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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작가는 베끼지만, 위대한 작가는 훔친다(Good artists copy, great artists steal)."

20세기 현대 미술의 거장 피카소가 한 말이다. 이는 '능력 있는 작가'와 '창조적인 작가'를 구별하는 말로 인용되기도 한다. 최근 열흘 동안 신문과 방송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한 유명 작가의 표절 의혹에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됐다. 단지 문화면에 국한되지 않고 그 관심의 폭이 점차 넓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아니던가. 수십 년 동안 감히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않았던 업적을 이룬 작가. 그녀의 삶이 송두리째 뒤흔들릴 지경이다. 누군가는 이 사건을 '2015년 6월 16일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얘기할 정도다.

지난 23일 오후 4시, 홍대 앞 한 건물에 상당수 언론사가 모여 취재 경쟁을 펼쳤다. 신경숙 작가의 표절 의혹으로 인해 문화연대와 한국작가회의 주최로 '최근의 표절 사태와 한국 문학권력의 현재'란 긴급토론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2005년 MBC <음악캠프>에서 인디밴드의 성기노출 방송사고 이후 이렇게 홍대 일대가 관심을 받았던 적이 없었다"라고. 단순히 한 작가인 개인을 뛰어넘어 한국문단의 문제로 인식될 만큼 사안이 중대했다. 이날 토론회는 급작스러웠지만, 주최 측에서 준비한 자료는 행사 시작 30분 전에 이미 소진될 정도였다.

신경숙 작가의 표절 의혹에 관한 사실들

지난 6월 23일 오후 4시에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문화연대와 한국작가회의가 주최하는 '최근의 표절 사태와 한국 문학권력의 현재"에 관한 긴급토론회가 진행됐다. 좌측부터 변호사 조영선(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총장), 정원옥(계간 <문화과학> 편집위원), 이명원(문학평론가), 이동연(문화연대 집행위원장), 오창은(문학평론가), 심보선(시인), 정은경(문학평론가).
▲ "최근의 표절 사태와 한국 문학권력의 현재" 긴급토론회 지난 6월 23일 오후 4시에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문화연대와 한국작가회의가 주최하는 '최근의 표절 사태와 한국 문학권력의 현재"에 관한 긴급토론회가 진행됐다. 좌측부터 변호사 조영선(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총장), 정원옥(계간 <문화과학> 편집위원), 이명원(문학평론가), 이동연(문화연대 집행위원장), 오창은(문학평론가), 심보선(시인), 정은경(문학평론가).
ⓒ 이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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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밤뿐만 아니라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 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와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코도 잘 응했다. 첫날밤을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을까 말까 할 때 벌써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중위도 그런 레이코의 변화를 기뻐하였다" - <우국>(미시마 유키오 지음 / 김후란 옮김 / 초판 1983.01) 본문 중에서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여자의 청일한 아름다움 속으로 관능은 향기롭고 풍요롭게 베어들었다. 그 무르익음은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 속으로도 기름지게 스며들어 이젠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노래가 여자에게 빨려오는 듯했다. 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 - <전설>(신경숙 지음 / 초판 1996.09) 본문 중에서

이번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을 불러일으킨 문단이다. 지난 16일,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응준(45)씨가 <허핑턴 포스트 코리아>를 통해 의혹을 제기했다. 이 부분이 표절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란은 제쳐두겠다. 표절 의혹을 부인하던 작가 당사자와 출판사조차 다음날 '의혹을 제기할 법하다'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한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도록 하겠다.

