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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웃긴데, 슬픈 기분."

이 모순적인 표현은 한 누리꾼이 최근 화제가 된 '오바마 분노 통역사' 영상을 보고 남긴 감상평이다. 해당 영상에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백악관 출입기자단과 연례 만찬자리에서 연설하는 장면이 담겼다. '셀프디스'까지 활용한 그의 만담 연설에 웃다가도, 풍자마저 조심스러운 한국 사회와 영상이 대조돼 슬퍼진다는 뜻이다.

이날 오바마는 미국 코미디언 키건 마이클 키를 자신의 '분노 통역사'로 초대해 '속마음'을 전하도록 했다. 그는 코미디 프로그램 <키앤필>(Comedy Central)에서도 오바마를 풍자하는 개그를 선보인 바 있다.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자신을 흉내 냈던 개그맨 정성호씨를 청와대로 초청해 만담을 벌인 것과 비슷하다.

오바마의 만담 연설 화제... 누리꾼들 "웃프다"

지난달 오바마 미 대통령이 백악관 출입기자단 연례 만찬에서 선보인 영상이 화제다.
▲ 만담연설 선보인 오바마. 지난달 오바마 미 대통령이 백악관 출입기자단 연례 만찬에서 선보인 영상이 화제다.
ⓒ 유튜브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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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만담은 다음과 같이 이어졌다. 먼저 오바마가 운을 떼면 분노 통역사가 재빨리 그의 속마음을 통역한다.

오바마 :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과 같은 전통이 중요합니다."
분노통역사 : "이런 만찬은 대체 뭐냐? 내가 왜 이 자리에 참석해야 하지?"

오바마 : "서로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날의 가장 중요한 이슈를 비춰주는 건 언론의 역할이기 때문이죠."
분노통역사 : "그리고 온갖 허튼소리로 백인 노인들을 겁주는 건 <폭스 뉴스>(미국 보수 성향의 언론사-기자주)의 역할이고!"

오바마 : "우리의 의견이 항상 일치하진 않겠죠."
분노통역사 : "그리고 CNN, 벽과 벽이 마주 보는 것 같은 에볼라 보도 아주 고오~맙습니다. 2주 내내 우리나라는 <워킹 데드>(좀비로 가득한 세상에서 사투를 그린 미국 드라마)가 되기 일보 직전이었어!"

검은 정장에 나비넥타이를 착용한 오바마가 차분한 얼굴로 연설을 이어가는 반면, 키건 마이클 키는 그의 뒤를 산만하게 오가며 흥분한다. '분노 통역사'답게 시종일관 청중을 노려보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발악을 하기도 한다. 객석에선 끊임없이 웃음이 터져 나온다. 

웃음을 꾹 참으며 꿋꿋하게 연설을 이어가던 오바마도 기후 변화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대목에선 분노를 참지 못한다. 분노 통역사가 "이쯤하면 된 것 같다", "워워워"라고 말리지만 들리지 않는다는 듯 다음 말을 이어간다.  

"모든 과학자가 이제는 행동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펜타곤은 환경문제를 국가적 안보 위협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건 미친 짓이에요. 우리 애들은 어찌합니까. 대체 어떤 멍청한 사람들이 무책임하게…."

분노 통역사는 흥분한 오바마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며 "당신에겐 이젠 분노 통역사가 필요 없다"고 말한다. 또 무대에서 내려가면서 영부인인 미셀 오바마 앞에 잠시 멈춰서더니 "대통령이 미쳤다"고 속삭이기도 한다. 이날 두 사람의 만담은 미국 전역에 '생중계'됐다.

만담 영상 조회수 200만 돌파... "한국에서 그런 시도라도 했으면"

지난달 오바마 미 대통령이 백악관 출입기자단 연례 만찬에서 선보인 영상이 화제다.
▲ 만담 연설 들으며 웃는 백악관 출입기자들. 지난달 오바마 미 대통령이 백악관 출입기자단 연례 만찬에서 선보인 영상이 화제다.
ⓒ 유튜브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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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영상은 공개된 지 3주가 넘은 최근까지 SNS에 계속 공유되는 중이다. 영상 공유 사이트 '판도라티비'의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지난달 30일에 올라온 영상은 200만 건 이상 조회됐다. 또 2만2천여 차례 공유됐다. 유튜브 이용자 'Sue L'가 지난 5일에 올린 영상의 조회수는 40만에 육박한다.

다른 나라 대통령의 영상이 이렇게 오랜 기간 회자되는 이유는 누리꾼의 반응에서 추측해볼 수 있다. 대통령 풍자 전단을 제작하고 배포했다는 혐의(명예훼손 등)로 시민이 구속되는 등 한국사회와 분명하게 대비되자 누리꾼들이 이 영상을 통해 대리만족하는 분위기다.

온라인커뮤니티 '웃긴대학'의 한 회원은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 저런 방식으로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존경 받을 만하다"며 "여기는 그러한 시도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오늘의유머'의 한 이용자 또한 "SNL(미국 코미디 프로그램)같은 데 나온 건 줄 알았더니 백악관 기자만찬회 연설이었다"라며 "저런 개그를 치고, 같이 웃을 수 있는 분위기가 참 부럽다"고 밝혔다.

현실을 자조하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오늘의유머' 한 회원은 "박근혜 각하께서는 저런 거 용납 못한다고 하십니다"라고 비꼬았다. '자기 검열'을 고백하는 의견도 있었다. 또 다른 회원은 "이런 거 보면서 가슴 조마조마해지는 나를 보니까 우리나라에 참 잘 길들여져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남겼다.

페이스북에서는 "백악관으로 가는 길이 왕복 8차선이라면 청와대와 통하는 길은 나오는 일방차선 하나 뿐인 듯"이라며 박 대통령의 '불통'을 지적하는 댓글도 있었다.

지난 3월 오바마가 미국 <ABC방송>의 한 토크쇼에 출연해 자신에게 비판적인 트위터 글을 직접 읽는 영상이 화제가 됐다.
▲ '못된 트윗' 읽는 오바마 지난 3월 오바마가 미국 <ABC방송>의 한 토크쇼에 출연해 자신에게 비판적인 트위터 글을 직접 읽는 영상이 화제가 됐다.
ⓒ ABC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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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오바마가 미국 <ABC방송>의 한 토크쇼에 출연해 자신에게 비판적인 트위터 글을 직접 읽는 영상이 화제가 된 것도 이런 맥락이었다. 당시 회자된 영상에서 오바마는 '누가 오바마에게 좋은 대통령이 될 수 있게 비법 좀 알려줘라', '오바마를 지구 반대편에 있는 골프장에 두고 올 수는 없나?' 등의 댓글을 직접 읽어 큰 웃음을 선사했다.

박 대통령의 화법과 오바마의 화법을 비교하는 의견도 보였다. 최근 누리꾼 사이에서는 "우리의 핵심 목표는, 올해 달성해야 할 것이 이것이다 하고 정신을 차리고 나아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것을 해낼 수 있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셔야 한다" 등 박 대통령의 알아들을 수 없는 화법이 조롱의 대상이었다.

페이스북에서 '오바마 분노 통역사' 영상을 공유한 한 회원이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분노 통역사가 아니라 한국어 통역사가 필요하다"고 남긴 이유도 이런 맥락이다. 또 다른 회원은 '판도라티비'가 공유한 영상 아래 "대한민국 대통령은 분노 통역사가 없습니다, 그녀가 무슨 말 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요"라는 댓글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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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오바마, #분노통역사, #백악관,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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