물이 보인다.
ⓒ 강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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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다행인 것은 도로에 현관이 면해있어 휠체어를 타고 집에 들어갈 수가 있다. 휠체어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하기에 그에게 휠체어는 장비가 아닌 신체의 일부다. 하지만 현관이 도로에 면해 있다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주차금지 표시에도 집 앞에 주차하는 사람들이 비일비재하다.

그는 최근 이사를 계획 중이다. 수급비 85만 원으로는 집세 23만 원을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LH의 매입다가구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보증금 200만~300만 원이라는 목돈을 마련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매입다가구보다 보증금이 다소 저렴한 기존주택전세임대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장애인에게 좋은 집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부디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아서 성공적으로 이사를 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집을 둘러싸고 행복과 생존이 오간다. 우리 사회의 빈곤 그리고 양극화가 심각한 이유이다. 집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두가 살 만한 집에, 살면서 행복한 집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개개인에게 맞춤형 주거복지가 지원되어야 한다. 집에 대한 개념과 접근 방식이 달라져야 하며 공급 위주의 정책을 넘어 삶의 질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서류상 내 집이 아니라도 편히 살 수 있는 집, 집을 살 수 없는 사람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집이 있어야 한다. 경제 가치를 최고라 여기는 지금 사회에서 남들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어떻게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 총체적 접근이 필요하다. 집이란 단순히 사고파는 상품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삶의 필수품이기 때문이다.

집이 행복의 이름이 되기 위해서는 소유가 아닌 존재로서의 집이 되어야 한다. 집은 삶의 태도이며 자신의 본질이 지향하는 바대로 사는 삶이다. 그것이 보편적 주거복지라고 나는 믿는다.

그럼에도 취약계층의 주거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 그 관심이란 것이 돈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잘 사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가는 작은 행동을 함께 하자는 것이다.

집. 모든 사람에게 생존이 아닌 희망이란 이름으로만 기억되길 바란다.


태그:#주거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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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통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집을 짓고 건축가를 만나라(효형출판)저자, 건축스튜디오 사람 공동대표, 건축사사무소 예감 cckan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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