표절 논란 이후 작가와 출판사의 해명은 오히려 여론을 악화시켰다. 긴급토론회가 열릴 것이란 소문이 전해졌고, 여론의 중심이었던 신경숙 작가는 당일 오전에 <경향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심경을 밝혔다. 그러나 논란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이번 토론회의 첫 번째 발제는 이명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가 '신경숙 표절 의혹을 둘러싸고'라는 제목으로 문을 열었다. 신 작가가 당초 표절 의혹에 대해서 "해당 작품을 알지 못한다. 나를 믿어주시길 바랄뿐이고,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일은 작가에겐 상처만 남는 일이라 대응하지 않겠다"고 극구 부인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이명원 교수는 '신경숙의 미시마 표절은 김후란 번역본의 의식적 표절'이라고 말했다. 그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순전히 다른 소설가의 저작권이 엄연한 소설의 육체를 그대로 제 소설에 오려붙인 다음 슬쩍 어설픈 무늬를 그려 넣어 위장하는 그야말로 한 일반인으로서도 그러려니와, 하물며 한 순수 문학 프로작가로서는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명백한 작품 절도행위-표절인 것이다."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에서는 '한 달이 채 될까 말까 할 때, 레이꼬는 사랑의 기쁨을 알았으며, 중위도 이를 알고 기뻐하였다'라고 번역된 부분에서 '사랑의 기쁨을 알았으며'라는 밋밋한 표현을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라는 유려한 표현으로 번역했다."

신경숙 작품에 대한 표절 의혹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지난 2000년, 문학평론가 정문순(46)씨는 <문예중앙>를 통해 동일한 내용을 지적한 바 있다. 이밖에도 1999년 최재봉 <한겨레> 문학전문 기자는 당시의 연재 칼럼에서 "단편 <딸기밭>이 1991년 숨진 유학생 안승준씨의 유고집 <살아있는 것이오>의 여섯 문단에 해당하는 문장이 고스란히 옮겨왔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신 작가는 이렇게 언급했다고 한다.

"작가 신씨는 '승준 씨의 어머니에게서 책을 받아 읽고 너무도 슬프고 감동적이어서 언젠가 소설로 써보고 싶었다'며 '유족에게 누가 될까 봐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고 밝혔다. '필요하다면 창작집을 낼 때 출처를 밝히겠다'고 말했다." - <한겨레> 칼럼 중에서

<딸기밭>에서의 표절 지적 외에도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상당수의 작품이 논란의 대상이 됐다. 문학평론가 박철화(50)씨는 신 작가의 장편 <기차는 7시에 떠나네>(문학과 지성사, 1999)와 단편 <작별인사>도 각각 파트릭 모디아노와 마루야마 겐지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런 논쟁에 대해서 신 작가는 "위험한 단세포적 주장"이라는 과격한 언사까지 써 가며 격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이번 기사에서 유감인 부분은 내 작품에 부당하게도 표절혐의를 씌운 박철화씨의 글이 언급된 데 있다. 박씨가 거론한 파트릭 모디아노와 마루야마 겐지는 내가 존중하는 작가이기는 해도 그들의 작품과 내 작품은 전혀 다른 줄거리와 구조를 가지고 있다. 혹시 이들의 작품과 내 작품에서 유사한 모티브 한두 개를 발견해서 표절 운운하는 것이라면 그건 위험천만한 단세포적 주장이다."

