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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살. 유치원 3년차. 별탈없이 잘 다니던 아들이 어느 날 아침 갑자기 "가기 싫다"며 자체 휴원을 선포했다. 당황스러웠지만 애써 침착한 척하며 이유를 물으니, 우물쭈물거리기만 할 뿐 속시원한 대답을 안 한다.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유치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아니요."
"그런데 왜 안 가려고 해?"
"그냥 집에 있고 싶어서요."
"무슨 이유가 있을 거 아냐, 엄마한테 말해 봐."
"................"

무슨 이유가 있는 게 분명한데 망설이고 있다. 이럴 때는 조금 기다려주는 여유가 필요하다. 이유를 알아내려고 꼬치꼬치 따졌다가는 역효과를 보기 십상이다. 일단은 집에서 쉬기로 하고 잠시 뒤에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분위기를 바꿔본다.

"유치원이 갑자기 가기 싫을 정도면 뭔가 힘든 일이 있구나.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럴까. 괜찮아. 말하고 싶을 때 엄마한테 말해 줘."
(고개를 끄덕이더니)"00이가 나한테 자꾸 나쁘게 굴어요. 매일 매일 나쁘게 구니까 보기 싫어요. 가기 싫어요."
"그랬어? 그래서 많이 힘들었구나."

토닥토닥 거리며 안아주고 위로의 말을 건네니, 그동안 유치원 다니면서 받았던 스트레스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한다. 마음이 여리고 남한테 싫은 감정을 똑바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들이 저보다는 한참 드센 친구 녀석을 만나 어려워하고 있었다. 아들은 "나한테 그러지마!"라고 자기 의사를 명확히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참고 속으로만 삭이다보니 어느새 한계점에 달해 유치원 자체를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유치원에 득달같이 전화해 무슨 큰 일이라도 난 것인 양 유난 떨기는 싫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풀지 않은 채 아이가 원하는 대로 유치원을 무기한 안 나갈 수는 없다. 그러면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 된다.

집을 떠나 유치원에서 배우고 경험하는 또래 친구와의 관계가 늘 좋을 수만은 없다. 투닥거리며 싸우기도 하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함께 뭉쳐 놀기도 하고. 그러면서 사회적 관계를 학습하고 사회성을 체득해 나간다. 아이는 지금 그 여정에 첫 번째 난관을 만난 셈이다. 엄마인 나는 아이의 '멘토'로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유형의 부모인가?

 <내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 감정코치> 표지
ⓒ 이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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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에게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싶다"는 바람과 "실제로 이것을 하기 위한 방법이 있는가?"라는 현실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21쪽)

존 가트맨의 <내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한국경제신문 펴냄)에 나오는 대목이다. 워싱턴 주립대학 심리학 교수인 존 가트맨은 '감정'에 초점을 둔 부부, 부모-자녀 관계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이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아이 행동의 원인을 몰라 난감할 때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누구나 좋은 부모가 되기를 원하지만, 변화무쌍한 아이의 생각과 행동에 적절히 대처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헤맬 수밖에 없다. 저자는 부모가 부모답기 위해 익혀야 할 기술이 반드시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아이의 감정은 받아주되 행동은 고쳐주는 기술, 즉 '감정 코칭'이다.

부정적이고 나쁜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아이가 이 시기(아동기, 5~8세)에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사항이다. 자기감정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습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적절하지 못한 행동은 스스로 규제할 줄 알고, 자신의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정신력과 여러가지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243쪽)

저자는 "감정코치를 하는 부모는 아이가 감정이라는 세계를 헤쳐 나가도록 길잡이 역할을 한다, 감정을 모두 받아들이지만 부적절한 행동은 제한하고, 아이에게 감정조절 방법과 적절한 분출구를 찾는 방법, 문제 해결 방법을 가르친다"고(82쪽) 설명한다. 감정 코치에 능숙한 부모는 자신의 감정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감정을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하지만 모든 부모가 감정 코치를 잘 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마다 양육방식이 다 다르듯이, 아이의 감정에 대처하는 모양도 다 다르다. 때문에 부모가 정서적으로 똑똑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우선, 나의 양육 방식에 대한 진단이 필요하다. 부모 자신이 감정 대응 방식을 이해하고 이것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해 고쳐나갈 부분이 있다면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 책은 부모의 양육 방식에 대한 '자가진단 테스트'를 제공하고 있다. 80여 개에 달하는 테스트 문항을 끈기있게 풀고 나서 지시에 따라 통계를 내면 부모의 양육방식을 유형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 테스트 결과에 따라 양육 방식은 '축소전환형' '억압형' '방임형' '감정코치형' 등 네 가지로 나뉜다. 나도 풀어보았는데 나는 '방임형'이라는 진단이 나왔고 '억압형'도 생각보다 높은 수치를 보였다. 어쨌든 '감정코치형'은 아니었다.

'방임형'은 아이의 감정을 방관자적 입장으로 바라보려는 경향이 강하다. 아이들의 분노와 슬픔은 '분출하면 해결되는 단순한 것'으로 여기며, 감정에 관해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확실히 알지 못한다. 결국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 같지만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모든 것이 엉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억압형'은 아이에게 비판적이고 아이와의 정서적 공감대 형성이 부족하다. 아이의 부정적 감정을 단순히 무시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특히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감정과 관련된 행동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아이가 화를 내는 원인에 집중하기보다는 화를 내면서 하는 행동을 더 중시하는 것이다.

