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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과 대전사회적기업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조세종 기자는 지난 5월 15일부터 23일까지 7박9일 동안 프랑스 파리와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했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에서 주관하는 사회적기업 정책연구연수에 선발되어 유럽의 사회적기업을 탐방하게 된 것.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13년 동안 사회적협동조합과 인연을 맺어온 조 기자가 바라본 프랑스와 스위스의 사회적기업 탐방기를 <오마이뉴스>는 4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말]
삐에르 신부님 사진 아래에서 설명하고 있는 크리스토퍼 로버츠 재단 사무국장
 삐에르 신부님 사진 아래에서 설명하고 있는 크리스토퍼 로버츠 재단 사무국장
ⓒ 조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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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단에게 재단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 로버츠 사무국장
 연수단에게 재단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 로버츠 사무국장
ⓒ 조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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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 정책연구연수단'이 도착한 첫 번째 방문지는 프랑스 파리의 '아베 피에르 재단(Abbe Pierre Foundation)'이다. 재단 이름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고 2007년 94세의 일기로 선종하신 아베 피에르 신부의 이름이다. 아베 피에르 신부는 가난한 이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주거를 제공하는 '엠마우스 운동'을 전개했으며, 프랑스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운동으로 확대되었다. 아베 피에르 신부는 우리나라에도 <단순한 기쁨>(마음 산책, 2001)이 소개되면서 널리 알려진 분이다.

파리 중심가를 벗어나 차로 조금 달리다 보면 평범한 주택가 한 편에 자리 잡은 4층 건물이 아베 피에르 재단 본부다. 재단 사무실에서 크리스토퍼 로버츠 사무국장이 나와 우리 일행을 맞이했다. 1949년 시작된 엠마우스 운동은 오늘날에도 주거 관련 단체를 후원하고 주거지 개선을 지원하는 일들을 하며, 특히 집 없는 고통을 가장 잘 이해하기 때문에 정책 제안이나 시위 참여와 같은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노숙인의 친구 '파리의 아베 삐에르 재단'

아베 피에르 재단은 엠마우스 운동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설립되었다. 현재 재단은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전혀 받지 않고 민간 기부금으로만 운영하고 있으며 이곳에선 직원 145명과 자원봉사자 250명이 활동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사무국장은 재단의 독립적인 활동을 보장받기 위해 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재단은 연간 450여 개의 단체에 750건 정도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주거 제공, 주거권 찾기 등 주거 관련 사업과 활동들을 지원하고 있다. 재단이 오랫동안 이 일에 열정을 기울이다 보니 정부도 재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재단이 발행하는 주거에 관한 250쪽 분량의 연례보고서는 노숙인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내용까지 담겨 주택 장관에게 매년 보고되며 1만 부가 배포된다. 프랑스 정부는 이를 근거로 주거정책을 세운다고 하니 이 재단이 보유한 높은 신뢰성과 권위가 느껴졌다.

재단은 일반 시민들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얻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노숙인의 현실을 소개하고 그들이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에 시민들의 동참을 호소하는 포스터를 활용, 홍보에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노숙자의 모습에 바캉스를 즐기는 이의 하반신을 덧붙여, 노숙자가 사회로 복귀하도록 시민들의 관심과 지원을 일깨우는 포스터
 노숙자의 모습에 바캉스를 즐기는 이의 하반신을 덧붙여, 노숙자가 사회로 복귀하도록 시민들의 관심과 지원을 일깨우는 포스터
ⓒ 조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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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입구에 있는 아베 삐에르 신부님 동상에서 필자
 재단 입구에 있는 아베 삐에르 신부님 동상에서 필자
ⓒ 조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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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은 주거문제만이 아니라 식사나 의료와 같은 문제도 함께 해결해야 한다. 아베 피에르 재단에서는 주거를, 식사는 인근의 '사랑의 식당'에서, 그리고 의료문제는 'SAMU 소시알'에서 각각 분담하는 등 유기적인 노숙인 지원체제를 갖추고 있다. 아베 피에르 재단에서 특히 주거문제에 집중하는 이유는 노숙인들이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도록 하고자 하는 재단의 목적에 따른 것이다.

아베 피에르 신부는 "자기만의 공간이 있는 다음에 일도 하고 생활도 할 수 있다"는 말씀으로 집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고 했다. 프랑스 전국에 있는 엠마우스 센터 110개의 기본 원칙은 '하나의 침대는 비워둔다'는 것으로 어떤 상황이라도 노숙인이 수월하게 센터를 찾아 숙소를 받고 직업훈련과 알코올중독 치료 등 재활을 할 수 있도록 한다.

피에르 신부가 선종하시기 전 해, 당시 93세였을 때 피에르 신부는 지방자치정부의 예산 중 25%를 주거 없는 사람들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의회에서 촉구했다. 피에르 신부의 유지대로 2006년부터 법으로 시행되고 있다고 하니 그에에 대한 프랑스 사회의 존경과 사랑을 알 수 있다.

피에르 신부의 유언은 "내 무덤에 꽃 대신 열쇠를 갖다 놓으라"는 것이었다. 가난한 이들이 자기 집 열쇠를 갖게 되는 것을 죽는 순간까지 염원하셨던 피에르 신부의 말씀에 따라 재단의 앞뜰에는 열쇠들이 그를 기리고 있었다.

