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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병이 창궐하면 백성은 집 밖을 나서기를 꺼린다. 몸을 안 움직이면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요즘 잡념에 빠져드는 까닭이다. 그다지 상관관계가 없는 일들도 죽 늘어놓고 하나로 묶어 궁리해본다.

요즘 내가 줄을 세워보는 사건은 이렇다. 신경숙 표절 의혹, 한윤형 폭행, 강레오 독설. 순서대로 한국 대표 작가인 양하던 신경숙씨가 여기저기서 표절을 한 의혹이 있고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까지 베꼈다는 주장에 사실 인정을 한 듯 만 듯한 사건, 페미니스트 논객이라고 하던 사람이 실은 여자를 수 년 간 때리고도 변명만 늘어놓은 사건, 자신도 방송출연으로 유명세를 탔으면서 경쟁자에게 누워서 말 뱉은 사건을 말한다.

이 세 사건을 꿰뚫는 핵심은?

워낙 구태가 의연한 사건들이라 속이 뻔히 보인다는 공통점이 있다. 평소 같으면 여기서 생각을 멈췄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날이 덥고 메르스 창궐이고 가게에는 파리만 날리다 보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미당 서정주에 이르렀다.

미당은 문학판에서는 '글발'을 인정해주는 작가인 반면 대한민국 역사 속에서는 유명 친일파다. 이는 <동천>과 <마쓰이 오장 송가>가 극명하게 보여주는 바이다. 어떻게 한 사람이 두 시를 같이 쓸 수 있을까 의심하게 만들 만큼 서정충만과 자폭만세는 극과 극이다.

순수문학인이면서 친일문학인일 수도 있나? 가능해 보인다. 친일문인들 거의 대부분이 순수문학 하던 사람들 아니었던가. 그럼 그 친일파의 순수문학은 그저 순수하기만 한 것일까? 그 순수성은 친일과 떼어 놓고 문학성만 따지는 게 가능한 것일까?

이 또한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우리 역사와는 관계없는 사람들에게 미당의 시를 보여주고 문학성을 평가받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노벨문학상이 수여되는 방식이 크게 봤을 때 이런 식일 게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현실과 문학이 분리될 수 있는 조건일 때 가능하다.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한테는 어려운 문제다. 친일행적은 문학성을 덮어버리기 일쑤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미당의 시를 안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고 친일 행적을 안 것은 대학에 들어와서다. 친일 행적을 안 뒤로는 그의 시를 읽는 게 유쾌하지 않았다. 그 뒤로 십 수 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나쁜 사례로 입에 올린다. 그의 순수와 친일이 양립하는 부분임을 알지만 나는 친일쪽에 자꾸만 무게를 두어 결국 나머지 순수는 지워버리고 말았다. 미당의 시는 달라지지 않았으나 나는 시선을 수정했다.

케케묵은 논쟁거리를 꺼냈더니 벌써부터 구린내가 진동한다. 신선한 논쟁으로 돌아와보자. 앞으로 신경숙의 소설을 어떻게 볼 것인가. 폭행 한윤형의 말을 어떻게 들어 줄 것인가. 독설 강레오의 요리를 어떻게 상상해볼 것인가. 일부의 행적이 그들 작품의 가치를 바꿔놓을 것인가?

옛말에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도 있고 까마귀 검다고 속까지 검을소냐라는 말도 있다. 신경숙씨는 표절 과거를 두루뭉수리하게나마 인정했지만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겠노라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심정적으로 '이 난리가 났는데 설마 또 표절하겠어'라고 짐작할 수 있다면 '한 번 표절했는데 두 번 못하고 열 번 못하겠나'라고 예측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앞으로 신경숙의 소설은 소설읽기가 아니라 베낀 부분 찾아내기 운동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재주가 있는 사람이니 글로 누군가의 심금을 울려 마음을 평안케 할 수도 있다.

한윤형씨는 여성폭행과 페미니스트로서의 말이 모순된다. 그러므로 그가 이제껏 해온 발언은 믿을 수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그의 말은 모두 거짓이고 부정되어야 할까? 적어도 인권에 대해 말한다면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다른 쪽의 발언을 한다면? 내부고발자가 되어 공익차원에서 비리라도 폭로한다면? 그것에 대해서도 모르쇠로 일관해야하나?

강레오씨의 요리는 먹어본 적이 없어서 그 맛이 어떤지 모르겠다. 하지만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요리사가 만든 음식이라면 뻔한 거 아닌가? 겉만 번지르르하고 강한 자극만 잔뜩인 그렇고그런 맛 아닐까? 맛을 안 보고 평하면 안 된다고?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먹어봐야 하나? 하지만 예로부터 며느리 쥐잡듯 하던 독한 시어머니 손에서 한국의 맛이 대대손손 이어지지 않았던가? 독한 입과 손맛은 또 별개의 문제일 수 있지 않을까?

누구든 실수를 한다. 그런데 그 한 가지 실수로 그 사람을 규정해버린다면 이 사회 지도층이네 그 분야 권위자입네 하는 분들은 모두 부정되어야 한다. 젊은 혈기에 사고 한 번 안 쳐 본 사람이 어디 사람인가.

그런 맥락에서 세 사건의 주인공들은 앞으로 실수와 별개로 객관적인 평가를 받는 게 합당하다. 여전히 능력 있고 전도가 유망하지 않은가. 실수보다는 작품이 먼저 평가되어야 한다. 정서상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이 옳다. 그게 사람 사는 순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전에 반드시 해결할 일이 있다. 진심어린 사과다. 구구한 설명이나 비유가 아닌 직설화법으로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는 분명한 사과다. 하지만 이 세 사건의 주인공들은 아직 그런 사과는 하지 않았다. 앞으로 그들의 작품과 함께 두고두고 기억해야 할 일이다.


태그:#표절신경숙, #폭행한윤형, #독설강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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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기업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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