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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법을 만드는 곳이고, 행정부는 권한을 위임받아 법을 집행하는 곳이다. 그런데 법을 만드는 것과 현실에서 집행하는 것 사이에는 시공간적 또는 기술적-전문적 간극이 있을 수 있다. 이른바 '행정입법'은 그 간극을 최소화하기 위해 입법부가 행정부에 범위를 정해서 위임한 입법이다. 그래서 달리 '위임입법' 또는 '종속입법'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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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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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입법의 근거 규정은 헌법 제75조(대통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에 관하여 대통령령을 발할 수 있다)와 제95조(국무총리 또는 행정각부의 장은 소관사무에 관하여 법률이나 대통령령의 위임 또는 직권으로 총리령 또는 부령을 발할 수 있다)이다.

즉, 헌법은 국회가 제정한 모법(母法)인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정한 위임 범위 안에서 대통령의 행정입법권(대통령령)을 부여하고, 또한 법률과 대통령령의 위임 범위 안에서 총리와 각부 장관의 행정입법권(총리령 또는 부령)을 부여하고 있다.

정부의 세월호특별법시행령이 국회법 개정에 직접적 원인 제공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이 29일 새벽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의원 246명 중 찬성 233명, 반대 0명, 기권 13명으로 통과됐다.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이 29일 새벽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의원 246명 중 찬성 233명, 반대 0명, 기권 13명으로 통과됐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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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효율성을 중시하는 행정부는 입법 취지나 위임받은 사항을 넘거나 재량권을 남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국회가 행정부가 만든 행정법규(시행령)가 모법인 법률에 위반되었는지 아닌지를 심사하는 것은 입법부 본연의 권한이자 의무이다. 모법의 위임을 벗어난 행정입법은 국회 입법권을 무력화할 소지가 크다. 그래서 국회에 행정입법에 대한 통제권을 부여하고, 사법부(대법원, 헌법재판소)에는 심사권을 부여한 것이다.

개정 전 국회법 제98조의 2(시행령이 법률과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단될 경우, 국회는 소관 부처의 장에게 그 내용을 통보할 수 있다)도 바로 이러한 입법부의 행정입법에 대한 통제권을 규정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헌법학자들 사이에도 이견이 없다.

문제는 지난 5월 29일 "행정입법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아니한다고 판단되는 경우 소관 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로 수정해 본회의를 통과한 국회법 개정법률안에 대한 해석의 차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 법률안에 대해 삼권분립의 위배와 위헌성을 제기하며 거부권 행사를 시사하고, 야당은 이를 '입법부에 대한 전쟁선포'로 간주하는 극한의 대립양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국회 재적의원 298명 가운데 2/3가 훨씬 넘는 211명이 찬성해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의 골자는 행정입법에 대한 통제권을 '통보권'에서 '수정-변경 요구권'으로 강화한 것이다. 국회가 이처럼 통제권을 강화한 직접적 계기는 국회가 만든 법을 정부가 행정입법으로 무력화한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 국회가 행정입법 통제권을 강화하는 데도 정부가 마련한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이 직접적 원인 제공을 했다. 정부가 시행령에 세월호 사건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진상 규명을 맡는 핵심 보직인 조사1과장에 검찰 서기관을 파견한다고 규정하자, 야당은 독립적인 조사를 보장한다는 세월호특별법의 취지에 어긋난다며 강력하게 반발하며 벼르던 터였다.

모법 침해 및 상위법 위반에 입법부의 누적된 불만 폭발

 29일 새벽 진통 끝에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와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수정 등 핵심 쟁점에 합의한 새누리당 유승민,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가 운영위원회 전체회의를 마친후 대화하고 있다.
 29일 새벽 진통 끝에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와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수정 등 핵심 쟁점에 합의한 새누리당 유승민,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가 운영위원회 전체회의를 마친후 대화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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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행정부의 시행령과 시행규칙, 고시 등이 모법을 침해하거나 상위법을 위반하는 '하극상' 현상은 비단 세월호특별법 시행령만이 아니다. 강기정 새정치연합 정책위의장이 1일 공개한 입법권 침해사례에 따르면, FTA체결에 따른 농어업인 등의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지급되는 직불금 규모를 대폭 삭감한 농식품부의 '고시' 등 14개나 된다.

이번 국회법 개정협상을 주도한 이종걸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도 1일 "법의 개정안 취지는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이었지만 과잉 행정입법을 한 행정부에게 입법의 취지대로 시행해달라는 요구를 당연히 해야 한다"면서 "4대강 사업이라든지 어린이집 누리과정, 지방재정법, 노동관계법에 관한 시행령을 손을 대려고 한다"고 밝혔다.

