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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메르스 확산의 원인을 분석하면서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부실한 방역체계와 공공의료, 입원환자가 비좁은 다인 병실에 여러 종류의 환자들과 함께 입원하는 국내 의료현실, 그리고 가족이나 지인이 간병 또는 문병을 목적으로 자유롭게 환자와 접촉하는 관행 등은 타당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한 가지를 보태야만 균형잡힌 설명이 될 것입니다.

국내 첫 번째 메르스 환자인 60대 남성이 확진(5월 20일)되어 국가지정격리병상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약 10일간 4개 병원을 경유했다고 합니다. 이는 OECD국가 중 대한민국에서 가장 흔한 전형적인 의료기관 쇼핑 현상입니다. 주치의제도가 없어서 최초 진료를 신뢰할 만한 주치의로부터 받지 못한 결과입니다.

이 분은 처음 진료과정에서 중동지역 여행사실을 밝히지 않다가, 4번째 병원에서야 바레인 여행력만을 알렸지만, 그것도 사우디 및 아랍에미리트 방문 사실을 빠뜨린 정보였다고 합니다. 행위별수가제와 저수가로 짧은 진료시간이 관행화되어 있는 대한민국 진료현장에서, 환자-의사 간에 충분한 의사소통이 어렵습니다. 바로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 부실에 의한 현상이 드러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나라에 주치의제도가 있었다면, 이 60대 남성은 첫 번째 진료를 낯이 익은 주치의에게 받았을 것입니다. 그 주치의는 이 환자의 맥락(과거력, 직업, 가족관계 등)을 바탕으로 중동지역 여행사실 등 충분한 병력청취 후 진료를 하였을 것입니다. 아울러 발열 양상이 주치의가 흔히 진료하는 일상적인 몸살과는 다른 점을 간파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경우 바로 확진을 위하여, 감염병 전문의가 종사하는 의료기관에 의뢰를 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방문한 의료기관 수는 절반일 것이고, 접촉한 의료진의 수도 절반에 불과할 것입니다. 아마도 확진까지 소요시간도 절반이었을 것입니다. 대규모 확산을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국내 메르스 환자 발생 사실이 세계적인 관심거리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국내에서 메르스 확산사태의 책임을 환자의 무분별한 행동, 의료진의 부주의, 또는 공무원의 초동대처 미숙 등 개개인에게 묻는 것은 부질없는 일입니다. 이번 사태의 책임을 굳이 묻는다면, 보건의료를 국부창출의 방편 쯤으로 생각하고 의료영리화·산업화를 추구하는 고위공직자 정치인들에게 물어야 할 것입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공의료의 중요성과 주치의제도 도입의 필요성 등 국내 보건의료체계 전반을 검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재호 시민기자는 가톨릭의대 교수입니다. 이 기사는 필자의 페이스북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메르스, #중동호흡기증후군, #보건의료, #주치의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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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가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그 이면에는 부끄럽고 부당한 일들이 많습니다.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조장하여 세상을 어지럽히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세상에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써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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