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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막거리 식당, 지역 생산 농산물로 만든 메뉴.
 주막거리 식당, 지역 생산 농산물로 만든 메뉴.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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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서 나는 농산물로 만든 음식이에요."

지난 6월 13일 찾았던 어느 시골 마을 식당. 주인은 나를 기억할리 없다. '참 독특한 운영 방식'이란 생각에 두 번째 찾은 곳이다. 7가지 정도의 반찬들이 정갈하다. 식판을 이용해 먹을 만큼만 가져가도록 한 것도 독특했다. 일종의 뷔페인 셈이다.

강원도 화천군 하남면 원천1리. 조립식 건물은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창고를 연상케 했다. 그나마 '주막거리 식당'이란 간판이 있기 망정이지, 음식점이라는 것을 모르고 지나칠 수 있다. 왜 '주막거리'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음식 뿐 아니라 저녁에는 술 마시러 오는 마을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죠."

주인은 마을 사람을 상대로 점심도 차리고, 저녁엔 대포도 판다고 했다. 5번 국도를 지나는 나그네가 부담 없이 찾기 좋은 이름이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남자 이름이시네요?"

주인 아주머니 이름을 묻자 '이필수'라고 했다. 혹시 필순이라 말한 것을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묻자 '필수'임을 강조했다. 건네받은 명함 뒷면엔 10여 가지 음식 메뉴로 빼곡하다. 가격을 표기하지 않은 것은 농산물 가격이 유동적이란 의미겠다.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당이라면 오지 않았을 겁니다."
"뭐가 다르다는 거예요? 아! 식판 이용하는 거요?"

설명이 명쾌했다. "먹을 만큼만 가져가니 음식물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는 것,  바쁜 농민들이 기다리지 않고 바로 먹을 수 있도록 하자는 의도"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고객 대부분은 동네 사람들이다. '가뭄 때문에 농민들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이 식당을 많이 찾는 이유'라고 이씨는 설명했다.

내가 주막거리를 다시 찾은 이유

주막거리 식당 실내
 주막거리 식당 실내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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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막거리 식당 대표 이필수 사장님. 얼굴이 나오는 걸 싫어한다고 해 일하는 모습을 담았다.
 주막거리 식당 대표 이필수 사장님. 얼굴이 나오는 걸 싫어한다고 해 일하는 모습을 담았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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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에 고생들 많은데, 점심은 내가 근사한 곳에서 사지."

지난 6월 13일, 최문순 화천 군수를 따라 가뭄 현장 점검에 나섰다(관련기사 : 124년 만의 가뭄, 먹을 물마저 말랐다). 거북이 등가죽처럼 갈라진 논바닥을 넋을 잃고 바라보던 농민, 바닥을 드러낸 간이 상수도 집수정. 서둘러 응급 조치를 했을 땐 이미 정오가 한참 지난 뒤였다. 군수는 땀으로 범벅이 된 표정으로 근사한 점심을 산다고 했다. 술직히 '삼겹살 정도는 사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여기선 얼마든지 먹고 싶은 대로 먹을 수 있으니까, 많이들 들어요."

군수표 근사함이 이거구나! 하긴 하루에 3개 면 단위 지역을 돌아봐야 하니 지체할 시간이 없기도 했다. '농촌마을 뷔페, 취재차 다시 한 번 찾자' 했던 게 벌써 한 달 전 일이다.

욕심보다 겸손함

진열해 놓은 밥과 반찬을 먹을 만큼만 담아가면 된다.
 진열해 놓은 밥과 반찬을 먹을 만큼만 담아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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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막거리식당, 햇 옥수수는 덤으로 얻었다. 시골사람들의 정이다.
 주막거리식당, 햇 옥수수는 덤으로 얻었다. 시골사람들의 정이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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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이 오셨을 땐 떠 드리기도 해요."

어떤 이유로 뷔페를 생각했는지 묻는 말에 그녀는 '솔직히 말해도 되느냐?'고 되물었다. 중장비 일을 한다는 아들은 어머님 식당 운영을 반대했단다. 어머님의 도진 허리디스크 때문이다. 결국 고집을 꺾지 못한 아들은 '뷔페식 식당 운영'을 제안했다. 허리를 굽히는 일이 비교적 적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바쁜 농촌 실정에 맞고, 음식물 쓰레기도 줄일 수 있다고 여긴 거지, 원래는 허리 때문이에요."

묻지 말걸 그랬다. '성공 예감, 산골 음식점 튀는 아이디어'. 취재 오기 전 이미 기사 제목을 정했다. 아주머님 솔직함 때문에 졸지에 멋지게 구상했던 제목을 잃었다.

"주변에 식당이 다섯 군데 정도는 되는 것 같던데요?"

물었다. 신식 건물로 무장한 식당들. 그 틈바구니에서 버텨낼 특단은 뭘까. '이런 곳을 찾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답은 간단했다.

농민들은 아주 특별한 날이 아니면 외식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럴 여유도 없다. 일꾼들에게 참이나 점심을 손수 차려주던 것도 옛말이다. 논두렁에서 짜장면을 시키는 것도 낯선 풍경이 아니다. 농민들이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식당, 인근 농공 단지 인부들도 그곳을 찾는다.

"4인용 탁자가 12개니까, 48명. 50명 정도 되는 군청부서에서 삼겹살 회식을 여기서 하면 제격이겠네요."
"오지 마세요. 의자가 없어요..."

반길 만도 한데, 반응이 시큰둥하다. 아주머님은 앉을 자리가 부족해 안 된다고 했다. 의자 때문이 아니란 걸 안다. 직장인들이 찾기엔 좀 초라하단 겸손이다.  

단돈 6천 원으로 웰빙 음식을 즐기다

주막거리 식당, 중장비 안내 표기를 한 것은 아들을 위한 배려란다.
 주막거리 식당, 중장비 안내 표기를 한 것은 아들을 위한 배려란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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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쁘진 않지만, 하나밖에 없는 마누라 생일 대접치곤 좀 그렇지 않나?"

지난 11일이 아내 생일이었다. 친구 아들 결혼식장에 가느라 '다음날 괜찮은 점심을 사 주겠노라'고 말했다. 아내는 내심 오붓하게 칼질하는 분위기를 상상했나 보다. '여기야'하면서 차를 세우자 애써 무표정한척 했지만 한가닥 실망의 눈빛을 감추진 못했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작물을 이용한 식당. 마을별로 조성된다면 특색 있을 것 같다. 농민들과 윈윈(Win-Win)할 수도 있고..."

아내는 '이런 괜찮은 점심'은 생일이나 특별한 날에 올 것이 아니라, 평소에 자주 오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농촌 뷔페, 이만한 건강 식단이 또 어디 있느냐는 거다.

'주막거리 식당'. 화천을 찾는 사람들에게 적극 권장한다. 춘천에서 화천 방향으로 30분 정도 거리, 5번국도 옆, 하남면사무소 앞에 있다. 단돈 6천 원으로 지역 농산물로 만든 웰빙 음식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신광태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기획담당입니다.



태그:#주막거리 식당, #화천, #하남면, #이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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