입법부의 수장인 정의화 국회의장 또한 지난해 11월 이례적으로 "정부의 행정입법이 상위 법령인 법률을 훼손하는 이른바 법령의 '하극상'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시행령이 변질된 경우 정부에 시정을 요구할 수 있도록 '시정요구권'을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반면에 행정부의 수장인 박근혜 대통령은 그동안 경제활성화 및 민생 관련 법안, 규제개혁 관련 법안 등을 예로 들며 국회와 정치권이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해왔다. 또 박 대통령은 각종 회의석상에서 국회의 법률 처리가 늦어지더라도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조치를 우선 취하라는 뜻에서 행정입법 활용을 강하게 주문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점에서 이번 국회법 개정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시행령이나 고시·지침과 같은 행정입법이 상위 법령인 법률의 권한을 침해해 온 것에 대한 입법부의 불만이 폭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위헌 논란이 일자 국회 사무처가 1일 발표한 '국회법 개정안 본회의 의결 관련 검토' 자료에서 "(개정안 의미는) 법률의 위임을 벗어난 행정입법을 합리적으로 수정해 국회 입법권을 보장하려는 것"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행정입법 국회 통제권은 김대중 정부 시절에 강화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회의 정부 시행령 수정에 대해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회의 정부 시행령 수정에 대해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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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행정입법을 둘러싼 행정부와 입법부의 갈등은 해묵은 것이다. 이른바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통제 권한을 처음 마련한 이는 야당-여당 원내총무와 법무장관을 두루 거친 박상천 의원이다. 검사 출신인 박 의원은 96년 11월 야당인 새정치국민회의 시절에 "행정부가 비대해지면서 행정권 남용을 통제하기 위한 국회의 비판기능이 더욱 중요시되고 있다"면서 정부가 시행령을 만들었을 때 일주일 이내에 국회에 그 내용을 보고하도록 한 문제의 98조의 2를 신설한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해 이듬해 통과시켰다.

이어 박 의원은 여당인 새천년민주당 원내총무와 법무장관에서 물러난 2000년 2월에도 행정입법에 대한 통제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당시 개정안은 행정입법이 법률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국회가 '시정'까지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이번 국회법 개정안과 흡사했다. 그렇지만 공동여당인 자민련의 원내총무이자 판사 출신인 김학원 의원이 3권 분립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반대했고, 결국 '시정'이 아닌 '통보'를 하는 선에서 법안 내용이 절충되어 처리됐다.

이어 2002년 3월 16대 국회에서는 행정입법이 폐지된 경우에도 이를 국회에 제출하고, 제출 기간을 7일에서 열흘 이내로 연장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또 행정입법을 '국회'가 아닌 '소관 상임위원회'에 직접 제출하도록 명시했다. 이처럼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통제권을 처음 마련하고 강화한 것이 김대중 정부 시절이었고, 그것도 여당이 주도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국회의 행정입법 통제권은 김대중 정부 시절에 도입한 국회 인사청문회 제도와 함께 행정부 통제수단의 양대 산맥이었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국회의 행정입법 통제권을 강화하는 취지의 개정안을 주도한 적도 있다. 한나라당은 2004년 총선에서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국회 권력(다수당)을 열린우리당에 넘기게 되자 국회 권한을 강화해 노무현 정부를 견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하게 제기했다. 그 결과 2005년 7월 17대 국회에서 대통령령의 입법예고안도 국회에 제출하도록 하고, 지적사항을 통보받은 중앙행정기관은 이에 대한 처리 계획과 결과를 소관 상임위에 보고 하도록 '심사의견 처리 의무'가 추가되었다.

한편, 이번 개정안은 국회 운영위원회, 여야 국회의원 5인이 제안한 국회법 개정안을 바탕으로 운영위원회 소위원회가 마련한 안을 대안으로 해서 마련된 개정안이다. 국회 운영위 제도개선소위는 국회의장이 국회개혁자문위원회 자문을 받아 제시한 개혁안(행정입법 중에 법의 취지를 벗어나거나 위임받지 않은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권익이 침해될 가능성이 증가하고 있으므로 국회의 행정입법 통제 기능을 강화함으로써 국민의 권익을 보호·증진할 필요가 있음)을 토대로 만든 것이다.

이처럼 국회에서 행정입법 통제권이 신설되고 강화된 취지와 과정을 보면, 이번 국회법 개정의 직접적 원인 제공자는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을 밀어붙인 박 대통령이다. 또한 이번 개정안은 행정부의 누적된 '입법 하극상'을 바로 잡는 차원에서 국회의장이 제시한 개혁안이나 윤영석 새누리당 의원이 제시한 개정안보다도 후퇴한 것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국회가 행정부의 집행권을 무력화시켰다'면서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것은 국회를 '통법부'로 간주하는 '유신공주'의 사고에 머물러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덧붙이는 글 | * 김당 기자는 19대 국회 헌법개정 자문위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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