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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대통령이 14일 서울대병원 메르스 치료 격리병동을 방문, 의료진과 통화하고 있다
▲ 격리병실 의료진과 통화하는 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14일 서울대병원 메르스 치료 격리병동을 방문, 의료진과 통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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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16일 오후 12시 2분]

'미장센'(mise-en-scéne), 사전에는 "영화의 한 프레임 내에서 배우와 세트 디자인의 고정된 배열을 묘사하는 프랑스어"라고 나와 있다. 원래 연극에서 출발한 이 용어는 작가주의 감독들이 카메라 앵글, 조명, 소품, 배우 등을 총망라해 한 장면을 어떻게 배치했고 그리하여 어떻게 연출했느냐를 일컫는 말이다. 이 미장센에는 살아 있는 배우까지도 포함된다.

'메르스 사태'가 잠잠해지기는커녕 확대가능성까지 엿보이던 지난 14일 일요일 오후, 여느 예술영화 감독도 울고 갈 강력한 미장센의 사진 한 장을 발견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건 흡사 잘 짜인 각본 아래 능숙한 배우와 그럴싸한 세트를 다양한 앵글로 처리한 영화 '스틸 사진'의 풍모마저 풍긴다.

압권은 전방의 구호다. 굳이 요즘엔 쉽게 볼 수 없는 하얀 A4 용지 위에 적힌 "살려야한다"는 다섯 글자. 메르스 사태 해결을 위한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를 보여주기는커녕, 이 사진이 그저 그간의 '보여주기'와 '이미지 정치'밖에 모르던 박 대통령의 '철학'을 고스란히 폭로하는 꼴이다.

청와대가 공개한 다른 사진이나 <연합뉴스>가 보도한 사진 속 박 대통령도 실소를 자아내기는 마찬가지다. 서울대병원에 따르면 "'살려야한다' 문구는 격리병동 의사와 간호사들이 자발적으로 붙인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청와대는 사진 앵글에 저 "살려야한다"는 구호를 굳이 놔둬야 했는지, 박근혜 대통령은 사태의 심각성과는 사뭇 동떨어진 표정의 '발연기'를 했어야 했는지, 마지막으로 꼭 저리 다양한 앵글로 '연출'임을 강조해야했는지 실로 의문이다.

물론 압권은 기사 제목이다. <연합뉴스>가 처리한 '격리병실 의료진과 통화하는 박 대통령'이란 제목과 사진이 겹쳐질 때야 비로소 이 이미지 정치의 완벽한 미장센이 완성된다. 한데, 이 사진뿐만이 아니다. 휴일엔 보통 쉬는 박근혜 대통령의 평소 행보와는 달리, 굳이 서울을 누비셨다. 민생을 안정시키려는 그 '의지'는 모르는 바 아니나, 그 내용이, 표현이  심히 촌스럽다. 왜 그런지, 청와대의 서면 브리핑을 보면 알게 된다. 

"더운데 우리들을 도와주시려고... 대통령 최고!"

"박근혜 대통령은 메르스 확산으로 해외 관광객이 급감하고, 국내 소비 위축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대문 상점가 밀리오레를 예고 없이 방문하여 상인들을 위로하며 민생 현장을 점검했습니다.

오늘 방문한 밀리오레에는 주말을 맞아 쇼핑에 나선 시민들이 대통령의 깜짝 방문에 놀라며 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들었고, '진짜 박근혜 대통령 맞아? 대박!!', '대통령 파이팅, 힘내세요' 등을 외치며 몰려드는 탓에 근접 경호원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경호에 애를 먹기도….

시민들은 대통령이 움직이는 곳을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거나 응원을 해 주었으며, 많은 시민들은 에스컬레이터 주변에서 에스컬레이터로 이동하는 대통령을 직접 보기 위해 기다렸습니다. 시민들은 연신 휴대전화 셔터를 눌러대며 촬영을 했고, 아이들과 함께 온 엄마 아빠들은 아이들에게 대통령을 보여주기 위해 안거나 목마를 태우기도 했습니다. 사진 촬영에 성공한 사람들은 기뻐하기도…."

웬만한 아이돌 기획사도 보도자료로 내지 않는 '용비어천가'라고 봐도 무방하다. 14일 오후 나온 청와대의 이 서면브리핑에 등장하는 시민들과 상인들의 한마디 한마디를 좀 더 들어보면 이러하다.