재단의 입구에는 내 무덤에 꽃과 화환 대신 수많은 가족들의 실제 주택 열쇠를 갖다 놓으라는 아베 삐에르 신부님의 유언이 적혀있다.
 재단의 입구에는 내 무덤에 꽃과 화환 대신 수많은 가족들의 실제 주택 열쇠를 갖다 놓으라는 아베 삐에르 신부님의 유언이 적혀있다.
ⓒ 조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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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들이 주거를 마련하고 삐에르 신부님에게 바친 열쇠들.
 노숙자들이 주거를 마련하고 삐에르 신부님에게 바친 열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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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과의 전쟁' 벌이는 노숙인 긴급구호 기관 '사뮤 소시알'

'사회적기업 정책연구연수단'이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사뮤 소시알(SAMU Social)'이라는 곳이다. 사뮤(SAMU, Service Aid Medical Urgent) 소시알은 노숙인을 위한 긴급구호 의료시스템을 말한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국경없는의사회'를 창립한 의사 끄자비에 엠마누엘리가 1993년 파리에서 사뮤 소시알도 세웠다.

사뮤 소시알 파리본부는 파리시 외곽 지역에 자리 잡고 있었다. 담당자는 가난한 손님들 주로 맞는 넓은 홀을 지나 좁은 사무실과 회의실들이 하나씩 번갈아 줄지어 있는 사무실 안쪽에 있는 커다란 회의실로 우리를 안내했다.

사뮤 소시알도 아베 피에르 재단처럼 노숙인을 돕는 일이 주된 활동이었다. 창립자 엠마누엘리는 '아무런 요구조차 하지 못하는 이들을 만나러 가자'라는 표어로 빈곤과의 전쟁을 시작하였다. 존엄성, 시민성, 연대성의 정신을 바탕으로 노숙인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쉼터에서 노숙인을 맞이한다.

사뮤 소시알 파리 본부
 사뮤 소시알 파리 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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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프랑스는 계속 유입되는 망명신청자들로 인해 주택문제를 비롯한 경제적인 어려움이 사회문제화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을 이 나라 특유의 배제가 아닌 통합의 차원에서 해결하려는 의지를 사회 전체가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한 차원에서 사뮤 소시알도 적극적인 노숙인 정책을 취하고 있다. 파리 인근 뱅생느에 의사, 간호사 등 직원들이 상주해 있는 주간 노숙인 쉼터가 있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있는 경우, 또는 임신 3개월 이상인 경우처럼 가족이 함께 거주할 필요가 있는 노숙인에게도 장기투숙 쉼터를 마련해준다.

무엇보다도 사뮤 소시알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은 봉고차를 이용해서 노숙인을 만나는 뮈로드(muraude)라고 불리는 팀이다. 프랑스의 구급차는 의사와 간호사가 함께 타는 가히 '이동하는 병원'이라 할 수 있다. 뮈로드 팀은 운전자,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이 3인 1조가 돼 봉고차로 이동하며 현장에서 만난 노숙인들의 건강상태를 확인 후 필요한 경우 병원으로 옮기거나 그렇지 않으면 쉼터로 이동할 수 있게 한다. 파리에서만 6대의 봉고차가 구역을 나누어 다닌다.

노숙인들이 쉼터나 봉고차를 이용하기 위해 무료 전화 115번을 운영하는 것도 사뮤 소시알의 일이다. 파리에서만 하루에 1만여 명의 노숙인들이 사뮤 소시알을 통해 잠자리를 받고 있다고 하니, 이들의 활약이 뛰어나며 노숙인의 정의가 우리의 경우보다 훨씬 폭이 넓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기서도 아베 피에르 재단과 마찬가지로 주거가 불안정한 이들의 실상과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작업들을 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일들을 위해 사뮤 소시알 파리본부에만 500명의 유급직원을 두고 있는데, 일부의 민간 기부금을 제외하고 대부분 정부의 재정지원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벽에 걸려 있는 노숙자를 만나고 있는 현장 사진
 벽에 걸려 있는 노숙자를 만나고 있는 현장 사진
ⓒ 조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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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사뮤 소시알 국제팀 소속 담당자 오드리 장느 발디는 전 세계 14개 도시에 사뮤 소시알 지부를 두고 노숙인 구제 일을 한다고 밝혔다. 페루, 콜롬비아, 러시아, 세네갈, 콩고 등 지역마다 경향은 다르지만, 통제되지 않는 도시화로 버려지거나 소외된 삶에 처한 이들이 아이에서 여성까지 점차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시아에는 아직 지부가 없으며 최근에는 이탈리아 밀라노에 지부설립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유럽의 도시에 진출해야 하는지 의아스러운 점도 있었지만, 최근에 밀라노로 밀려드는 이민자로 인해 지부설립의 필요성이 대두하고 있다고 했다.

사뮤 소시알 국제팀은 각 도시의 지부운영을 위해 재정 지원 기관이나 기업을 찾는 일이 무척 중요하다고 했다. 유럽연합(EU)에서도 사뮤 소시알의 국제적 운영을 인정하여 50%의 재정 지원을 하고 있지만, 나머지 50%는 민간에서 충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드리 담당자에 의하면 예산과 교육은 파리본부에서 맡아서 하지만, 각 지역의 자율적인 운영을 보장함으로써 각국의 실정에 맞게 뮈로드 봉고차 운영, 교육프로그램, 쉼터, 간행물 발간 등을 시행한다고 했다. 사뮤 소시알 국제팀은 현재 14개국에서 150명의 의료 및 사회복지 전문가들 함께 활동하며 매일 2만 명의 수혜자들을 돌보고 있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태그:#사회적기업, #아베 삐에르 재단, #사뮤 소시알, #삐에르 신부, #노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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