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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

스타일도 그렇고, 말투도 그렇고, 성격도 그렇고. 그를 잘 아는 쌍용차 해고자가 그는 전형적인 '촌놈'이라고 단 한마디로 평했습니다. 또 다른 해고자들은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 '무슨 부탁을 해도 늘 잘 들어주던 사람', '묵직하고 투박한 질그릇 같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더벅머리에, 어눌한 말투, 너털웃음을 짓던 그에게 사람들은 늘 선생이나 위원장, 대표라는 역할로 부르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래군!" 하고 불렀습니다. 차별 받고 쫓겨난 이들 곁에서 함께 살자고 이야기 하던 인권 활동가 박래군은 주변에선 그냥 "래군"으로 통했습니다.

또 다른 래군이 묻습니다

세월호광주시민대책회의(아래 대책회의)가 지난 20일 오후 2시 광주 동구 광주지방법원 앞에서 '4.16연대 박래군 상임운영위원 구속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세월호광주시민대책회의(아래 대책회의)가 지난 20일 오후 2시 광주 동구 광주지방법원 앞에서 '4.16연대 박래군 상임운영위원 구속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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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군, 그가 갇혔습니다. 수없이 많은 대책위에서 역할을 맡은 그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뒤 416연대 상임운영위원이라는 역할을 또 자임했고,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이유로 구속됐습니다. 구속 수사는 증거 인멸과 도주의 위험이 있고, 범죄의 심각성에 따라 결정돼야 하지만 검찰과 법원은 추모가 불법이라는 이유로 그를 또 가뒀습니다. 네 번째 구속입니다.

구속되기 며칠 전 민주노총 2차 총파업이 있던 날, 세월호 투쟁을 이야기 하기 위해 무대 뒤에서 기다리던 그와 잠깐 인사를 나눴습니다. 구속될지도 모르는 판국에 "쌍용차 천막 농성하는 데 한 번 가보지 못해서 어떻게 하냐"며 그는 미안해했습니다. 그냥 인사치레로 하는 이야기가 아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진심이 아니면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늘 진심으로 사람들을 대했습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늘 친구처럼 편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리 작은 부탁이라도 도움 주기를 마다하지 않는 키다리 아저씨였고, 고마움을 표현할라치면 늘 손사래를 쳤습니다. 그는 그의 친구들처럼 언론의 주목을 받고 사라지는 자리에 있지 않고, 무대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그는 스스로 유가족이었고, 대추리마을의 주민이었고, 용산 참사의 수배자였고, 희망버스의 주동자였고, 강정의 지킴이였고, 밀양의 친구였고, 쌍용차의 큰형이었고, 그리고 다시 세월호의 맏상주였습니다.

그는 인권 활동가들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모금 운동을 벌여 인권재단을 만들었고, 억울하게 쫓겨난 이들의 곁에서 오랜 시간 함께 했습니다. 그가 지켜온 자리는 국가가 저지르는 폭력과 무능의 민낯을 드러내는 자리였고, 더불어 인간의 존엄이 서야 할 자리였습니다. 그는 쉼 없이 국가에게 국민은 무엇인지 묻고 또 물었고, 국가는 쉼 없이 묻는 그를 가두기만 했습니다.

강정 지킴이, 밀양의 친구, 세월호의 맏상주였던 그

래군은 갇혔지만, 또 다른 박래군인 나는 묻고 싶습니다.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 곁에서 함께 살자고 이야기 한 것이 왜 죄가 되어야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국가가 나서서 사람간의 관계를 갈라놓고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왜 죄가 되는지 묻고 싶습니다.

수백 명의 아이들과 시민이 죽었고, 아직 9명의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있는데 왜 자꾸 잊어버리자고 이야기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수백만 명의 국민이 마음을 모아 진실을 밝히자고 했는데 왜 말도 안 되는 시행령을 공포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수많은 이가 모여서 추모를 이어가는 것이 왜 불법인지 묻고 싶습니다. 왜 국가가 나서서 유가족을 조롱하고 겁박하는지, 왜 국가가 나서서 진실을 숨기고 있는지, 그 진실을 밝혀야 할 국가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우리가 함께 물었던 질문들을 나는 묻고 또 물을 것입니다.

래군, 그를 가둔다고 이 진실을 찾기 위한 여정이 중단될 리 없습니다. 묻고 또 묻는 또 다른 박래군들을 가두고 또 가둬도 진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진실을 밝히겠다고 나섰지만 쉽지 않은 길임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난 역사에서 확인했던 것처럼 진실을 밝히기 위해선 수많은 이의 노력들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미련하게도 사람들이 마음을 나누고, 함께 걸어 온 힘을 믿습니다. 우리에게 방법이란 끊임 없이 함께 모이고 모여서, 끊임 없이 묻고 또 묻는 것이라 믿습니다. 또 다른 박래군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의 질문은 여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추모도 이어져야 합니다.


태그:#세월호, #박래군, #416연대, #함께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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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복직자. 현재 쌍용차지부 조합원. 훌륭한 옆지기와 살고 있는 세아이의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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