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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내 군 서열 2위인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우리의 국방부장관에 해당)이 지난달 30일께 반역죄로 고사포로 공개 처형됐다는 첩보를 입수했다고 국가정보원이 13일 밝힌 가운데, 이 사실이 국회정보위 소속 국회의원을 통해 언론에 전달되면서 국내외에 크게 보도됐다.

국정원은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숙청당한 것은 정보 차원의 것이고 고사포로 공개처형 된 것은 첩보 차원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첩보는 아직 그 진위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것이고 정보는 정확한 사실관계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첩보는 사후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점에서 일국의 정보기관이 첩보 수준의 것을 공개한 의도가 무엇인지 주목된다.

이날 첩보가 언론에 공개된 것은 국정원이 사전에 동의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첩보는 이날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현안보고에서 브리핑했다고 김광림 정보위원장과 간사인 새누리당 이철우·새정치민주연합 신경민 의원이 전했기 때문이다. 만약 국정원이 첩보 차원이니 공개를 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면 두 의원이 이를 공개한 뒤 국정원이 문제를 삼았을 터인데 아직 그런 말은 들려오지 않는다.

KBS 보도에 따르면, 국정원은 이날 국회 보고를 통해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지난달 24일 평양에서 열린 군 행사에서 조는 모습이 적발되고, 김정은의 지시에 대꾸한 부분 등이 불경, 불충으로 지적돼 지난달 30일 비밀리에 숙청됐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평양 강건종합군관학교 사격장에서 고위 군간부 수백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현영철이 고사총으로 총살됐다는 첩보도 입수됐다고 밝혔다. 또 현영철이 반역죄로 처형됐다는 첩보도 있지만, 현재 정황으로는 모반 가능성보다는 '불경'과 '불충' 등 이른바 유일영도체계 10대 원칙 위반이 사유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국정원은 현영철의 숙청이 과거 장성택 처형 때와는 달리 당 정치국 결정이나 재판 진행 없이 체포 2~3일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며, 김정은의 독단성이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국정원은 북한에서는 지난 6개월간 마원춘 국방위 설계국장, 변인선 총참모부 작전국장, 한광상 당 재정경리부장 등 김 위원장의 측근 간부들도 숙청됐다고 보고했다.

이날 현영철이 반역죄로 가혹한 방식으로 처형됐다는 첩보는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이는 북한 외부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일부 외신들이 국내 언론을 인용하면서 첩보가 정보인양 격상되어 보도되기도 했지만 일부는 그 신빙성에 의문을 나타내기도 했다.

국내언론은 정부기관이 공개한 자료를 자체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고 보도하는 경우가 흔한데 이번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북한 관련 자료는 북에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정부기관이 내놓는 자료를 그대로 보도하는 것이 상례인데 이날 공개된 국정원의 첩보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북한 김정은 등장 이후 다수가 숙청 처형당했다는 점 등이 곁들여진 현영철 관련 첩보가 언론에 보도된 것은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 우선 정보기관이 웬만한 경우가 아니면 대외적 신뢰문제를 고려해 정보가 아닌 첩보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신중함을 보여야 한다는 점에 비춰 볼 때 그러하다. 설령 이 첩보가 사후에 사실로 밝혀진다 해도 이날 현재 국정원의 정보 수집력이 미흡했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고, 차후에 허위로 드러난다면 국정원이 국제적으로 큰 망신을 하면서 국가 위신까지 훼손한다는 점 때문이다.

통일부는 현영철이 마지막으로 공식 석상에 참석한 것은 지난달 28일 제5차 훈련일꾼대회로 파악했다면서 지난 5일에 방영된 김정은 인민군대사업 현지지도 기록영화에 등장했다고 밝혔다. 이는 북한이 숙청한 인사들은 기록 영화 등에서 지워버리는 것이 관행이라는 점에서 주목되는 부분이다.

국정원이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총살 처형첩보를 공개한 시점은 최근 통일부가 민간 차원의 남북 교류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직후다. 국정원의 이 첩보 공개는 통일부의 남북 민간 교류 활성화 방침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크다. 첩보 수준이라 해도 현영철 처형의 잔혹성이 부각되면서 남북 민간 교류 활성화 추진 방침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일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정보기관은 적대 세력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입수해 궁극적으로 승리를 쟁취할 수 있도록 그늘에서 일하거나 심리전 전개를 통해 적을 약화 또는 와해시키는 작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정보기관이 적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입수하는 것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심리전은 적대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진위 여부와 관계없거나 때로는 거짓 정보를 활용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특성이 있다. 목표가 수단을 합리화하는 것은 특히 심리전에서 심하다. 따라서 정보기관의 심리전이 군사적 대응과 대화를 병행하는 포괄적 전략에 찬물을 끼얹거나 자칫 자국민을 상대로 공작을 하는 것과 같은 범법을 저지르는 경우를 경계해야 한다. 따라서 국정원은 정보와 첩보를 명확히 가려 첩보 수준의 것이 공개되는 일은 삼가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미디어라이솔 등에 실렸습니다.



태그:#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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