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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는 그의 스승 장 그르니에를 열일곱 살 때 처음 만났다. 카뮈의 고향 알제의 한 고등학교에 부임했던 그르니에는 철학반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카뮈가 등교를 하지 않자 그르니에는 직접 그의 집으로 향한다.

카뮈의 집은 초라했고, 카뮈는 선생이 일부러 찾아왔는데도 퉁명하기 그지없는 태도를 보였다. 그 날, 카뮈는 스승을 거부했다. 하지만 이후, 둘은 아주 친밀하고 밀접한 사이가 되었다.

카뮈의 <이방인>을 처음 읽은 날이 기억난다. 난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 카뮈가 사상가인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는 물론 사상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무엇보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세계적인 소설가이다.

<이방인>의 흡인력은 엄청났다. 특히, 마지막이 그랬다. 책을 덮은 후에도 한동안 <이방인>에게서, 소설의 주인공 뫼르소에게서 벗어나지 못할 정도였다. 책의 여운이 오래도록 가시지 않아 나는 몇 명의 친구들에게 이 책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 친구들도 내가 느낀 감동을 느끼길 바라면서.

카뮈의 책을 읽고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장 그르니에의 철학에세이 <섬>을 만났다. 책의 서문을 읽고서야 나는 둘의 관계를 알 수 있었는데, 무엇보다 카뮈가 쓴 <섬>의 서문은 정말 굉장했다. 그때까지 읽었던 그 어느 서문보다 훌륭했고, 또 강력했다. 카뮈의 서문을 읽고도 <섬>을 읽지 않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카뮈는 <섬>이 출간되는 걸 보지 못한다. 1960년, 카뮈는 46세의 젊은 나이에 교통 사고로 죽음을 맞는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지 채 3년이 안 된 때였다. 카뮈는 스승 장 그르니에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곤 했었다.

세계적인 명성이야 물론 노벨 문학상을 받은 카뮈가 더 얻었을 테지만, 그런 카뮈가 좋아하고, 또 존경한 사람은 장 그르니에였다. 카뮈가 글을 쓸 수 있었던 것도 어찌보면 그르니에 덕이었다. 그르니에가 글을 쓰는 걸 보고 카뮈도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두 개의 선물을 한꺼번에 펼치는 것

<카뮈를 추억하며> 책표지
 <카뮈를 추억하며> 책표지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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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을 읽고는 나는 바로 장 그르니에의 팬이 되었다. 강력한 한 방은 <이방인>에게서 나왔지만, 두고두고 반복해서 읽고 싶은 책은 <섬>이었다. 그런데 한 출판사에서 나온 장 그르니에 선집의 두 번째 책이 <카뮈를 추억하며>였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내게 두 개의 선물을 한꺼번에 펼치는 것과 같았다. 카뮈에 관해서도 알 수 있고, 또 그르니에의 글을 읽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르니에는 책의 서문에 "그의 삶을 되새겨 이야기하려는 것도 그의 작품을 해설하려는 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 책엔 알베르 카뮈의 삶과 작품에 대한 그르니에의 판단이 담겨 있지는 않다. 대신 그르니에는 이 책을 쓴 목적으로 "단지 알베르 카뮈의 몇 가지 면모를 상기시키려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궁금하다. 오랜 시간 함께 했던 그르니에가 보기에 카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는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행복에 포함되어 있는 행운의 몫을 헤아려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오만한 사람'도 아니었다. 다른 이들에게 신세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자신감에 넘치는 사람'도 아니었다. 농부가 자신의 노력 없이는 아무것도 산출하지 않는 토지의 결실에 애착을 느끼듯이, 자신의 생각을 중시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에서 무엇이 확고한 것일 수 있는가 하고 늘 자문했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책에서 그르니에는 카뮈와 나누었던 대화와 둘이 함께했던 경험을 토대로 외적으로 드러난 카뮈의 글, 행동, 말 속에 숨어있는 카뮈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풀어주고, 그의 삶이 어떻게 그런 방향성을 지니게 되었는지 카뮈의 성장 배경과 사회적 상황에 빗대어 설명해 주고 있었다. 책에 드러난 카뮈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전형적인 영웅의 모습이라 할 수는 없지만, 어느 면에서 그는 누구보다 위대한 면모를 지닌 사람이었다.

카뮈가 끝까지 '인간'을 붙잡은 이유

카뮈는 진실했고 꾸밈이 없었다. 말에 신중했던 그는, 말을 할 때는 "자기 자신의 전부를 걸고 말"했기 때문에 그의 말엔 언제나 강력한 설득력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보통 사람들은 추구하기 어려운 것을 추구한 사람이라서 위대했다. 삶과 정신의 일치. 그는 "견해를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소수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작가뿐만 아니라 희곡을 쓰는 연극 연출자, 배우(카뮈는 잘생겼다), 또 뛰어난 저널리스트이기도 했던 카뮈는 반항하는 혁명가이기도 했다. 그는 세상을 바꾸고 싶어했다. 세상에 절망했기 때문이다. 인간을 향한 절망도 컸다. 어쩌면 그의 이런 절망은 그의 성장 과정이 그에게 준 필연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지독하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고통과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던 병, 아버지를 여의면서 일찍 눈뜬 아이 눈에 비친 비루한 세상. 카뮈는 생계 때문에 일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어 기진맥진해 하곤 했는데, 언젠가 카뮈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창작을 택했다"라고. 그르니에의 기억 속 카뮈의 세계관은 이랬다.

알베르 카뮈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세계관은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절망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세계관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어떤 방책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 바로 카뮈의 세계관이었다. 그르니에의 말대로 카뮈는 세계를, 인간을 절망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책 <이방인>에서도, <페스트>에서도 이런 그의 세계관은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카뮈는 인간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인간에 절망한 그르니에가 인간 너머로 시선을 돌렸을 때에도, 그의 시선은 정확하게 인간을 향해 있었다. 그는 양립하기 힘들어 보이는 가치인 '절망'과 '희망'을 함께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인간에게 남은 어떤 가능성이 있으리라 그는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르니에는 "그의 작품은 인간미에 대한 강조로 인해 몹시 애절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카뮈는 왜 인간을 끝까지 붙잡고 있었던 것일까. 인간이 아닌 다른 것으로도 시선을 돌릴 수 있지 않았을까. 인간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간만이 인간을 구원해 줄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든 인간 안에서 답을 찾아야 했다. 그의 생각엔 신도, 다른 그 무엇도, 인간의 행복을 보장해주진 못했다. 인간 외에는.

그가 생각하는 구원이란 구세주의 역사가 아닌, 하나의 '처방', 이를테면 사람들의 괴로움을 덜어주기 위한 삶의 방식을 찾아내서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본보기를 들어 가르치다가 이번에는 ('신앙'을 갖지 않고도) 스스로, 다시 말해서 하나의 육화된 본보기가 다른 사람들을 본보기가 되게끔 이끌어 주는 식으로, '성인'이 되는 어떤 사람의 활동이다. -<본문> 중에서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머릿속에 자기 나름의 카뮈의 인상을 새길 것이다. 추측해보건대, 부정적인 인상은 아니리라 생각된다. 이렇게 머릿속에 남은 인상은 추후 그의 책을 읽을 때마다 살아나 책의 이해를 도울 것이다. 내게 남은 카뮈의 인상은 다른 측면에서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구원'의 측면에서 그렇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덧붙이는 글 | <카뮈를 추억하며>(장 그르니에/민음사/1997년 08월 30일/8천5백원)



카뮈를 추억하며

장 그르니에 지음, 민음사(1997)


태그:#장 그르니에, #알베르 카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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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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