한 개인의 문제보다 한국 문학권력의 폐쇄성을 비판해

지난 23일 오후4시 홍대앞 한 건물에 상당수 언론사가 모여 취재 경쟁을 펼쳤다. 신경숙 작가의 표절 의혹으로 인해 문화연대와 한국작가회의가 주최하는 '최근의 표절 사태와 한국 문학권력의 현재'이란 주제로 긴급토론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2005년 MBC 음악캠프에서 인디밴드의 성기노출 방송사고 이후 이렇게 홍대 일대가 관심을 받았던 적이 없었다"라고. 단순히 한 작가인 개인을 뛰어넘어 한국문단의 문제로 인식될 만큼 사안이 중대했다. 이날 토론회는 급작스러웠지만, 주최측에서 준비한 자료는 행사 시작 30분 전에 이미 소진될 정도였다.
▲ "최근의 표절 사태와 한국 문학권력의 현재" 긴급토론회 지난 23일 오후4시 홍대앞 한 건물에 상당수 언론사가 모여 취재 경쟁을 펼쳤다. 신경숙 작가의 표절 의혹으로 인해 문화연대와 한국작가회의가 주최하는 '최근의 표절 사태와 한국 문학권력의 현재'이란 주제로 긴급토론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2005년 MBC 음악캠프에서 인디밴드의 성기노출 방송사고 이후 이렇게 홍대 일대가 관심을 받았던 적이 없었다"라고. 단순히 한 작가인 개인을 뛰어넘어 한국문단의 문제로 인식될 만큼 사안이 중대했다. 이날 토론회는 급작스러웠지만, 주최측에서 준비한 자료는 행사 시작 30분 전에 이미 소진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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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은 중앙대 교양학부대학 교수는 '신경숙 표절 국면에서 문학권력의 문제'라는 발제에서 한국문학 제도에 대한 성찰과 문학권력에 대해서 비판했다. 그는 1990년대 출판상업주의와 동인 중심으로 작동하는 문학권력의 폐쇄성을 이번 사태의 궁극적인 원인으로 지목했다.

신경숙 작가는 이번에 논란의 대상이 됐던 '창비'를 비롯해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등 대형 출판사에게 번갈아 가며 책을 발간했다. 이처럼 대형 메이저 출판사는 판매부수와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문학권력의 핵심이며, 신인문학상이라는 등단제도를 통해 자기 매체 출신의 작가를 양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창은 교수는 한 개인의 표절 문제로 국한시키기보다는 한국문단의 권력과 폐쇄성으로 인해 가져오는 시스템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최고의 작가를 만들어 한국문학의 대표적 상징을 만드는 것보다는 '1만 명의 독자를 가진 50명의 작가'가 있는 사회가 훨씬 건강하다." - 시인 서효인

"이번의 상징적인 사건을 통해 창비 출판사가 대응했던 방식은 한국 문학이 얼마나 닫혀있었던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지금의 현실은 비평의 위기와 무능의 상황이다. 문학비평이 표절에 대한 검증을 하고, 문학권력에 대한 적극적 문제제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 문학평론가 오창은

"신경숙은 우리의 에이스가 아니다. 다수의 에이스를 발굴하고 육성할 필요가 있다. 한국 문학은 대형 출판사와 문학잡지와 같이 불평등하고 경쟁하는 제도 속에서 젊은 작가들은 힘들다. 일본의 경우는 유명작가와 무명작가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 시민들의 참여가 자유로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작가들과 평론가들이 독립된 잡지 형태를 만들고 있다. 독자들도 마찬가지다. 베스트셀러는 무한신뢰하지 않는다. 유명하지 않는 작품을 읽고 토론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 시인 신보선

"표절한 사람은 없는데, 표절당한 사람만 있다면 문단 내부에서는 더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징계시스템과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정원옥 계간 <문화과학> 편집위원

표절 의혹에 대한 논란이 하루가 다르게 뜨거워진다. 지금으로는 표절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기준도 모호하다. 무엇보다 표절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도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

표절은 친고죄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당사자의 고소가 전제되어야 한다. 지금은 고인이 된 미시마 유키오(1925~1970)의 고소가 있어야 한다. 또한 번역을 했던 시인 김후란씨의 원인행위가 동반되어야 한다. 지난 19일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이 신 작가를 업무방해와 사기 혐의로 수사해달라며 형사 고발했다. 사기와 업무방해에 대한 적용이 가능한지 대한 의견에 대해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총장인 조영선 변호가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기죄는 남을 비방해서 이익을 취하는 행위를 말한다. 여기에는 분명한 인과관계가 성립되어야 한다. 이것으로 인해 이익을 취했는지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고 회의적이라고 본다. 또한 업무방해에 대한 부분은 책이 잘 팔리지 않았나. 방해의 요건이 성립되지 않았다고 본다."


태그:#신경숙, #표절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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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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