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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조직적인 노조 탈퇴를 계획한 문건이 공개돼 논란이 일었던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소속 노조원들이 11일 오전 삼성 서초 본관 앞에서 '삼성의 노조탄압 실체 추가폭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4일 조직적인 노조 탈퇴를 계획한 문건이 공개돼 논란이 일었던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소속 노조원들이 11일 오전 삼성 서초 본관 앞에서 '삼성의 노조탄압 실체 추가폭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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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이 잠시 대화를 하자고 해서 근무복 차림에 차 키도 없이 내려갔습니다. 근처 카페에서 업무 이야기를 할 줄 알았는데, 타고 있던 차가 고속도로에 진입했습니다." 

이혼, 금전문제 등 직원의 사생활까지 이용해 조직적으로 노동조합 무력화를 계획한 문건이 공개돼 논란이 된 삼성전자서비스노조 협력업체에서 이번에는 사장이 노동조합 간부를 섬으로 데려가 노조 탈퇴를 압박한 사실이 드러났다. 노조는 "유사 납치"라며 "협력업체에서 벌어진 부당노동행위를 처벌하라"고 강하게 항의했다.

"느닷없이 고속도로로 진입... 휴대폰 빼앗긴 채 배에 올랐다"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본관 앞 기자회견에서 최명우 삼성전자서비스노조 울산센터 분회장이 밝힌 '유사 납치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지난해 2월 20일 출근해 업무 중이었던 최명우 분회장과 최진림 교육선전위원(당시 총무)은 "노조는 노조고, 회사의 실적은 실적이다, 노조 말고 실적 관련해서는 도움을 좀 줘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모아무개 사장의 대화 제안을 받고 별다른 의심 없이 그의 차에 올라탔다. 여기엔 관리자 두 명도 함께 했다.

가까운 카페로 향할 줄 알았던 차는 느닷없이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최 분회장이 "어디로 가느냐, 납치하는 거 아니죠?"라고 농담처럼 묻자 사장은 "좋은 장소에서 좋은 음식 먹으면서 좋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별거 없으니 목적지는 묻지 말라"고만 답했다. 하지만 이들이 탄 차는 2시간 넘게 달렸고, 거제도 장승포항에서 멈췄다. 이어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배를 놓친다'고 사장이 독촉하자 이들은 얼떨결에 지심도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배에 오르기 직전 사장은 "아무런 방해도 받고 싶지 않다. 휴대폰은 두고 가자"며 이들의 전화를 빼앗기도 했다. 이를 두고 금속노조는 "이때부터 형법으로 처벌 가능한 감금상태에 돌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11일 기자회견에서 '유사 납치' 상황을 증언하는 최명우 분회장.
 11일 기자회견에서 '유사 납치' 상황을 증언하는 최명우 분회장.
ⓒ 손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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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사장은 본격적으로 노동조합 탈퇴를 회유했다. "노동조합에서 탈퇴하면 복지를 더 잘해주겠다", "부정부실이 있어 여차하면 회사에서 잘릴 수 있는 노조원들을 전부 지켜주겠다"는 등의 조건이었다. '내가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하면 섬에서 못 나간다'는 식의 협박도 이어졌다. 사장의 회유와 협박은 섬에서 나오는 마지막 배 시간(오후 4시 50분)까지 계속됐다. 당사자인 최명우 분회장은 "조합원들을 모아볼 테니 사장이 직접 설득해 보라고 거짓말을 해 겨우 섬을 빠져나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마지막 배로 섬을 빠져나왔지만, 사장은 이들의 휴대폰을 돌려주지 않았다. 거제도의 한 리조트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노조를 탈퇴하라는 설득이 계속됐다. 노조원들은 자정이 넘어 사장이 잠들자 그제야 휴대폰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최 분회장은 "(이 자리에서도) 사장이 조합원들 설득하면 나도 따르겠다고 거짓말을 해 빠져나올 수 있었다"며 "최근 문건 공개로 이런 일이 계획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고 많은 상처를 받았다"고 전했다.

