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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학생과 교사, 학부모들은 2012년 서울의 첫 진보교육감이었던 곽노현 전 교육감이 임기 2년 3개월 만에 중도하차하고, 그와는 정반대의 교육철학을 가진 문용린 교육감을 맞이하여 2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학생인권조례, 혁신학교, 문예체 교육 확대, 학교업무정상화 등 경쟁과 서열 중심의 교육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들이 중단되고 서울교육은 다시 과거로 회귀하게 되었다. 이로 인한 교육현장의 혼란과 고통은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일 중 하나다.

그런데 지난 4월23일 또다시 조희연 서울교육감이 선거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중도하차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다 지난 일이지만 세계 유례없는 '사후매수죄'라는 죄명으로 곽노현 교육감이 중도하차한 것도 납득하기 어려웠는데, 선거 기간 중 후보검증 과정에서의 일을 '허위사실공표죄'로 단죄하겠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박근혜대통령이 한나라당 비대위원장 시절인 2007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BBK 실소유자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는데도 불구하고 처벌을 면했는데 똑같은 이유로 정봉주 전 의원은 1년 실형을 살았다. 지난 6.4 선거에서 고승덕 후보가 조희연 후보에게 통진당 관련이 있다거나, 장남이 병역기피 아니냐며 공격했지만 검찰은 이를 허위사실공표죄로 기소하지 않았다.

너무도 분명한 편파적 판결인 걸 알면서도 우리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세상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많은 사람들은 조희연 교육감(이하 호칭 생략)이 보수세력을 지키기 위한 또 한 명의 정치적 희생자가 되고 있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이 문제가 아니다. 나는 이 모든 정황요소를 배제하고 법정에서 이루어진 이번 재판에 관심을 집중하고 싶다. 조희연은 과연 정말 유죄인가?

조희연에게 적용된 법 조항은 무죄가 아니라 유죄로 판결되는 순간 최하 500만 원의 벌금형이다. 유죄가 되는 순간 서울시민은 교육감보궐선거를 다시 치러야 한다. 벌금 100만 원 이상이면 자동 당선무효가 되기 때문이다. 조희연에게 적용된 법조항은 공선법 250조 2항이다. 공선법 250조 2항은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후보자에게 불리하도록 …허위의 사실을 공표하거나 공표하게 한 자…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첫째, 선거에 출마한 모든 후보는 당선을 목적으로 한다. 더구나 2명 이상을 뽑는 선거가 아니라 한 표라도 더 득표한 단 한 명만을 뽑는 선거에서 자신의 당선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은 곧 상대방의 낙선을 바라는 마음과 분리할 수 없다. 미필적 고의도 범의의 근거가 되니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라는 단서가 법 전문가가 아닌 내게는 참으로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이 단서조항은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이 없다'는 자의적 판결의 여지를 열어놓는 게 목적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뿐이다. 다른 후보와 차별적인 자신만의 이력을 내건다거나 좋은 공약을 제시하려고 하는 것도 자신이 당선되기 위한 행동이며, 동시에 다른 후보가 당선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동 아닌가? 도대체 선거에서 당선되지 못하게 할 행동에 해당되지 않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 묻고 싶다.

둘째, 조희연이 고승덕에게 영주권 보유 의혹 해명을 요구하자 고승덕은 본인이 쓴 자서전을 보라했고, 조희연은 객관적 자료로 입증해줄 것을 요청했다. 고승덕은 자신의 여권을 제시하며 영주권이 없음을 밝혔다. 이것이 객관적 팩트다. 의혹해명을 요구했는데 그게 사실이 아님이 이틀 만에 입증되었다. 그렇다면 선거에서 누구에게 불리한가? 고승덕인가? 조희연인가? 당연히 해명요구를 한 조희연이 불리해지는 게 아닌가? 조희연의 해명요구 덕분에 오히려 고승덕은 대중적 관심을 받으며 의혹을 벗을 기회까지 얻은 셈인데. 따라서 '후보자에게 불리하도록'이라는 단서조항 역시 조희연의 것이 아니지 않는가?

