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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지 입구
 혼인지 입구
ⓒ 정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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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는 나이 지긋한 어른신들에게는 예혼, 열온이라 불린다.

예전에 제주의 태초라 불리는 고, 양, 부 삼신인이 이곳에서 세 신부를 맞아 혼례를 지냈으므로 예혼이라 했던 것이 음·양의 조화를 이룬 태평한 곳이라는 뜻으로 온평리로 바뀌었다.

삼성혈에서 태어난 고, 양, 부 삼신인(三神人)이 수렵을 하다 지금의 온평포구에 도착하고, 바다에서 떠내려온 자줏빛 나무함을 발견한다. 함을 열자 벽랑국 세공주가 나타나 삼신인이 기쁨의 소리를 질렀다고 해서 그 온평포구를 예전에는 '화성개'라 불렀다.

또한 그때 석양이 바닷물에 비쳐 황금빛 노을이 출렁거렸고 그런 연유로 그 바닷가를 '황노알'이라 불렀다니 지역명, 바다명 하나에까지 옛사람들의 감성이 미치지 않은 것이 없다.

 하얀 코스모스와 현무암돌의 경계를 두고 못위에 연꽃들이 피어있다.
▲ 혼인지 전경 하얀 코스모스와 현무암돌의 경계를 두고 못위에 연꽃들이 피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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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여가 만나니 화촉을 밝히는 것도 당연한 일. 성산읍 온평리에 번창함의 시작을 알리는 못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삼신인과 세공주가 혼례를 올렸다는 이 곳은 삼성혈과 함께 탐라국 시조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는 개벽신화의 중심지인 혼인지(婚姻池)다.

중산간 마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봉천수로 된 이 연못은 웬만한 가뭄에도 바닥이 드러나지 않아 옛날 온평리 마을 사람들에게는 식수와 농업용수로 이용한 생명수의 원천이었다.

1972년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7호로 지정된 혼인지는 올레 2코스의 후반부에 포함 된 장소지만 주변관광지인 성산일출봉, 표선 해비치 해변, 섭지코지보다 관광객들의 발길이 뜸하다. 그래서 쉼의 찰나를 느끼고 싶다면 느릿한 걸음으로 한 바퀴 휘 돌아보기에 안성맞춤이다.

혼인지로 들어서면 관리사무소와 화장실이 기와형태로 지어져 있다. 이름 모를 보라색 꽃이 만발한 나무 한 그루가 바람사이로 흔들리고, 매끈한 돌길 옆에 사람의 손길로 심어진 쑥의 향이 새콤한 혼인지 입구다.

마치 봐서는 안 될 것 같은 부끄러운 마음 반, 호기심 반이 마음에 차올라 더듬더듬 더딘 발걸음으로 길을 따라 걸으면 한 여름 7~8월에나 핀다는 진분홍, 연분홍 연꽃들이 따뜻한 제주 날씨에 속아 지금 5월 중순께부터 얼굴을 내밀고 있다.

진흙탕에서도 때묻지 않는 수려한 연꽃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다.
 진흙탕에서도 때묻지 않는 수려한 연꽃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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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 위에 두둥실 떠 있는 연꽃들의 소담하고 새초롬한 모양을 예전 벽랑국 공주들이 시샘하여 고운 손으로 '똑' 하고 꺾어 그것을 바가지 삼아 이곳에서 목욕재계하지 않았을까.

이른 여름에도 보기 힘든 연꽃도 잠시 들린 관광객에게 기쁨에 연신 취하게 할진대 나무테크로 이뤄진 산책로를 따라 오른편에는 진흙위에 피어도 그 더러움에 때 타지 않는다는 연꽃이, 왼편에는 가을의 상징인 코스모스가 무더기로 피어있다.

가을이 아니라 하얗게 태어난 것인지 모를 코스모스의 새하얀 물결과 진분홍 연꽃의 향연을 눈에 담아가는 행운을 지금이 아니면 잡을 수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얀 코스모스 밭
 하얀 코스모스 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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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코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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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롱거리는 울창한 나무가 산책로를 따라 그늘길을 만들고, 좀 더 들어가다 보면 땅 속으로 푹 들어간 굴을 볼 수 있다. 이 곳은 삼신인과 벽랑국 세공주가 첫날밤을 지낸 곳으로 '신방굴'이라 불리며, 하나로 뚫린 보통의 굴(窟)과 달리 안쪽이 세 개의 방처럼 분리돼 있는 신묘함을 더해 신화의 정설에 힘을 실어준다.
혼인지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바람도 쉬어가는 따뜻한 봄날을 느낀다
 혼인지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바람도 쉬어가는 따뜻한 봄날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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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지에는 폐백실과 전통음식점도 있다. 폐백실이 있는 이유는 전통 혼례를 이곳에서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온평리마을회는  일반 사람들에게 전통혼례문화와 함께 혼인지의 지역적 문화 스토리를 결합해 전통혼례 예복 등을 대여하고, 혼례의식에 필요한 절차 및 식순 등을 도와주고 있다. 특히 온평리마을회는 늦가을 무렵인 10월 중순에서 11월 초순 사이에 혼인지 축제도 매년 개최하고 있다.

연분홍 연꽃과 들꽃
 연분홍 연꽃과 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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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 떠내려온 황노알, 그들이 만난 화성개, 조화를 이룬 혼인지, 그리고 온화하고 평화롭다는 '온평리'. 제주 최초의 혼인이 이뤄진 이곳에 '함께 하자'는 굳은 언약을 맹세한 신혼, 중혼, 황혼의 여러분이 결혼의 의미를 되새기러 와보는 것은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인터넷신문 제주시대에도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태그:#제주생각여행, #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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