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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년만의 가뭄. 강원도 화천 산간 밭엔 심을 농작물이 없다. 비가 내리지 않아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다.
 124년만의 가뭄. 강원도 화천 산간 밭엔 심을 농작물이 없다. 비가 내리지 않아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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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문득 김소월님의 '왕십리'란 시 첫 구절이 생각나는 날이다. '수해가 나도 좋으니 비가 한 닷새쯤 왔으면 좋겠다'라는 것이 강원도 화천 사람들의 공통된 바람이다.

124년 만에 맞은 최악의 가뭄이란다. 전국적으로 볼 때, 강원도가 제일 심각하단 보도가 잇따랐다. 그중 영서지역은 소양강이 바닥을 드러낼 정도로 심각하다. 산간 밭주인은 할 말을 잃은 지 오래다.

"저 밭에 콩과 고구마를 심을 계획이었는데, 이젠 글렀어... 들깨 모종이면 모를까, 근데 그것도 비가 와야 말이지..."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황토색 속살이 누렇게 펼쳐진 건너편 밭을 가리키더니 아내 한숨을 내쉬었다. 50cm 이상을 파도 습기라곤 찾아볼 수 없다. 먼지가 풀풀 날 정도로 땅이 메말라 있다. 황토 흙 밭엔 매년 고구마가 풍년이었다고 했다.

'들깨 모종이나 심지' 라는 말은 그나마 이 시기에 가능한 작물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비가 와야 가능하단 전제를 붙였다.

집수정으로 끌어올릴 물마저 말라... "농사도 이젠 글렀어"

식수마저 말랐다. 매일 커다란 고무대야에 물을 받아야 식수로 쓸 수 있다(왼쪽이 최문순 화천군수).
 식수마저 말랐다. 매일 커다란 고무대야에 물을 받아야 식수로 쓸 수 있다(왼쪽이 최문순 화천군수).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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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토요일, 최문순 화천군수는 간부공무원 몇몇을 소집했다. 이장이나 마을사람들로부터 접수받은 가뭄피해 보고를 받을 것이 아니라 직접 현장을 확인하기로 했다.

"시골 사람들 심성이 당장 먹을 물이 안 나와도, (미안하단 생각 때문인지) 관공서에 신고를 하지 않아."

가뭄으로 간이 상수도가 고갈되어도 1km 남짓 떨어진 샘물을 길어다 먹을지언정 군청이나 읍면에 신고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공무원들이) 군 전체를 신경 쓰려면 바쁠 텐데, 이런 일까지 부탁할 수 있나"라는 것이 산골마을 어르신들의 순박한 생각이라고 군수는 말했다.

"가가호호별로 물을 공급하는 것 보다 산 위 집수정에 물을 붓는 게 낫지 않을까?"
"그건 그런데, 호수가 짧아서..."  
"예산 탓하지 말고, 당장 모터와 호스 사서 조치해!"

어느 마을에서 급수차 물을 커다란 고무대야에 부어주는 한 공무원을 만났다. 호수와 모터가 없어 (차량에 실어온) 물을 집수정으로 올릴 수 없다고 했다. 개별 가구에 물을 대주면 식수로 이용할 수 있을지 모르나 (빨래나 샤워 등) 생활용수 이용은 어렵다. 급수차 물을 산 쪽 집수정에 채우면 30여 가구 불편을 줄일 수 있다.

읍내 사람들은 상수도를 이용한다. 하지만 산 너머 마을까지 공급은 어렵다. 그들은 간이 상수도를 설치했다. 모터를 이용해 저지대의 물을 집수정까지 끌어올린 후 낙차를 이용해 공급하는 구조다. 그러나 지독한 가뭄은 원수마저 고갈시켰다. 집수정으로 더 이상 끌어 올릴 물이 없다.

손가락만한 호박이 성장을 멈췄다

모터도 일손을 멈췄다. 끌어 올릴 물까지 말랐다.
 모터도 일손을 멈췄다. 끌어 올릴 물까지 말랐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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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쯤 녹색의 옥수수가 자랐어야 정상이다. 금년 옥수수 농사는 이미 글렀다.
 지금쯤 녹색의 옥수수가 자랐어야 정상이다. 금년 옥수수 농사는 이미 글렀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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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수정엔 물이 많은데, 마을에 물이 나오지 않는 이유가 뭘까?"
"막혔겠죠."

느닷없는 군수질문에 궁색한 대답을 했다. "뱀이나 개구리가 막았을지도 모르죠." 옆에 있던 이장이 거든다. '무슨 만화 같은 소린가!'라는 생각을 하며 이장 표정을 보니 진지하다.

몇 해 전엔 가뭄도 없었는데, 각 가정 수도꼭지엔 물이 거의 나오지 않았단다. 원인은 죽은 개구리와 뱀이 집수정 배수구를 막았기 때문으로 판명났다. 먹이인 개구리를 따라온 뱀이 물살에 휩쓸려 동반 죽음을 맞이했다.

