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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아일랜드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 가장 흔하게 먹던 음식이 피시앤드칩스였다. 레스토랑에서 먹기도 하지만 간혹 대형마트 음식코너에서 사서 근처 공원에서 먹기도 했다. 피시앤드칩스는 영국의 대표 음식으로, 약 400여 년간 영국의 식민지였었던 아일랜드에서도 대중적인 음식이다.

뼈를 발라내고 살만 포를 떠서 돈가스마냥 기름에 튀긴 대구에 굵게 채 썬 감자튀김을 곁들인 피시앤드칩스. 프랑스나 이탈리아, 에스파냐 같은 미식의 나라들에 비해 별다른 유명한 음식이 없는 영국에서 그래도 대표적인 것이 바로 피시앤드칩스다.

그런데 이 피시앤드칩스도 시조는 영국이 아닌 아랍의 쇠고기 스튜란다. 바로 이웃 나라도 아니고 멀고 먼 아랍의, 재료도 생선이 아닌 쇠고기였다니, 도대체 피시앤드칩스에는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걸까?

이처럼 음식에 관한 흥미롭고도 재미난 사연을 밝혀주는 책이 바로 <음식의 언어>이다. 스탠퍼드 대학의 언어학 교수이자 계량언어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 댄 주래프스키 교수는 음식의 언어학적 분석을 통해 역사, 문화, 경제 그리고 인간의 심리까지 아우르는 연구를 했는데, 그 결과물이 <음식의 언어>이다.

저자는 컴퓨터로 처리할 수 있는 언어학적 도구를 통해 음식과 관련된 수많은 자료와 온라인에 올라 있는 수백만 개의 맛집 리뷰, 레스토랑의 메뉴, 식품 광고 및 식품 브랜드 등에 쓰인 언어를 분석·검토하였다고 한다.

<음식의 언어>에는 칠면조가 어쩌다 이슬람 국가 터키와 이름이 같아졌는지, 꽃(flower)과 밀가루(flour)는 왜 발음이 같은지, 돼지는 'pig'인데 돼지고기는 왜 'pork'라고 부르는지와 같은 일상에서 궁금했던 내용은 물론 인간의 진화와 심리, 행동을 해독하는 흥미로운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케첩이 생선 젓갈?

먼저 저자는 이 책이 여섯 살짜리 꼬마의 질문에서 나오게 되었다고 밝힌다. 꼬맹이의 질문은 왜 케첩 용기에 그냥 케첩이 아닌 토마토케첩이라고 적느냐는 것이었다. 케첩이 토마토로 만든 것인데, 거기에 토마토케첩이라고 쓰는 것은 '역전앞'이나 '하얀 백고무신'과 같은 의미의 중복이 아니냐는.

여섯 살치고 꽤 예리한 지적이다. 그런데 햄버거를 먹을 때 절대 빠져서는 안 될 미국의 국민양념 케첩에는 놀라운 이야기가 숨어있다. 케첩의 최초 버전은 오늘날 우리가 먹는 것과는 완전 딴판으로, 토마토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음식이었다.

케첩의 고향은 미국도 영국도 아닌 중국이다. 푸젠성 방언으로 '케'는 '저장된 생선', '첩'은 '소스'를 의미한다. 즉 케첩은 멸치젓갈 같은 생선 젓갈이었던 것이다. 푸젠성 화교들이 동남아시아 등지로 퍼뜨린 것을 대항해 시대 영국 선원들이 본국으로 가져가면서 유럽에 퍼지게 되었다고.

이후 케첩이란 단어는 '어의론적 표백'을 거치며 그냥 '소스'를 뜻하게 되었고, 버섯을 비롯한 여러 재료 중 토마토가 케첩의 재료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세가 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날 먹는 것과 같은 케첩은 1910년경에야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처럼 어원을 통해 분석한 케첩의 사연은 동양과 서양의 위대한 만남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창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것은 결국 세계화의 이야기이며, 케첩을 통해 동양과 서양의 음식 취향을 섞어 지금의 현대적인 요리를 만들어낼 때까지 천년의 역사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진짜는 진짜라고 하지 않는다

식당에 가면 메뉴판에 '진짜 한우', '진짜 삼겹살' 등 진짜임을 강조하는 말이 쓰인 것을 종종 본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된단다. 레스토랑 메뉴를 분석하여 밝혀낸 중요한 사실 하나. 그것은 진짜는 진짜라고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연구에 따르면 음식 값이 비싼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메뉴에 '진짜'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는 진짜를 쓰지 않아서가 아니다. 비싼 레스토랑에서는 고객들이 이미 그 곳의 재료를 '진짜'라고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진짜'라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진짜'를 강조할 경우, 오히려 진짜인지 아닌지를 의심하게 되고 변명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하게 될 뿐이라는 것이다. 즉 정상 상황에서 뭔가가 진짜라고 굳이 수고스럽게 말하는 까닭은 상대편이 그것을 가짜라고 생각할까봐 걱정스러워서, 그것이 진짜라는 확신을 주고 싶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폼 나는 메뉴는 가볍고 간결하며, 싸구려 충전용 형용사나 '진짜' 재료를 쓴다는 끝없는 변명을 담고 있지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지위가 높다는 것을 보여줄 때는 말이든 음식이든 적게 쓸수록 더 좋다고 저자는 충고한다. 진짜를 강조할수록 급이 떨어지고 의심만 살 뿐인 것이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이탈리아에서 들여온 해킹 프로그램이 문제가 되자, 국정원 직원 임씨는 진짜로 대북정보 수집만 했다며 죽음으로 진짜임을 강조했다. 나머지 국정원 직원들은 진짜라는데 왜 안 믿냐며 국정원장의 결재까지 받은 공동성명을 내며 의심하는 국민들을 향해 화를 내고 있는 형국이다.

옛말에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이라 했다. 외밭에서는 신발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을 바로잡지 말아야 한다. 즉 의심받을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정원이 고급 레스토랑이 되기 위해서는 의심받을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댄 주래프스키 교수의 <음식의 언어>는 단순한 음식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는 음식의 언어를 통해 수천 년 문명교류의 역사를 밝힌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를 향한 어원학적 단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암호가 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댄 주래프스키 지음, 김병화 옮김, 어크로스 펴냄, 2015년 3월, 1만7천원



음식의 언어 -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인문학

댄 주래프스키 지음, 김병화 옮김, 어크로스(2015)


태그:#음식의 언어, #댄 주래프스키, #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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