'축소전환형'은 감정적이 되면 자제력을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아이의 감정을 부인하거나 무시한다. 이들은 아이의 부정적 감정을 가볍게 여기며 아이의 감정에 대한 자신의 무관심을 합리화하고 아이는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감정코치형'은 아이의 감정은 모두 받아들이되 부적절한 행동은 제한하고, 아이에게 감정조절 방법과 적절한 분출구를 찾는 법, 문제 해결 방법을 가르친다. 이들은 슬픔, 분노, 두려움처럼 부정적인 감정도 인생에 유용한 의미가 있음을 안다. 또한 '감정코치형'은 부모가 아이에게 상처되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 주저하지 않고 아이에게 사과한다. 이런식으로 하나의 사건은 서로의 친밀감을 높일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된다.

부모의 '감정 코칭' 5단계, 이렇게 해보자

아이가 대인관계에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데 두려워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고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는 뜻이다. 결국 유치원에 가기 싫다는 아이의 어려움은 엄마인 나의 양육방식에서 기인한 바가 컸다. 한 연구에 따르면 유아기 아이는 양육자에게 1분에 세 번 이상의 요구를 한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엄마는 지칠 때가 많다. 평소 내 감정이 어지럽고 힘들다는 이유로 아이의 감정을 모른 척하거나 억누르려고 하지는 않았을까. 반성이 되고 아이에게 미안해진다.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결과는, 부모가 감정코치법으로 자녀를 양육할 때 자녀의 회복력이 훨씬 뛰어났다는 사실이다. 달리 말해 감정코치를 받은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매우 똑똑했다. 물론 그 아이들도 당연히 슬퍼하거나 분노하거나 무서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스스로를 안정시키고,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 제자리를 찾고, 생산적인 활동을 지속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29쪽)

이제 '방임형' 진단을 받은 내가 '감정코치형'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이 책에서 부모의 감정 코칭 5단계를 제시한다.

1단계는 아이의 감정을 인식하는 것이다. 감정의 인식이란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음을 깨닫고 그때의 감정이 무엇인지 구분하며 다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민감하게 살피는 것이다. 저자는 "누구나 그렇듯이 아이들도 그런 감정을 갖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런 이유를 정확히 말할 수도 말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이가 전혀 엉뚱한 문제에 화를 내거나 신경질을 낼 때마다 한 발 물러서서 아이의 삶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큰 그림을 봐야 한다"(123쪽)고 충고한다.

2단계는 아이의 감정이 격해지는 순간을 친밀감 조성과 교육의 좋은 기회로 삼는 것이다. 아이가 화내는 것은 부모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 아니다.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얘기하고 이름을 붙이고 이해받았다고 느껴야 부정적 감정이 말끔히 사라진다. 이것은 이번 일을 겪으면서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이다. 유치원에 가기 싫은 아이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인정해주자, 아이는 그것을 스스로 극복할 의지를 내보이기 시작했다.

3단계는 아이의 감정이 타당함을 인정하고 공감하며 경청하는 것이다. 풍부한 감성으로 아이가 느끼는 것을 함께 느껴야 한다. 4단계는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저자는 "감정코치에서 쉬우면서도 가장 중요한 단계는 아이가 감정이 생겼을 때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도록 하는 일"(134쪽)이라고 설명한다. 형태가 없고 막연한 두려움, 불편함 같은 감정에 구체적인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 감정을 모든 사람이 겪는 감정이자 누구나 다스릴 수 있는 감정이라는 사실을 느끼는 것이다.

마지막 5단계는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이끌면서 행동에 한계를 정해주는 것이다. 아이가 느낀 감정에 대해 그럴 만하다고 긍정해주되, 좀 더 나은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하면 아이의 성품과 자존감이 전혀 훼손되지 않는다.

저자는 "부모가 아이의 감정에 공감하고 아이가 분노, 슬픔, 두려움 등의 부정적 감정을 극복하도록 이끌 때 부모와 아이 사이에는 지지와 애정이라는 유대관계가 형성된다. 규칙 준수, 순종, 책임감은 아이가 가족 내에서 느끼는 사랑과 연대감에서 나온다. 가족 구성원간의 정서적 상호작용은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고 도덕적인 인간을 키우는 토대가 된다"고(17쪽) 강조한다.

훌륭한 양육법은 복잡한 이론이나 상세한 규칙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마음'에서 나온다. 중요한 것은 이 '부모의 마음'이 무엇인지 부모 스스로 그 실체를 명확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부모의 마음이 막연하면 아이의 감정도 막연하게 대하게 된다. 나의 양육방식을 구체적으로 진단하고 점검해보는데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거나 육아에 어려움을 겪는 부모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내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 감정코치>(존 가트맨 지음 / 한국경제신문 펴냄 / 2007.04 / 1만3000원)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내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 - 감정 코치

존 가트맨 지음, 남은영 감수, 한국경제신문(2007)


태그:#감정코치, #양육방식, #육아, #E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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