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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다.
▲ 표지 표지이다.
ⓒ 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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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거주하는 재일동포 2세 교수가 조선(한국) 미술가를 조명한 책을 출간해 눈길을 끌고있다.

지난 11일 낮 서울 인사동 한 전시장에서 우연히 만난 한 작가가 한 권의 책을 건넸다. 오래전에 작고했거나 현존한 조선 미술가들을 디테일하게 연구 조명했다는 점에서 좋은 책이었다. 지하철, 버스, 집, 사무실 등에서 틈틈이 시간을 내 읽었고, 글로 남겨야 하겠다는 생각에서 글을 남기기로 마음먹었다.

1951년 일본 도쿄에서 출생한 재일조선인 2세인 도쿄게이자이대학 현대헌법학부 교수가 지은 <나의 조선미술 순례>(반비, 2014년 11월)는 이미 세상을 등진 화가나 실존한 화가들을 만나 대화하면서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미학을 조명한 책이다.

현존작가 신경호, 정연두, 윤석남, 미희(나탈리 르무안) 등과 이미 세상을 떠난 신윤복과 이쾌대 등의 삶의 철학을 조명했다. 또한 5.18의 증언자이자 군사독재시대 정치탄압의 피해자 홍성담 작가와 파독 간호사 출신 송현숙 작가도 조선 미술사에 빼놓지 못할 미술가이기에, 작가가 이미 과거에 만나 해놓았던 인터뷰를 축약해 다뤘다.

저자는 현존 작가와는 시간을 내 대화를 했다. 대화의 주제 중 하나는 항상 '가족'이었다 우리는 무엇인가, 민족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필연 가족에 관해 얘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존한 4명의 작가와 나눈 대화는 하나로 이어진 '가족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5.18을 목격한 화가 신경호(1949년 광주 출생) 전남대 미술대 교수를 '긍지 높은 촌놈'으로 표현했다.

"5.18 이전에는 이 근방(도청)에서 부랑자는 구두닦이 아이들의 모습을 많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도 시민군에 가담해 싸웠고 희생당했는데...그들의 주검은 어디에 버려졌는지 지금까지 찾아 내지 못했어요. 지인이나 친인척이 없어 아무도 제대로 찾아보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본문 신경호 화가의 발언 중-

신 화가는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5.18의 진실을 예술적으로 증언하거나 표현하는 진정한 작품은 없었다고 꼬집고 있다.

"물론 저도 하지 못했습니다. 5월을 그린 화가는 많이 있어도 그 현장의 치열한, 그야말로 죽음을 목전에 둔 투사들의 절규를 화면에 담아내지는 못했습니다. 미술가들이 그 현장에 없었으니까요. 도청 안에 화가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마 그 공간에 가장 근접해 있던 친구가 홍성담일 겁니다." -본문 신경호 화가의 발언 중에서-

저자가 '완고한 맏아들'로 압축한 정연두(1969년 경남 진주 출생) 작가는 피사체가 되는 일반시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소통을 하면서 작품을 만든다. 정 작가는 예술이 가진 커뮤니케이션의 힘이 다른 어떤 매체보다 강하고 독특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정연두라는 인물 안에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근대인의 뜨거운 마음과 탈근대(포스트모던)를 살아가는 세대로서 '깨어 있는 시선'이 공존하고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가 '우아한 미친년'으로 칭한 윤석남(1939년 중국 만주 출생) 작가는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 페미니스트 화가 1세대로 불린다. 그의 화두는 어머니다. 어머니를 통해 이 시대 여성의 상을 대변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첫 개인전을 연후, 가부장적 권위에 차분하면서도 서늘한 시선으로 대응하는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에게 예술가란 바로 '지상으로부터 20cm 정도 떠 있을 수 있는 사람'이다. '너무 높으면 자세히 볼 수 없고 현실 속에 파묻히면 좁게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저자가 '분열이라는 콘텍스트'로 칭한 월북화가 이쾌대(1913년 경북 칠곡 출생)는 도쿄제국미술학교를 다녔고, 일제강점기 때 이중섭, 문학수 등과 함께 신미술협회를 창립했다. 해방공간에서는 조선미술동맹 등 진보적 미술조직에서 활동했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북조선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한 시기에 자발적으로 인민군 쪽에 가담했다.

조선미술가동맹에 가입한 그는 유엔군이 서울을 탈환했을 때, 인민군과 함께 북으로 퇴각하던 길에 붙잡혀 부산 포로수용소에 갇힌다. 1953년 휴전협정이 발효되면서 포로교환이 이루어지지만, 이쾌대는 남쪽에 있는 가족 품이 아니라 북쪽의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을 선택한다. 집단과 개인, 서양화의 정통적인 묘사법과 조선의 민족적묘사법, 두 가지가 이쾌대라는 한 사람 화가 속에 분열된 채로 상극하고 있다.

