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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4월 16일 오전 제주도 수학여행길에 오른 안산 단원고 학생을 비롯한 459명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2014년 4월 16일 오전 제주도 수학여행길에 오른 안산 단원고 학생을 비롯한 459명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 해양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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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저녁, 세월호 침몰 사고 뉴스를 지켜보던 민간 잠수사 공우영씨는 급히 짐을 챙겼다. 세월호 인양보다 실종자 수색이 우선이라고 생각한 그는 곧바로 전남 진도 팽목항으로 향했다. 35년 경력의 공씨는 민간 잠수사 중 최고참이었고, 자연스럽게 감독관 역할이 맡겨졌다.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바닷속에서 한 명의 실종자라도 더 찾기 위한 사투가 이어졌다. 그러던 중 사고가 발생했다. 5월 6일 오전 민간 잠수사 이광욱씨가 세월호 수색 작업 도중 사망했다.

민간 잠수사 공씨는 왜 '살인 혐의자'가 되었나?

그리고 4개월 뒤, 공씨에게 날벼락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과실로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며 재판을 받으라는 공소장이 날아 든 것이다. 숨진 이광욱씨의 잠수사 자격 검사와 사전 교육을 소홀히 했다는 게 이유였다.

공씨는 자신에게 특별한 권한이나 책임이 없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당시 수색에 참여한 다른 민간 잠수사들도 공씨가 '감독관'이라는 감투만 썼을 뿐, 해경의 지시를 전달하는 역할에 불과했다고 한다.

사실 잠수사 관리의 총괄책임은 해경에 있었다. 숨진 이광욱씨를 팽목항으로 데리고 온 것도 해경이었고, 잠수사 자격을 검사해야 하는 책임도 해경에 있었다. 하지만 해경은 이씨의 자격증 유무를 확인하지 않았다.

해경 관계자 중 단 한 명도 이씨 사망 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수사를 받거나 내부 징계를 받지 않았다. 대신 모든 책임은 공씨 한 사람에게 씌워졌다.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한 집안의 가장이 스스로 팽목항을 찾아와 자식 같은 어린 생명을 하나라도 구하기 위해 애썼다는 이유로 살인 혐의자가 된 것이다.

공씨 뿐만이 아니다. 세월호 구조 작업에 참여했던 민간 잠수사 78명 중 2명이 사망했고, 8명은 뼈가 계속 썩어 들어가는 골 괴사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정부는 개인 잠수사 지원 근거가 없다며 고개를 돌렸다. 이들 가슴에는 국가에 대한 원망과 배신감, 분노만 쌓여가고 있다.

자신의 책임을 민간에게 떠넘기는 국가

박근혜 대통령이 17일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질병관리본부 국립보건연구원 방문,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이 자리에 앉으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7일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질병관리본부 국립보건연구원 방문,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이 자리에 앉으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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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사태 때문에 대통령님과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 드렸습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지난 6월 17일,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거의 90도 가까이 허리를 숙였다. 이날 박 대통령은 충북 오송에 있는 국립보건연구원을 방문했고, 자리에 어울리지 않게 송재훈 원장이 불려갔다. 그는 "보건당국과 긴밀히 협조하고 최대한 노력을 다 해서 하루 빨리 끝내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며 다시 한 번 '대통령'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날 박 대통령은 송 원장에게 삼성서울병원 측의 뒤늦은 정보 공개와 방역 관리 소홀 등의 책임을 물었다. 박 대통령은 "전부 좀 투명하게 공개됐으면 한다", "더 확실하게 방역이 되도록 해주시기 바란다", "메르스 종식으로 들어가도록 책임지고 해주시기를 바란다"고 송 원장을 몰아세웠다.

대통령이 민간의료기관장을 불러 방역이 뚫린 것에 대해 질타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메르스 사태는 진료의 문제가 아니라 방역의 문제로 드러났다. 진료는 병원과 의사의 몫이고, 방역은 국가의 몫이다. 따라서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에 있다.

'정보의 투명한 공개', '확실한 방역', '방역에 책임지는 것' 등이 모두 정부의 역할이고 의무였다. 사태 초기, 질병관리본부는 메르스 검사를 두 차례나 거부하며 오류를 범하기 시작했고, 역학조사와 후속 조치 등 제 할 일을 제대로 못하면서 방역에 구멍이 뚫렸다. 특히 메르스 최대 진원지가 된 삼성서울병원에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을 맡겨놓은 것은 정부의 책임 방기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잠수사 관리의 총괄책임이 해경에 있었던 것처럼, 초기에 감염자를 가려내고 질병의 확산을 막는 일도 질병관리본부의 책임이다. 정부가 했어야 할 일을 오히려 송 원장에게 책임을 묻는 박 대통령의 모습에서 공우영씨에게 책임을 떠넘긴 해경의 모습이 떠오른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국민에게 떠넘기는 것은 박 대통령이 얘기한 '국가의 의무'가 아니다.


태그:#메르스, #세월호, #민간잠수사,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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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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