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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KBS는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위원장 권호훈 아래 KBS 새노조) 전·현직 집행부 5명과 조합원 4명에게 정직과 감봉 등의 징계를 내렸다. 지난해 5월, 길환영 사장 시절 당시 출근 저지 투쟁을 벌였다는 이유다.

새노조는 즉각 반발했고, KBS인력관리실은 지난 20일 "징계대상자들이 전임 사장이 타고 있는 차량을 주먹으로 수 차례 가격하고, 헤비콘과 물병, 피켓 등을 던져 차량 앞 유리, 본 네트, 양쪽 문짝 등을 파손했다"며 "사내 근무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회사의 중요한 의무"라고 밝혔다. KBS인력관리실 측은 이번 징계가 경영진 교체와 무관하다고 전제했다.

이에 대해 KBS 새노조 견해를 듣고자, 정직 4개월의 징계를 받은 정홍규 KBS 새노조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를 만났다. 다음은 지난 22일 새노조 사무실에서 정 간사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1년 2개월 지나서 뒤늦은 징계, 이해하기 어렵다"

정홍규 KBS 새노조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
 정홍규 KBS 새노조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
ⓒ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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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5일 조대현 KBS 사장이 언론노조 KBS 본부 노조 전·현직 간부 5명과 조합원 4명에게 지난해 5월 길환영 당시 사장 출근 저지 투쟁을 이유로 정직과 감봉 등의 징계를 내린 것을 어떻게 평가하세요?
"지난해 KBS에서 길환영 사장을 몰아낸 투쟁은 본부 노조 조합원뿐만 아니라 전 직원들이 함께 공영방송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었습니다. 그 결과로 길 사장이 이사회에서 해임됨으로써 조대현 사장이 취임했잖아요. 그런데도 길 사장을 축출하기 위해 중요한 계기를 마련한 출근 저지 투쟁을 이유로, 그것도 상황이 벌어진 지 1년 2개월이 지나서 뒤늦게 징계를 한 건 이해하기 어렵죠.

징계 수위 또한 이전 징계 사례에 비춰볼 때 지나치게 높습니다. 사측에선 일부 폭력 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저희 입장에서는 자위권 차원의 충돌이었습니다. 당시 길 사장이 출근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이에 항의하는 조합원들이 앞에 있었음에도 차가 무리하게 진입했습니다. 조합원들이 다치는 것을 막기 위한 행동이었는데,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징계 수위라고 봅니다.

검찰 조사가 진행되는 중이기 때문에 조사 결과를 보고 징계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런데 차기 사장 선출을 앞둔 시점에서 징계를 내렸습니다. 이는 노조의 힘을 약화하고, 여권에는 조 사장이 노조를 장악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기 위한, 일종의 연임을 위한 포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직접 비교는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난해 MBC 사장 선임과정을 보면, 김종국 당시 MBC 사장이 노조를 탄압했지만 연임에는 실패했잖아요. 즉, 노조 장악이 연임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 같은데.
"MBC 케이스가 KBS에 똑같이 적용된다고 볼 수도 없어요. 또, 조 사장은 야권 이사의 지지로 선임된 점과 새노조가 크게 반대하지 않은 것을 아킬레스건으로 생각할 것 같아요. 그래서 여권에 본인이 새노조의 지지를 받는다거나 유착된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게 아닐까요. 다음 대선을 치러야 하는 차기 사장으로서 정부 여당의 입맛에 맞는 사장 역할을 잘해낼 수 있다는 시그널을 보낸 것으로 판단합니다."

지난 2014년 5월 19일 오전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새노조 조합원들이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 모여 길환영 KBS 사장의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이며 비대위 특보를 읽고 있다.
▲ KBS 새노조 비대위 '길환영 사장 불신임 98% ' 지난 2014년 5월 19일 오전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새노조 조합원들이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 모여 길환영 KBS 사장의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이며 비대위 특보를 읽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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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징계가 길 사장 출근 저지 투쟁에서 일어난 차량 파손을 문제 삼은 것인데 당시 새노조만 했나요?
"당시 현장에는 1노조와 새노조의 집행부와 조합원이 같이 있었어요. 그러나 우리 집행부가 길 사장 출근을 저지하라는 지침을 내린 건 아니고 조합원이 자연스럽게 접근해서 대치가 벌어진 거예요. 그 과정에서 차량이 일부 파손된 건 사실입니다."

- 징계는 할 수도 있지만 과하다는 건가요?
"그렇죠. 이번 징계 대상자는 새노조 집행부와 차량 파손에 가담한 행위자죠. 그런데 당시 벌어진 상황은 조합 집행부의 지시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발적으로 벌어진 것이거든요. 또한, 양대노조 집행부가 있었는데 새노조 집행부만 징계하고 1노조 집행부는 아무런 징계를 하지 않는 건 징계 형평성에도 맞지 않아요.

차량이 파손되긴 했지만, 당시 조합원들이 있는 곳으로 차량을 무리하게 진입하려는 과정에서 다친 조합원도 있거든요. 차량을 빼라는 자위권 요구 과정에서 파손된 겁니다. 그런데 벌어진 행위의 전후 과정이나 목적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않은 채 단지 차량이 파손됐다는 일부 결과만 가지고 과도한 징계를 내렸다고 봅니다."

- KBS 사규엔 "징계 요구를 접수한 인사위원회는 1개월 이내 처리해야 한다"고 돼 있어요.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하는 건 문제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사규에 그런 조항이 있다고 하지만, 지난 2010년 새노조가 출범할 때 한 파업에 대한 징계가 2012년 초에 있었어요. 그래서 당시 징계에 대한 사규 조항을 문제 삼았죠. 그러나 법원은 강제가 아니라 권고로 해석하더라고요. 법원의 해석이 그렇게 내려진 만큼 따를 수밖에 없죠."