이런 내용은 지난 4일 공개돼 논란이 일었던 '조직 안정화 방안' 문건에도 나와 있다. 울산센터를 운영하는 울산스마트서비스가 작성한 문건 중 '2월 주요 활동'을 부분을 보면 "2/20일 내근 최명우(분회장), 최진림(총무)과 거제도에서 정상화 방안 협의(Green화 조건)", "2/21일 최명우 내근인력 대상 토론회를 했으나 내부 반발로 보류"라고 적혀 있다. '유사 납치'가 발생한 날짜와 장소가 일치한다.   

"원청과 재계약 앞두고 무언의 압박 있었을 것"

노조 측은 원청인 삼성전자서비스의 개입으로 이런 일이 이뤄졌다는 입장이다. 이를 증명할 근거로 비슷한 시기 협력업체 사장이 노조 분회장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공개했다. 지난해 2월 23일 보낸 이 메시지에는 "내일 중으로 우리 회사 입장을 표명해야 하고 아울러 14년 계약 관련 통보해야 하니 오늘 시간을 내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대해 최진림 울산센터 교육선전위원은 "삼성전자서비스는 매년 3월마다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는데 지난해 제일 문제가 되었던 게 노동조합"이라며 "원청이 노조가 있는 협력업체와 그렇지 않은 협력업체를 구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울산센터도 노동조합을 와해시켜야 아무 문제 없이 계약을 갱신할 수 있기에 이런 일을 실행했던 것 같다"며 "원청 또한 재계약을 앞두고 상황을 보고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함께한 조문돈 삼성노동인권지킴이 상임대표도 "제가 삼성 노동자들을 연구한 지 15년이 됐는데, 오늘 들은 내용은 지난 15년 동안 듣고 또 들었던 이야기"라며 "이제는 삼성도 새로운 시대를 맞아 달라져야 하며 그 시작은 노동자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울산 센터는 지난달 29일자로 폐업했다. 이곳에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 80여 명도 농성에 돌입했다. 이에 노조는 "삼성전자서비스가 노조 고사화 전략의 일환으로 울산센터를 위장 폐업했다"며 "빠른 시일 내에 울산 센터를 정상화하고, 책임 인정 및 재발 방지를 약속하라"고 요구했다. 노조는 모든 법적 수단을 강구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4일 공개돼 논란이 일었던 '조직안정화방안' 문건 중 일부.
 지난 4일 공개돼 논란이 일었던 '조직안정화방안' 문건 중 일부.
ⓒ 조직안정화방안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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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울산스마트서비스가 작성한 노조 무력화 문건에는 노조 활동에 적극적인 직원은 징계로 압박하고, 단순 가담 직원에게는 학연, 지연, 혈연을 이용해 적극 회유한다는 계획이 담겼다. 특히 '개인별 Action plan'(활동 계획)이라는 표를 보면 노조원의 이름 옆에 '가정사(이혼)', '금전문제', '타 지역 직장생활 경제적 부담, 지원필요' 등 사적 정보가 나열돼 있고, '학연 지인을 통한 설득', '가족상담', '자연스런 저녁식사 대화' 등 구체적 실행 계획이 등장한다. 개개인마다 담당 간부의 이름도 적혀 있었다.

또한 문건 마지막 '각오' 부분에는 "모든 것을 걸고 반드시 Green화(노조탈퇴-기자주) 하겠습니다, '14년 업무제안서'의 내용을 100% 수행하며 반드시 목표 달성토록 하겠습니다"라고 적혔다. 하지만 문건에는 발신인만 쓰여 있을 뿐 수신인은 없다. 노조는 "원청인 삼성전자서비스의 지시로 작성됐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서비스 측은 노조 무력화 문건이 최초 공개된 4일 KBS와 인터뷰에서 "협력 업체 노사 문제에 개입하지 않았으며 노사문제는 자발적으로 해결하는 게 최선이다"라고 밝혔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태그:#삼성전자서비스, #유사 납치, #이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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