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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창고 외관
 아트창고 외관
ⓒ 정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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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이 드문 조용한 마을에 활기 가득찬 보따리 한 짐 지고 돌아다니는 그녀가 떴다. 검은 안경테 속 감각적인 눈빛을 한 그녀는 전기 공구 한 상자 들고 마을 내의 폐창고를 찾아 예술의 힘을 입히며 독특한 공간을 창조하는 박금옥(46)씨다.

지난 2011년 제주도 성산읍에 있는 두모악 김영갑 갤러리 바로 앞에 삼달곳간 '쉼'이란 이름으로 빈집프로젝트 1호 사업을 도맡았던 그녀가 3년여의 프로젝트 수행을 마치고 이번에는 구좌읍 덕천리 383번지에 같지만 전혀 다른 아트 창고를 열었다.

올해 1월 덕천리에서 20년 동안 방치돼 있는 폐창고를 발견한 그녀는 바로 새집 단장에 돌입했다. 조소가 전공인 그녀의 주 목은 목수, 혼자서 전기 배선부터 흐트러졌던 건물의 수평 경계까지 바로 잡고 제주시내에 있는 집에서 출·퇴근하며 밤샘 작업을 불사해 조용하다 못해 사람 한 번 보기 힘든 마을에 재미있는 창작 공간을 투입했다.

사실 이번 아트 창고는 지난 삼달곳간 프로젝트를 지원했던 제주문화예술재단의 도움 없이 자비를 들여 독립적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조각가 박금옥, 그녀는 왜 빈집을 개조하고 있을까. 덕천리에서 작은 모임을 갖고 있다는 소식에 부리나케 달려갔다. 아트 창고 입구에 들어서자 나무 테이블 위로 막걸리 한 사발씩 쟁기는 박금옥씨가 눈에 들어왔다. 서글서글한 인상 위로 뚝심이 묻어나는 그녀를, 지난 9일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눠봤다.

사실상 중단된 프로젝트, "사명감을 갖고"

아트창고 외관
 아트창고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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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창고 내부
 아트 창고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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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
 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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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자치도와 재단 등에서 행정적 지원, 특히 공모 사업의 형태로 지역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있지 않은가. 특히 새로운 창작 공간의 확대를 크게 반기고 있는 형국인데 그런 지원 없이 혼자서 이곳을 만들어낸 이유가 있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빈집프로젝트 사업이 사실상 중단되었다. 빈집프로젝트 1호는 내가 주도했던 성산읍 삼달리의 '쉼'이었다. 이후 2012년에는 남원읍 하례리에 '꿈꾸는 고물상'이 2013년에는 애월읍 봉성리에 '반짝반짝 지구 상회' 애월읍 유수암리에 '유수암버스차부'다.

농어촌 지역 빈 공간을 재활용하고 예술 지원 정책의 패러다임을 변화케 한다는 목적으로 제주문화예술재단에서 진행된 사업이었지만, 진행 중인 다른 곳의 사업들도 애당초 계약 기간이 끝나면 사라지게 될 것이고, 다음을 기약하는 프로젝트 사업이 없어졌기 때문에 지원에 대한 부분은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지금 이곳 덕천에서 나만의 빈집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이유는 사명감 때문이다.

사명감이라는 것은 별 거 없다. 조각 전시를 하며 작품 활동에만 전념했던 내게 지난 삼달리프로젝트는 인생에 새로운 불꽃을 피워 줬다. 여기에서 그냥 끝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재단에서 하는 빈집 프로젝트가 계속 진행이 되고 있었더라도 새롭게 공모를 해서 사업을 따오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생각을 행동으로 바로 옮기는 생활 태도가 그저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아트창고 박금옥씨
 아트창고 박금옥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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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예술 사업을 공모식으로 내 지역 예술 단체 중 선정된 곳에 지원금을 내주는 것은 힘겨운 자생 작가에게 기회가 되는 일이기도 하지만, 행정적 편의를 위해 가장 쉽게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공모 방식으로 가는 감도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맞는 말이다. 아무래도 우리처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생계 유지 정도만 하는 작가들에게 공모 사업은 역량을 키워낼 수 있는 좋은 발판이다. 하지만 그만큼 공모 사업에 뛰어 들려는 경쟁 단체 및 작가가 많기 때문에 사업 공모전에 돌입하는 일도 첫 단추부터 세밀하게 조정하며 밀어 붙여야 한다.