'성별조차 초월한 이단아' 혜원 신윤복(1758년 출생)은 '도화서 화원' 신한평을 아버지로 두고 화원으로 활동했다. 양반층의 풍류, 남녀가 춘정, 유녀도 등 서민사회를 다룬 그림을 많이 남겨 김홍도, 김득신과 더불어 조선의 3대 풍속 화가라고 부른다. 화려하고 과감한 색채와 유려한 선묘, 사람의 시선을 끄는 구도가 특징이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존재감이 흐렸던 여성을 작품에 본격적으로 등장시키기도 했다.

국보 135호로 지정된 '혜원전신첩'에 포함된 '단오풍정', '월하정인' 등과 우리 회화사에서는 유례가 없는 여성 초상인 '미인도'가 대표적 작품이다. 신윤복의 작품은 우리 시대를 뛰어넘는 자유로운 상상 그리고 성별조차도 뛰어 넘나드는 상상으로 이끌어 준다는 점이 중요하게 느껴진다.

'이름이 많은 아이'인 미희(1968년 부산 출생) 작가는 나탈리 르무안, 조미희, 김별, 기무라 별 등의 이름으로도 활동했다. 68년 태어나자마자 이듬해인 69년 벨기에로 입양됐다. 정확히 여권에 적힌 이름은 미희=나탈리 르무안(Mihee=Nathalie Lemoine)이다. 국적은 벨기에에, 혈통의 반은 일본인이다.

10년 이상 한국에 거주한 경험이 있지만 우리말을 능숙하게 사용하지 못한다. 김치도 먹지 못한다. 그렇기에 미희는 더더욱 '우리'이며 그의 미술은 '우리 미술'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브루셀, 서울, 몬트리올, 베를린 그리고 어디로든 옮겨 다니는 디아스포라 예술가이고 활동가이다. 해외 입양인 단체 모임인 유로코리안리그, OKAY 등을 만들어 해외 입양인이 부모를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화가, 영화감독, 에세이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5월의 화가 홍성담(1955년 전남 신안 출생)은 5.18광주민주항쟁 선전요원으로 활동했다. 시민 미술학교를 개설해 판화를 통한 민중미술의 대중화에 힘썼고, 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를 제작했다. 89년 평양축전 슬라이드 배포 주동자로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됐다. 1990년 국제 엠네스티는 홍성담을 올해의 양심수 3인으로 선정한다. 작품을 통해 국가 폭력의 흔적과 동북아 역사문제 등 시대의 아픔을 형상화했다. 홍 작가는 "예술가는 원칙적으로 모든 권력을 거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이다.", "예술가는 오히려 허무주의나 아나키스트에 가깝고 그것이 바로 예술가의 역할" 이라고 밝히고 있다.

파독 간호사 출신 작가 송현숙(1952년 전남 담양 출생)은 외국 노동자에서 예술가로 변신한 대표적 인물이다. 72년 파독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독일 함부르크 조형미술대학에 진학해 화가의 길을 선택한다. 이주노동자로서, 여성으로서, 문화적 뿌리가 파헤쳐진 이방인으로서의 경험을 그림일기로 켜켜이 표현하는가 하면, 성장기를 보냈던 고향의 기억과 이미지를 평평한 색면 위에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붓질로 그려낸다. 전통에 대한 사유와 현대의 문명 비판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작업도 함께하고 있다.

저자는 책을 쓰면서 이중섭(1916년 평양 출생)과 조양규(1928년 경남 진주 출생)를 이야기 못 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했다. 이중섭을 두고 실제로 경험한 비참한 운명과는 대조적으로, 미소가 머금어질 정도로 부드러운 화풍이 그립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양규는 해방 후 남한에서 일본으로 밀항한 후 화가로서 인정받기 시작하다가 그 안정된 생활을 버리고 북쪽으로 가 끝내 소식불명이 됐다고 한다. 이중섭, 조양규, 이쾌대는 모두 뛰어난 재능을 지닌 화가였지만 각자의 길은 극단적으로 갈라졌던 것이다. 오랫동안 한국에서 조양규와 이쾌대는 금기시됐다고 저자는 지적했다.

저자 서경식은 1951년 일본교토 재일동포 2세로 태어나 와세다대 문학부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도쿄케이자대학 현대법학부 교수이다. 1970년대 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된 형 서승과 서준식의 석방과 한국 민주화를 위해 활동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나의 조선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반비(2014)


태그:#나의 조선미술 순례, #서경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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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미디어에 관심이 많다. 현재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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