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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3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다목적홀에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관련 특별 기자회견을 열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이날 이 부회장은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감염과 확산을 막지 못해 국민 여려분께 너무 큰 고통과 걱정을 끼쳐 드려 사죄한다"고 고개 숙여 사과했다.
▲ 고개 숙인 이재용 "메르스 확산 못 막아 책임 통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3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다목적홀에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관련 특별 기자회견을 열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이날 이 부회장은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감염과 확산을 막지 못해 국민 여려분께 너무 큰 고통과 걱정을 끼쳐 드려 사죄한다"고 고개 숙여 사과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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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민 사과의 민영화! 이 정부가 해냈습니다! #신자유주의적_유체이탈"

23일, 다소 급작스러웠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를 본 어느 트위터 사용자의 촌평이다. 대통령이 해야 할 "대국민 사과"가 "민영화"됐다는 촌철살인이 무척이나 날카롭다. 그렇게, "왜 대통령이 해야 할 사과를 이재용 부회장이 하느냐"는 의문 아닌 의문이 제기되는 중이다.

그 와중에,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문은 의외의 호평(?)을 얻고 있다. 같은 날,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 해명 인터뷰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눈물까지 글썽이며 이재용 부회장이 읽어 내려간 사과문은 확실히 여타 지지부진한 사과에 비해서 군더더기 없이 단호했다. 앞부분만 봐도 답이 나온다.

"사과드립니다. 저희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감염과 확산을 막지 못해 국민 여러분께 너무 큰 고통과 걱정을 끼쳐 드렸습니다. 머리 숙여 사죄합니다. 특히 메르스로 인해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과 유족분들, 아직 치료 중이신 환자분들, 예기치 않은 격리조치로 불편을 겪으신 분들께 죄송합니다.

저의 아버님께서도 1년 넘게 병원에 누워 계십니다. 환자분들과 가족분들께서 겪으신 불안과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있습니다. 환자분들은 저희가 끝까지 책임지고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관계 당국과도 긴밀히 협조해 메르스 사태가 이른 시일 안에 완전히 해결되도록 모든 힘을 다하겠습니다."

"삼성이 컨트롤타워냐"라는 반응 부른 이재용 사과문

일단, 사과 내용을 조목조목 정중한 언어로 설명하고, 잘못을 적시했으며, 반성과 책임을 분명히 했다. 이에 반해, 대한민국 사과문의 단골 표현인 '본의 아니게', '의도와 다르게', '억울하게도'와 같은 오해를 살 만한 단어도 거의 없었다. 그 와중에, 1년째 와병 중인 이건희 회장을 언급한 것은 화룡점정(?)이라 할 만했다.

병원을 대대적으로 혁신하겠다는 대목이나 철저한 조사와 재발방지의 약속은 필수 항목이었을 것이다. 더불어 "응급실을 포함한 진료환경 개선"이나 "음압 병실" 확충, "감염 질환 대처를 위한 예방 활동과 백신과 치료제 개발 적극 지원" 약속도 잊지 않았다.

이어 그는 "말씀드리기 송구스럽지만, 의료진은 벌써 한 달 이상 밤낮없이 치료와 간호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에게 격려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라며 의료진의 노고까지 언급했다. "삼성은 사과문도 다르다"거나 "삼성이 메르스 컨트롤타워냐"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그간 여느 공인이나 유명인들의 사과문이 한결같이 자기변명으로 일관하거나 사과 대상을 적시하지 않는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해 왔기 때문이리라.

이재용 부회장은 자신의 47번째 생일에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 비자금과 관련해 2008년 사과를 한 지 7년 만이다. 삼성 기름유출 사고나 삼성 반도체 노동자 백혈병 사망 때도 꿈쩍하지 않던 삼성이 메르스 사태 때문에 고개를 숙인 것이다. 그러나 잘 만들어진 '사과문'과 달리 이번 삼성의 대국민 사과는 몇몇 이유로 미진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국가가 뚫렸다"던 삼성, 석연치 않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7일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질병관리본부 국립보건연구원 방문,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이 자리에 앉으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7일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질병관리본부 국립보건연구원 방문,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이 자리에 앉으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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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송재훈 삼성서울병원 원장이 충북 오송 국립보건연구원을 찾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90도로 깍듯하게 인사하는 사진이 화제를 모았다. 14일 기자간담회에서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친 것에 대해 사죄한다"고 말한 뒤였다. 앞선 11일, 정두련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과장이 국회 메르스 특별위원회에서 "국가가 뚫렸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던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 사이 세계보건기구(WHO)가 국내 활동을 시작했고, 삼성서울병원을 방문했던 임산부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으며, 사태 초기 삼성서울병원의 대응 미숙이 사태 확산의 요인 중 하나였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삼성서울병원이 부분폐쇄됐다.