"더운데 우리들을 도와주시려고 일요일인데도 나와 주셨네요. 대통령 최고!!"
"다른 바쁜 일도 많으실 텐데 여기까지 와 주셔서 고맙다."
"중국 관광객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너무 없어 어렵다."
"너무 어려운데, 대통령님이 잘 해결해 주시길 기대한다."

"한국대통령과 사진 찍게 돼 놀랍다"라는 소감을 밝혔다는 말레이시아 관광객까지 소개한 이 브리핑은 박근혜 대통령이 "1층에서 지하 1층, 다시 1층으로 이동하며 20여 개의 상점"을 들르며 당초 예정 시간보다 길게 방문했으며, "원피스 2벌, 머리끈 2개, 머리핀 1개를 구입하고, 상인으로부터 네잎클로버 브로치를 선물" 받았다고 적었다. 압권은 물론 마지막 문단이다.

"건물을 나오는 길에 도로 맞은편에 운집해 있던 시민들이 일제히 휴대전화를 꺼내들어 사진을 찍고, 일부는 환호와 함께 손을 흔들기도. 이를 본 대통령이 차에 바로 타지 않고, 길을 건너 기다리던 시민들과 반갑게 악수했습니다. 길을 건너면서 2층 카페에 있던 젊은 여성들이 손을 흔들자 잠깐 발길을 멈추고 웃는 얼굴로 일일이 손을 흔들어 주셨습니다."

'폴생폴사' 박근혜 대통령의 속보이는 행보

14일 오후 동대문 상가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
 14일 오후 동대문 상가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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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엄청난 절박함이 뚝뚝 묻어난다. 메르스 사태가 진정되고 있음을 어떻게든 강조하려는 청와대의 의지, 떨어지는 지지율을 회복하고자 발버둥치는 대통령의 의지 말이다. 이 보도자료에서 하나 다행인 것은 '외계어'로 불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어록이 쏙 빠져있다는 점이리라.

이러한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가, 곤두박질치고 있는 지지율 때문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JTBC <썰전>에 출연한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의 말마따나 박근혜 대통령이야말로 '폴(poll)생폴사' 스타일이 아니던가.

15일 발표된 <리얼미터>의 6월 2주차 정례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34.6%를 기록했다. 전주 대비 5.7%p, 2주 사이 10.1%p 하락한 수치다. 리얼미터측은 "박 대통령이 집권한 후 2주간 10%p 이상 하락한 것은 작년 세월호 참사와 '비선실세 국정개입' 논란이 일었던 시기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라고 밝혔다.

"위기가 기회"라는 수사는 이 정부에선 먹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해결책이나 대책 면에 서 '빵점'임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메르스 사태'에서 보여준 이 정부의 행태야말로 레임덕을 부를 만한 무능력과 불통의 극대치 아니던가.

반면, 복지부와 검경을 활용한 박원순 서울시장 압박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오히려 '골든타임'을 잡기 위해 긴급브리핑을 자청한 박원순 시장에게 복지부가 딴죽을 걸며 끊임없이 잡음을 내고 있다. 수사의뢰를 신속하게 접수한 경찰과 검찰의 신속대응 역시 석연치 않다.

누가 진짜 '메르스 사태'의 불안을 증폭시키나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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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15일 오전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자극적인 발언이나 불안 증폭시키는 것을 자제 부탁한다"고 발언했다. 유언비어에 그리 집착하던 초기와 별반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국민들은 지속적으로 "누가 불안을 증폭하는가"에 대한 대답으로 보건당국과 정부를 꼽는데도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또 "과도한 불안심리 확산을 차단하면서 정상적 경제활동을 조속히 복원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도 했다. 어제 동대문 시장 방문이야말로 이러한 당부를 위한 이미지 메이킹이었음을 스스로 자임한 꼴이다. 허나, 정상적 경제활동에 앞서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야말로 메르스 사태의 조속한 수습과 그에 따른 자연스러운 일상의 정상화가 아니겠는가.

인터넷과 SNS에선 15일 현재 저 "살려야 한다"는 사진의 패러디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각종 포토샵 패러디가 난무하며 "(아버지를) 살려야 한다"부터 "(펜을) 세워야 한다"까지 그간의 무능함과 달리 뒤늦게 '일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대통령에게 한껏 비난을 쏟아 내고 있다. 이날 기준으로 확진자 150명, 사망자 16명이다. 치사율도 10%를 넘어 섰다. 계속해서 불안에 떨고 있는 국민들이 원하는 건 이미지를 통한 '연출'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의 '능력'이다.


태그:#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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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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