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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든 가운데 강북삼성병원의 의료진이 18일 오전 지원근무를 위해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든 가운데 강북삼성병원의 의료진이 18일 오전 지원근무를 위해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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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병원감염의 원조 강북삼성병원이 아이러니컬하게 형을 돕기 위해 나섰다.

메르스 총력 대응을 위해 강북삼성병원이 메르스 최대 진원지가 된 삼성서울병원에 의사 10명, 간호사 100명 등 총 110명으로 구성된 의료지원단을 파견하기로 했다고 한다. 강북삼성병원은 삼성서울병원에 입원 중인 일반 환자들을 옮겨와 코호트 격리 수준으로 관리하면서 치료하기로 했다고도 한다.

'메르스 패닉'에 빠진 삼성서울병원이 동생 격인 강북삼성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진 긴급 수혈을 받기로 했다는 이 소식을 19일 들으면서 운명은 참 얄궂다는 생각이 들었다. 1984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강북삼성병원(옛 고려병원)의 레지오넬라 집단 발생 사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1984년 강북삼성병원 레지오넬라 집단 병원감염 한국을 뒤흔들어

당시 나는 한 일간지에서 의학·과학전문기자로 일하고 있었다. 고려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있던 4명의 환자가 숨지고 간호사 등이 대거 원인 모를 질병에 걸려 치료를 받고 있다는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보건당국은 물론이고 온 나라가 깜짝 놀랐다. 원인은 알 수 없었다. 신문은 1면에 '괴질'이라며 대서특필했다. 그리고 매일 매일 속보를 쏟아냈다.

보건사회부(지금의 보건복지부) 중앙역학조사반이 긴급 투입돼 조사를 벌었다. 감염병이 확실해보였다. 하지만 그 정확한 병원체를 알 수 없었다. 병실 냉방기가 의심됐다.

고려병원 레지오넬라 발병 사건을 보도한 1984년 7월 25일자 경향신문 7면
 고려병원 레지오넬라 발병 사건을 보도한 1984년 7월 25일자 경향신문 7면
ⓒ 경향신문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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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역학, 감염병 역학 등을 가르쳐주게 되는 서울대 보건대학원 김정순 교수(우리나라 역학의 '대모'로 불리며 형사 콜롬보처럼 농촌괴질, 원진레이온 사건 등 많은 감염병 유행과 원인을 밝혀낸 바 있다. 10여 년 전 은퇴해 지금은 서울대 명예교수로 있다)가 외국 출장을 가면서 역학조사반에 레지오넬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고 출국했다.

이를 토대로 이성우 역학조사반장의 진두지휘로 곧 바로 괴질의 정체를 밝혀낼 수 있었다. 중환자실에서 모두 23명이 병실 냉방기를 통해 레지오넬라균에 감염되어 4명이 숨졌다고 방역 당국이 발표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그 이후 여름철만 되면 레지오넬라 주의보가 발령된다. 당시와 같은 집단발병 사망은 그 후 없었지만 산발적으로 환자가 보고되고 있다.

1976년 미국을 6개월간 떠들썩하게 만든 재향군인병

메르스의 원조가 중동이라면 재향군인병이란 이름으로도 부르는 레지오넬라증(legionellosis)의 원조는 미국이다. 1976년 7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는 독립 선언 200주년을 맞아 퇴역 군인들과 관광객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 기념행사를 벌이기 위해 도심에 있던 초특급 벨뷰스트래퍼드 호텔에 집단 투숙했다.

어느 날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고열과 마른기침, 오한, 근육통 증세에 시달렸다. 열이 치솟으면서 헛소리를 하였고 수십 명이 급성 폐렴으로 입원하게 됐다. 그리고 차례로 죽어갔다. 치명적 새로운 감염병에 대한 공포가 도시 전체를 휩쓸었다. 방문객들은 이 호텔과 필라델피아를 서둘러 탈출했다.

그 원인을 두고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테러리스트가 재향군인에게 독을 사용했다거나 필라델피아를 통과하던 기차에서 세균전에 쓸 세균무기가 새어 나왔다는 주장도 있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비밀리에 무고한 시민들에게 세균무기 시험을 했을 수도 있다는 추측과 함께 재향군인들이 독립 200주년을 맞아 흥청망청하면서 매춘여성에게서 감염된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학자까지 있었다.

가을이 되어서야 유행은 221명의 감염자와 34명의 사망자를 내고 종식됐다. 이 괴질 사건은 원인균을 밝혀낼 때가지 6개월간 미국 뉴스의 머리기사를 장식했다.

원인 규명에 나선 미국 질병통제센터(CDC)와 국립보건원(NIH)은 6개월이 지나서야 병원체를 밝혀냈다. 지금까지는 질병을 일으킨 적이 없던 신종 세균 병원체였다. 이 병원체에게는 감염자가 주로 재향군인이었기 때문에 Legionella란 이름이 붙었다. 그 원인균에는 레지오넬라 뉴모필라라는 이름을 붙였다.

만약 삼성이 고려병원 인수하지 않았다면 메르스 저주도 없었을까?

15일 부분적인 병원 폐쇄조치가 내려진 삼성서울병원에서 병원 관계자가 의자를 청소하고 있다.
 15일 부분적인 병원 폐쇄조치가 내려진 삼성서울병원에서 병원 관계자가 의자를 청소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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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새로운 감염병은 늘 두려움과 공포를 사람들에게 주며 인간 사회에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다. 메르스도 마찬가지다.

강북삼성병원의 레지오넬라 집단 발병은 우리나라 감염병사에 주요 사건으로 늘 언급되는, 최초의 병원감염 사건으로 기록됐다.

삼성은 의료부문에서도 제일을 꿈꾸며 고려병원, 제일병원을 사들였다. 대한민국 병원감염의 원조인 고려병원을 인수해 강북삼성병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메르스 사태를 맞이해 삼성서울병원이 병원감염과 메르스 확산의 최대 진원지가 됐다. 우리나라 보건사, 감염병사에서 삼성의 두 병원이 모두 좋지 않은 쪽으로 이름을 남기게 된 것이다. 이를 두고 가장 어울리는 표현은 '아이러니컬하다'가 아닐까. 만약 삼성이 고려병원을 인수하지 않았다면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진원지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하는 엉뚱한 상상까지 해보는 요즘이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태그:#메르스, #레지오넬라, #삼성서울병원, #강북삼성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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