-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조 사장이 사장 자리에 오른 건 이들 덕인데 상은 못 줄망정 징계하는 건 도덕적으로도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저희는 징계가 원천무효고, (징계 대상자가) 아무런 처벌도 받으면 안 된다고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징계 수위가 높을 뿐더러 새노조 집행부만 징계하는 것은 형평성에 안 맞는다는 거죠. 이 징계를 받기 전에 이미 지난해 파업 과정에 대한 책임을 물어서 집행부가 징계를 받았습니다. 중복 징계로 볼 수도 있어요.

사측은 파업 전이라 별건이라고 주장하는데, 저희는 그 당시 길 사장 출근 저지 투쟁이 가장 결정적인 투쟁이기 때문에 일련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 투쟁의 결과물로 사장 자리에 오른 조 사장이 그에 대한 책임을 물어서 직원들을 징계한 것은 자기부정이고 당시 공영방송을 하겠다는 전 직원의 의지를 배신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어요."

"조 사장, 최소한의 기대에도 못 미쳤다"

최근 '이승만 정부 일본 망명설' 보도 후 이어진 보복성 인사와 노조 집행부 중징계 등 논란으로 인해 KBS가 내홍을 겪고 있다. KBS는 첫 기사를 아예 삭제하고, 지난 3일 이승만 기념사업회의 반론이 담긴 기사를 따로 제작하기도 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16일 향후 조대현 KBS사장에 대한 불신임 투쟁에 돌입한다고 선포했다.
 최근 '이승만 정부 일본 망명설' 보도 후 이어진 보복성 인사와 노조 집행부 중징계 등 논란으로 인해 KBS가 내홍을 겪고 있다. KBS는 첫 기사를 아예 삭제하고, 지난 3일 이승만 기념사업회의 반론이 담긴 기사를 따로 제작하기도 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16일 향후 조대현 KBS사장에 대한 불신임 투쟁에 돌입한다고 선포했다.
ⓒ KBS뉴스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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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만 망명설' 보도가 징계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승만 망명설' 보도는 뉴라이트나 정부 여권 또는 차기 사장을 선정할 가능성이 큰 이인호 이사장으로부터 강한 반발을 샀거든요. 때문에 조 사장은 많은 압박을 받고, 연임을 하기 위한 길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을 거예요. 그래서 그 보도가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는 걸 외부에 알리고 싶어서 보도국 책임자에 징계성 인사를 내린 것이라고 봅니다.

결국, 이런 보도를 하는 세력을 본인이 사내에서 진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죠. 같은 맥락에서 현 정권이나 뉴라이트 세력과 불편한 관계에 있는 새노조에 대해서도 징계를 내림으로써, 자기가 '진압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봐요."

- 본부 노조는 조 사장 불신임 투쟁을 하겠다고 하던데, 노조의 불신임이 오히려 조 사장에게 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볼 수도 있어요. 그러나 저희가 신임 투표를 한 것이 아니거든요. 선임 절차에 들어가면 저희 전 조합원과 가능하면 1노조 조합원을 포함한 전 직원을 대상으로 조 사장 신임 투표를 할 거예요. 지금은 조 사장 반대 정도죠.

조합의 입장이 조 사장 연임에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조 사장이 공정방송을 할 수 없는 사장이라고 판단된다면, 조합으로서는 이를 역사에 기록하고 반대하는 게 더 원칙에 맞지 않을까요."

- 조 사장의 1년 어떻게 평가하세요?
"조 사장은 이례적으로 야권 이사의 지지를 기반으로 해서 사장이 됐고, 직원들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 기대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사장 취임사 내용에도 공정성 시비를 끝내겠다고 했죠. 여러 측면에서 (취임사 내용만) 그대로만 실현된다면,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그런데 올 초 조 사장이 취임 이후 가장 강조했던 2015년 1월 1일 프로그램 대개편이 실패로 돌아갔거든요. 보도에서도 여러 차례 불공정 방송 사례가 있었죠. 프로그램에서는 김인규, 길환영 사장 시절 폐지됐던 시사프로그램 부활 등의 요구가 있었어요.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또 탐사보도 강화나 국장 책임제 도입 등 공정방송을 위한 기본적인 장치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결과적으로 보도와 프로그램에 있어서 최소한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확보하는 데도 실패했다고 봐요.

이런 일련의 과정이 낳은 결과가, 조 사장이 최소한으로 기대한 것에도 못 미쳤다는 평가가 나오는 현 상황입니다. 최근 임금피크제를 둘러싸고 조합과의 합의를 거치지 않은 채 직원들로부터 개인 동의를 받는가 하면, 임금피크제에 합의해 주지 않으면 단체협상을 맺을 수 없다고도 했습니다. 무단협 상태로 몰고 가는 등 노조와의 관계도 강경 일변도로 가고 있어요.

조 사장이 애초 저희가 기대했던 최선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최근에 벌어진 표적 인사와 징계는, KBS 독립성과 공정성을 지키는 데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를 무참히 짓밟은 행위였습니다. 사장 취임 뒤 1년을 돌이켜 보면, 조 사장 취임 전인 길환영 사장 때로 정확히 돌아가는 과정이었다고 봅니다."

- 앞으로 어떻게 대응하실 계획이에요?
"현재 노동조합과 기자협회에서는 피케팅 등을 통해 사내외에 이번 징계의 부당성을 알리고 있습니다. 또한, 징계 무효 소송을 통해 법원의 판단을 받아볼 생각입니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영광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영광의 언론, 그리고 방송이야기'(http://blog.daum.net/lightsorikwa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정홍규, #KBS새노조, #길환영, #고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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