방역 당국보다 한 발 앞서 정보공개를 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을 대놓고 힐난했던 삼성서울병원 의사인 35번 환자의 초기 반응에서 보듯, 당당함으로 일관했던 삼성은 정보 공개 이후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나서 대국민사과를 하기까지 20여일이 걸린 셈이다.

앞선 18일 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서울병원을 방문, "죄송하다"며 "사태 해결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사과의 대상이나 시기, 내용 모두 모호했다. 이 부회장이 고개까지 숙인 이번 사과문 발표의 배경을 두고도 여전히 말이 많다. 먼저 이번 메르스 사태로 이뤄진 원격 의료가 여러 의혹을 낳고 있다.

먼저, 보건복지부가 지난 16일 메르스 사태의 최대 진원지인 삼성서울병원에 거대 병원의 숙원 사업과도 마찬가지인 의사-환자간 원격 진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한 것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삼성서울병원의 재진환자를 위해 한시적으로 원격의료를 허용한다고는 하지만 원격의료 허용 방침은 문제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원격의료의 안전성, 유효성 검증이 아직 이뤄지지 않은 부분이다. 메르스 확산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삼성서울병원이 원격의료 도입을 요청한 것이나, 이를 허용한 보건복지부 모두 국민 상식에 벗어나 있을 뿐 아니라, 통렬한 자기반성이 부족한 것으로 판단된다."

대한의사협회가 18일 발표한 '삼성서울병원의 환자안전을 무시한 원격의료를 강력히 반대한다'는 성명의 일부다. 이재용 부회장까지 나선 사과 뒤편에 원격 의료를 포함한 의료민영화에 대한 포석이 깔린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더불어,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삼성서울병원의 대응 미흡은 물론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9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앞에서 열린 보건의료노조 기자회견문의 문제제기는 곱씹을 만하다. 그 중 이재용 부회장과 송재훈 병원장의 기자회견에서 비켜간 문제만 꼽아 봐도 이 정도다.

▲ 돈벌이 경쟁 주도! 직원안전은 사각지대 ▲ 비정규직 차별의 모델? ▲ 총체적 부실대응이 드러났다 ▲ 삼성은 치외법권? ▲ 경쟁 중심의 의료체계, 환자쏠림, 의료양극화! ▲ 이 와중에 원격의료 허용?

지난 19일  삼성서울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
 지난 19일 삼성서울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
ⓒ 보건의료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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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 정부와 삼성 모두가 가장 귀담아 들어야 하는 지적은 바로 "삼성은 치외법권?"과 관련된 부분이다. 일찌감치 폐쇄했던 군소 병원과 달리 14일까지도 부분폐쇄 결정을 내리지 못했던 방역 당국과 삼성 측의 판단 착오는 두고두고 비판을 받고 있지 않은가.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감염병 유행에 대한 방역 조치 권한을 보건복지부장관과 광역자치단체장, 기초자치 단체장에게 주고 있지만, 정부는 삼성서울병원에 대해서만 유독 역학조사와 접촉자 파악을 병원이 하도록 권한을 넘겨주었다.

삼성서울병원은 국가방역망에서 벗어나 특별대접을 받은 것이다. 이에 따라 삼성서울병원은 환자들을 자체로 격리하여 관리했고, 6월 14일 부분폐쇄 결정도 자체적으로 내렸다. 이것은 정부가 갖고 있어야 할 감염관리 통제지휘권을 삼성서울병원에 통째로 넘겨준 것으로서 명백한 위법이다." - 보건의료노조 성명 중 일부

수상한 이재용의 사과와 삼성서울병원 원격의료 실시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5월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바 있다. 직접 이번 메르스 사태의 진두지휘에 나서야 하는 인물이 그인 셈이다. 비록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건으로 골머리를 썩고 있겠지만, 메르스 사태 해결이 먼저다. 더 이상 '세계일류기업'이라 자처하는 삼성의 이미지 손상을 막기 위해서라도 그러하다.

그랬거나 말거나, 박근혜 대통령에게 쏟아지는 "대국민 사과의 민영화"라는 비판은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시기적으로 그리 빠르지 않은, 아니 늦었다고 봐도 무방한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가 호응을 얻는 것도 다 대통령의 은공(?) 덕분이다. '제2의 세월호'라 불리고 있는 '메르스 사태'의 책임을 두고 역시나 거리두기 화법으로 일관하는 대통령이 사과 한 마디 없지 않은가.

청와대와 정부는 이번 주 들어 메르스 사태가 진정되고 있다는 분위기를 확산시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까지 하락한 시점에 마음이 다급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삼성서울병원의 사과로 책임을 면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국민들은 여전히 "국가가 뚫렸다"던 삼성측의 반응을 기억한다. 그 이면에 어떤 논의가 오고갔는지 모르지만, 여전히 메르스 사태는 진행 중이다. 제 아무리 대한민국이 삼성공화국으로 불린다지만, 삼성이, 이재용 부회장이 '메르스 사태'의 컨트롤타워일 수 없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태그:#이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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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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