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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tvN <초인시대> 포스터
 드라마 tvN <초인시대> 포스터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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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맛'('맥락 없고 형편없으며 어이없음'을 뜻하는 신조어)은 방송작가 유병재씨를 설명하는 단어다. 그는 말도 안 되는 장면에서 웃음을 터트리게 만드는 재주를 가졌다. 그동안 티비엔(tvN) <SNL 코리아>에서 병맛 코드로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줬던 그가 이번에는 드라마로 찾아왔다. 그것도 직접 대본과 주연을 맡은 채로 말이다.

지난 4월 10일 첫 방영한 tvN <초인시대>는 여전히 유병재 특유의 '병맛스러움'을 간직하고 있지만, 드라마 속 청춘들의 모습은 우리를 마냥 웃게 하진 않는다. '병맛'과 청춘의 밀접한 관계 때문이다.

경쟁사회 속에서 자신을 모자라다고 규정하는 청춘들이 늘어나는 시점에서 유병재의 '병맛 코드'는 웃프다('웃기면서 슬프다'의 줄임말). <초인시대>는 유병재 특유의 병맛 코드를 이용해 20대 청춘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그런 얘기 몰라요?"

<초인시대>는 남자가 25세까지 동정이면 초능력이 생긴다는 어이없는 배경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자신의 쓸모없음을 비관하는 세 명의 20대 청춘이 주인공이다. 병재(유병재 분)는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창환(김창환 분)은 헐크가 되는 능력, 이경(이이경 분)은 동물과 대화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초능력자를 뛰어 넘어 진정한 히어로가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너무 큰 회사만 가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고생을 안 하려고 그래. 아프니까 청춘이다. 그런 얘기 몰라요?"(<초인시대> 1화)

취업상담소를 찾은 병재가 들을 수 있는 건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뿐이었다. 병재가 가고 싶어하는 회사는 스펙이 안 좋아서 힘들다고 한다. 취업상담소 직원과의 실랑이는 취업준비생들의 고달픈 현실을 드러낸다.

학교 선배가 운영하는 쇼핑몰 누리집을 만들어주고도 보수를 받지 못하는 모습도 취업시장에서 약자인 20대를 떠올리게 한다. "너 열정있고 재능있잖아, 그냥 경력 쌓았다고 생각해"라는 선배의 말은 청년들을 인턴이란 이름으로 착취하고 버리는 기업과 닮아 있다.

이상을 가지면 우스워 보이는 현실

창환은 집안에서 골칫덩어리다. 큰형은 법조인, 둘째형은 의사다. 부모님들은 누가 봐도 잘난 형들과 창환을 비교한다. 어릴 때부터 형제들과의 비교와 경쟁에서 힘겨워 하던 창환은 집에서 나와 산다.

월세가 밀려 쫓겨날 위기에 처해도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돌아올 건 무시밖에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생신날, 창환은 집에 찾아간다. 한심한 눈빛만 오간다. 못난 아들은 '아들' 대우를 못 받는다. 사랑으로 감싸기보단 끊임없이 점수를 매기려고 하는 부모의 잘못된 교육방식을 보여준다.

"학교를 중퇴하고 차고로 시작한 스티브 잡스를 따라 고난으로 점철된 창업의 길을 걸어 가고 나서야 나의 치명적인 문제를 깨달았지. 그 문제는 바로 차고가 없었다는 거지!"(<초인시대> 2화)

이경의 롤모델은 스티브 잡스, 마크 주커버크, 빌게이츠다. 취업이 아닌 창업으로 성공하려는 욕구를 갖고 있다. 차고의 낭만을 말하지만 현실은 집세도 못 내고, 대출도 어렵다. <초인시대>에서는 이상을 가진 청년이 희화화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남들과 똑같은 길을 걷지 않는 것이 되려 한심해 보이게 만든다. 사람들은 청년의 도전 정신을 강조하지만, 이경의 모습은 우습게 그려진다.

꿈은 희망이라기보단 절망에 가깝다

"왜 난 하고 싶은 게 없지. 난 왜 태어난 걸까.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면서…. 나도 임용고시나 볼까? 하다가 할 거 없으면 임용고시라도 봐야 되나."
"넌 꿈꾸는 게 재밌나 본데, 난 너처럼 재밌게 살아본 적이 없어. 그렇게 쉽게 얘기하지마."(<초인시대> 4화)

<초인시대>에는 여자 주인공도 등장한다. 지은(송지은 분)과 누리(배누리 분)다. 지은의 임용고시 발언에 누리가 발끈한다. 두 사람에게 '꿈'은 희망이라기보단 절망에 가깝다. 지은은 아직까지 '꿈'을 찾지 못했고, 누리는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꿈'을 접어야 한다.

지은은 꿈없는 청춘들을 대변한다. 그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움 없이 자랐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게 뭔지 도통 모른다. 스튜어디스, 랩퍼, 뮤지컬 배우 등 매번 꿈이 바뀐다. 세상은 지은에게 꿈을 강요한다. 꿈이 있어야만 쓸모 있는 청춘이 되는 현실 앞에서 자괴감을 느낀다.

누리는 지은과 정반대다. 소설가가 꿈이지만 어려운 집안 환경 때문에 임용고시를 준비한다. 매년 쌓여가는 학자금 대출금에 버거워 한다. 이자를 낼 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도 아닌 임용고시는 하늘의 별따기라 부를 정도로 어렵기만 한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누리는 차라리 꿈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룰 수 없는 꿈이 있어서 더 아프다.

<미생> 버금가는 청춘 드라마의 탄생?

<초인시대>는 8부작 드라마다. 현재 5화(5월 8일 방영)까지 나온 상태다. 같은 방송사인 tvN에서 내보낸 <미생>은 지난해 하반기 대한민국을 '미생 신드롬'으로 앓게 했을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미생>은 최고 시청률 5.49%(자체 시청률)를 기록하면서 지상파 드라마까지 위협할 정도였다. tvN이 케이블 방송이였음을 감안하면 <미생>은 그야말로 '대박 드라마'였다. 하지만 <초인시대>가 <미생>만큼의 저력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첫 방송분에서 2%의 시청률(닐슨 코리아)를 보였지만, 지금까지 1%의 시청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드라마 <미생>이 나온 뒤 정부에서는 이 시대의 장그래를 위한 법이라며 '장그래법'을 내놨다. '장그래법'은 기간제·파견 노동자 고용기간을 늘리고 노동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아 고용시장을 더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장그래를 위한 법이 아니라 장그래를 더 많이 양산시키는 법이라는 지적이 일었다. 이런 와중에 <미생> <초인시대> 등 청춘들의 이야기를 대변해줄 플랫폼이 늘어나는 추세라 기대가 크다. 정부에서는 '장그래법'으로 불안한 청춘의 이야기에 어긋난 화답을 해줘 실망만 안겼지만, 이번에는 20대를 위로하는 대안이 나올지 혹시 모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단비뉴스>에도 중복 게재됩니다.



태그:#유병재, #초인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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