또한 그때 그때 심사 위원들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기획안을 제출할 때 서면을 보고 평가하는 데 있어서도 그네들이 갖고 있는 관점도 모두 다르기 때문에 사업을 따냈던 방식의 프로젝트 구도를 비슷한 사업에 똑같이 적용하더라도 심사 위원이 다르면 조목조목 논파 당하며 뭉개지기 십상이다. 우스갯소리지만 이제는 우리가 먼저 심사위원을 평가한다. 특성을 파악하고 그에 맞게 기획을 고치게 되는 일도 더러 있다."

"사람 없으면 작업, 있으면 간단히 술"

외관 전시물
 외관 전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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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천리에서도 이 곳은 너무 따로 떨어졌다.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은 있나. 아님 여기 아트 창고가 어떤 곳인지는 알까.
"덕천리 마을은 120가구가 채 안된다. 게다가 거의 연로한 노인분이 많다. 이곳에 들어오는 길목에서 사람을 보았다면 행운이다. 사실 덕천리 주민이 여기 아트 창고가 어떤 곳인지 알고 계신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동네가 좁아 '이상한 곳 하나 생겼더라' 정도는 인식하고 계실 거라 생각한다.

마을 주민중 몇몇 분은 가까운 '송당'에는 카페도 많고 예술하는 사람도 많은데 여기는 그런 사람들이 없다고, 사람들이 오가지 않는 한적함에 대해 한탄하셨다. 아무래도 주민 분들도 마을에 뭔가 변화가 있기를 바라고 계셨던 것 같고, 이곳 창고도 주민 분 중 한 분이 싸게 임대를 내주신 것이다."

- 오가는 사람이 없다면 예술 창작에 관한 전시를 할 필요성이 없어지는 것, 주목을 받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하고 있는가?
"원래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입주 작가를 모집했지만 입주할 곳이 마땅찮아서 몇몇은 계속 출퇴근을 하고 있다. 작가들과 함께 마을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대강의 내용은 생활 도자기, 풍경, 비누 받침, 화분 만들기 등 생활 소품 만들기 프로그램으로 김녕중학교 학생들과 몇몇의 초등학생들이 모여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남의 장을 가지는 것이다. 또 지역 레지던스 교류 전시와 워크숍도 개최하고, 전시를 원하는 개인 작가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다.

또 폐창고가 이렇게 변화한 것을 보고 바로 앞에 있는 창고도 오래 방치 했던 무너진 지붕을 주인이 얼마 전에 깨끗하게 보수했다. 폐창고가 나름 예뻐질 수 있다는 것을 아트 창고를 보고 인지한 것 아니겠나. 더 다행스러운 것은 도로 앞에 위치한 이점 때문에 지나는 사람 중 몇몇은 꼭 둘러보고 가기도 하고, 관광객 같은 경우는 일부러 찾아오기도 한다. 사람이 없으면 뭐 작업할 거 하고, 지인들 오면 파티도 하고 간단히 술도... 하하"

박금옥 작가의 작업실
 박금옥 작가의 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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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창고 변화과정을 담은 사진
 아트창고 변화과정을 담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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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작가 순회전 '383상륙전'
383은 아트창고의 지번으로, 이곳에 작품을 전시한 작가는 이승수, 박재윤, 조기섭 세 명이다. 383 상륙전은 지난 6월에 부산에 있는 '오픈 스페이스 배'의 전시를 시작으로 경기도 수원' 예술공간 봄', 서울 문래동 '갤러리 두들' 공간에서 전시를 마치고 지난 9월 1일 아트 창고에 상륙했다. 이번 전시는 장장 4개월에 걸쳐 게릴라성 투어 전시를 목적으로 하며, <작가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해 젊은 작가가 고민하는 삶과 작업의 모습을 진솔하게 다뤘다.

마지막으로 이번 공간의 교류로 확인한 현장 상황에 대한 결과보고 세미나가 오는 13일(일)에 아트 창고에서 진행된다. 신진 작가 및 젊은 정신의 작가를 발굴하고 다양한 형태의 실험 예술을 하는 장소 아트창고가 평준화되고 산업화된 예술 공간들을 물리치며, 지역 미술 활성화를 위한 대안 공간으로 우뚝 서기를 기대해본다.



태그:#제주생각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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