"덕분에 우리 마을 사람들은 뱀 썩은 물, 즉 약수를 한동안 먹은 거죠"

이번에도 그럴까? 아닌 듯했다. 배수구를 통과한 물은 빠르게 마을을 향해 흘렀다. 근데 왜 40여 가구에 물이 나오지 않을까. 이장의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땅속으로 연결했다는 관을 따라 몇 번을 오르내렸다.

"배관이 터져 다 새 버리니까, 마을에 물이 나올 턱이 없지"         

군수는 풀밭을 가리켰다. 풀만 무성하게 자란 곳을 자세히 보니 물기가 흥건했다. 집수정에서 마을까지 연결된 배관이 터져 물길방향이 틀어졌던 거다. 삽과 괭이를 동원해 터진 관을 막았다.

"호박과 오이는 물이 생명인데..."

호박밭도 시들한 지 이미 오래된 듯했다. 손가락만한 크기의 호박이 성장을 멈췄다. 이같은 현상이 반복되면 농산물시장에서 제값 받기 힘들다는 농부는 연실 양동이에 물을 퍼 날랐다. 공무원들이 나왔다는 게 영 귀찮다는 눈치다.

"소형관정이라도 파 보는 수밖에..."

언제 비가 내릴지 모르는 상황. 인근 땅속에 수맥이 흐른다는 보장도 없다. "이곳엔 물이 흐를 것 같은데..." 언제 그랬냐는 듯, 농부의 표정은 밝아졌다.

최악의 가뭄 속 '물싸움'... "오죽했으면 그랬겠나 싶어"

계곡은 물흐름을 멈췄다. 조그만 교량이 이곳이 계곡이었음을 말해준다.
 계곡은 물흐름을 멈췄다. 조그만 교량이 이곳이 계곡이었음을 말해준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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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물싸움'이 벌어질 뻔했지. 생각해보면 오죽했으면 그랬겠나 싶기도 해요."

화천군 서오지리 마을. 갑자기 마을로 공급되는 수량이 적어졌다. 빨래나 샤워는 마을방송을 통해 한 집 건너 한 번씩 하도록 권해야 할 정도다. 사람들은 가뭄 때문이라 여겼다. 어느날 아침나절, 이장은 취수구 뚜껑을 열었다. 취입구를 통해 들어오는 물이 시원치는 못해도 밤새 고이면 주민들 생활에 불편함은 없을 정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새는 곳도 없다. 그런데 왜 물이 부족하단 말인가.

"범인은 인삼밭 주인이었어요.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서오지리 마을은 춘천시와 경계를 이룬다. 건너 마을인 춘천시 오탄리에 사는 김아무개씨는 인삼을 재배한다. 장기간 비가 오지 않자, 인삼 대공이 시들기 시작했다. 방법이 없다. 김씨는 밤마다 취수장에서 물을 빼갔다.

행정편의를 위해 그어 놓은 자치단체 간 경계, 춘천시에 사는 사람이 저지른 행위라고 탓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두 마을 사람들이 아옹다옹 싸우는 일은 없다.

논으로 연결된 물길. 이 물을 모아 논으로 보내는 농부들이 애처롭다.
 논으로 연결된 물길. 이 물을 모아 논으로 보내는 농부들이 애처롭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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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시추현장이 아니다. 모내기를 하지 못한 농부들은 물이 필요하다. 이곳 저곳 관정을 판 흔적이 보인다.
 석유시추현장이 아니다. 모내기를 하지 못한 농부들은 물이 필요하다. 이곳 저곳 관정을 판 흔적이 보인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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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마을을 좀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

커다란 관정 옆 논, 물기가 마른 지 오래다. 불과 5m 남짓 거리엔 대형 관정이 있지만, 옆의 논은 마치 거북 등껍질 같다.

이유가 뭘까. 논 옆에 관정을 팠던 농부는 도시사람에게 땅을 팔았다. 당연히 관정도 포함됐다. 땅을 산 (도시에서 온) 사람은 농사가 목적이 아니었나보다. 토지엔 잡초만 무성했다. 그런데도 관정 물 공급을 할 수 없단다. "'너는 너, 나는 나'라는 도시사람들의 이기주의" 시골사람들에겐 익숙지 않은 문화다. 이 또한 행정에서 중재해야 할 부분이다.

"스프링클러, 관정 파기, 호스와 모터 구입... 얼마나 될까?"

최문순 군수는 이날 현장에서 체크한 내용을 보며, 급한 대로 2억 7천만 원의 예비비를 풀기로 했다. 그것으로 완전히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다음 주부터 전 직원을 가동해 조사에 나설 경우 얼마나 더 많은 가뭄복구 예산이 소요될지 모른다.

다리를 놓거나 마을앞길을 넓히는 공사는 미루기로 했다. 당장 시급한 것은 산골마을 사람들을 가뭄으로부터 구하는 일이다. 이도저도 여의치 않으면 중앙부처에 특별교부세라도 요구해야 할 급박한 상황이다.

○ 편집ㅣ박혜경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신광태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기획담당입니다.



태그:#화천, #가뭄, #화천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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