셋째, 선거에서 자신에게 불리할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혹해명 요구를 했다는 것은 당시 조희연에게는 고승덕의 영주권 보유가 허위사실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것에 대한 강한 확신이 있었다는 것이다. 즉 당시 조희연의 행동에 허위사실공표의도가 없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고승덕의 여권 제시 후 조희연 측에서 더 이상 이를 문제삼지 않았다는 데서도 드러난다.

또한 엄밀하게 말하면 조희연은 고승덕이 영주권을 가지고 있다는 허위사실을 최초로 생산해 낸 사람이 아니라 허위사실일지도 모를 이야기들이 떠돌고 있으니 그에 대해 해명하라 했을 뿐이다. 만일 최초 의혹 제기자인 최경영 기자와 조희연이 공모했다면 조희연에게도 허위사실 유포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재판과정에서 둘 사이에 공모는 없었다는 것이 밝혀지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그런 죄가 있는지 모르지만 조희연에게는 의혹해명요구죄를 물어야 할 것이지 허위사실유포죄를 물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넷째, 선거법은 선거의 공정성을 지키는 것에 목적이 있다. 선거의 공정성이란 부당한 행위로 인해 당락에 영향을 주어 유권자의 민의가 왜곡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판결문에서도 인정된 것처럼 조희연의 행위는 고승덕의 낙선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왜냐하면 당시 두 사람의 득표 차이는 1.48%가 아닌, 14.8%나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두가 아는 것처럼 고승덕의 낙선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보수성향 후보가 두 명이었다는 점과 선거 직전에 터진 고승덕 후보의 딸 캔디고의 아버지에 대한 폭로성 글 때문 아닌가? 그렇다면 고승덕의 영주권 의혹 해명 요구만을 다루는 경우에는 그것이 선거의 공정성 파괴에 영향을 주지 않았거나 아주 미미하게밖에 작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주요 판결근거로 삼아야만 선거법의 본래 취지에 맞는 판결이 아닌가? 선거사건을 다루는 재판부가 따로 있는 것도 선거재판의 이런 특수성을 고려한 전문적 판단이 요구되기 때문 아닌가?

이 밖에도 헌법상 독립기관이자 대법관이 위원장인 선관위의 경고처분을 단순 행정조처라 치부하는 것도, 친고죄도 아닌데 고승덕이 처벌을 원하고 있다는 점을 유죄 판결 이유로 든 것도, 당사자가 아니면 사실확인이 어려운 영주권 보유 여부에 대해 조희연이 사실확인 노력을 게을리했다는 것을 유죄판결이유로 든 것도, 이틀 만에 고승덕이 여권으로 영주권 없음을 입증했음에도 불구하고 객관적 소명자료를 요구한 조희연의 행위가 부당하다며 유죄 판결 이유로 삼은 것도 모두 과연 합당한 일인지 묻고 싶다.

청문회와 같은 별도의 검증절차가 없는 선출직을 뽑는 선거에서는 후보의 적격성 여부에 대해 선거운동 과정을 통해서만 검증이 가능하다. 이 점을 생각하면 고승덕의 영주권 의혹에 대해 해명을 요구한 조희연의 행동은 유권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당연한 조치 아니었나? 조희연이 유죄가 된 마당에 이제 선거에서 후보검증을 위한 노력은 바늘구멍만큼 좁아질 것이고 좋은 사람을 뽑을 선거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지게 될 것이다. 그러면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에 대한 신뢰도는 땅에 떨어질 것이다. 또한 서울시민은 수 백 억을 들여 또 한 번의 선거를 치러야 하며, 서울의 아이들과 교육현장은 다시 흔들리게 될 것이다.

과연 이 모든 일들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묻고 싶다. 누군가 답해주면 좋겠다.


태그:#조희연, #서울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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