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훈민정음'은 한자의 토착화를 위해 창제됐다 김세환 부산대 중문학과 교수 글 <경향신문> 2015년 5월 7일치
▲ '훈민정음'은 한자의 토착화를 위해 창제됐다 김세환 부산대 중문학과 교수 글 <경향신문> 2015년 5월 7일치
ⓒ 경향신문

관련사진보기


요새 물 만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교육부를 앞세우고 그 뒤에 숨어 한자를 되살려 써야만 이 나라 뒷날이 환하게 열릴 것이라고 '찬가'를 부른다. 우리 말의 70%가 한자말인 까닭에 한자를 모르고는 뜻을 제대로 주고받을 수 없다는 거짓소리는 하도 들어 아주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다.

어려서부터 한자 같은 뜻글자를 배울수록 머리가 좋아진다는 근거 없는 소리뿐만 아니라 한자는 어떤 문자보다도 뜻을 함축하여 말 만드는 성질이 좋아 정보통신사회에 딱 어울리는 글자라는 소리도 떠벌린다. 그뿐인가. 인격과 인성을 올바로 키우자면 한자를 가르쳐야만 한다는 헛소리를 늘어놓기도 하는 모양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한숨밖에 안 나온다.

이제는 한술 더 떠서 훈민정음이 한자음을 받아 적을 수단으로 만든 글자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도 한다. 김세환 교수(부산대 중문학과)는 <경향신문>에서 훈민정음은 한자음을 이 땅에 뿌리 내리고자 만든 문자라고 했다. 그는 "한자의 바른 음(正音)을 백성들에게 가르쳐서(訓民) 국어의 표준화와 함께 서로 소통하는 언어생활을 하자는 목적으로 창제한 것"이라면서, 훈민정음 덕분에 마침내 "우리의 한자음이 정해졌고 지금까지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모두 표준화된 독음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중국이 베이징말을 표준어로 정하고 한자를 알파벳으로 적는 '한어병기방안'을 추진한 일을 보기로 들면서, 세종은 그보다 앞서 '수천년 중국도 생각하지 못했던' 표준 한자음을 정할 요량으로 훈민정음을 만들었다고 한다. 글은 "원산지와 상관없이 2000년 넘게 사용해온 한자는 분명 우리의 문자이다. 대왕의 본의도 모르고 우리의 역사를 덮은 채 한자를 가르치면 안 된다는 억지를 보면 그저 눈물이 흐른다"고 끝맺고 있다.

한자 적을 수단으로 훈민정음 만들었다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훈민정음으로 한자음이 정해졌다는 말에는 고개 끄덕여진다. 하지만 훈민정음이 한자를 적을 수단으로 만들었다는 주장은 생뚱맞다. 김 교수 말처럼 세종이 속으로 품은 마음은 한자음을 한 가지로 바로잡는 데에 있었을까? 입으로 지껄이는 말과 글로 적는 말이 다른 까닭에 할 말이 있어도 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들었으니 누구든 쉽게 익혀 편하게 쓰면 좋겠다는 말은 괜히 해본 헛말이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조선시대로 돌아가보자. 글말은 한자로 적지만 입말은 조선말을 썼던 까닭에 말글살이는 "극도로 불편했"다. 자연히 소리는 있어도 그 소리를 적을 글자가 없을 때가 많았다. 이는 <훈민정음 해례본> 후서에서 정인지가 한 말에서도 알 수 있다. 정인지는 "조선은 예악과 문물은 모두 중국과 비슷하지만 말만은 중국과 다르다"면서 "설총이 만든 이두를 지금까지 써왔지만 한자로 모두 한자를 빌려 써도 어떤 때는 말에 어려움을 겪고 어떤 때는 말이 막힌다"고 어설픈 말글살이를 말한다.

이에 정인지는 훈민정음으로는 "바람 소리, 학의 울음소리, 닭의 울음소리, 개가 짖는 소리까지도 모두 나타낼 수 있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 말은 글말을 받아적겠다는 소리가 아니라 입으로 지껄이는 말, 귀로 들은 말을 글자로 적겠다는 말 아니겠는가. 좀 지나친 비약인데, 김 교수는 글에서 '영어의 알파벳으로 한자의 독음을 표기하는' <한어병음방안>을 만들면서 현재 중국은 유사 이래 처음으로 통일된 표준어를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훈민정음에 적용한 논리라면 알파벳은 중국어를 적을 요량으로 만든 문자란 말인가?

말이 났으니 한자를 정말 배워야 할 사람이라면 더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고 정말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자연스런 귀결로 그런 사람이 한자를 더 많이 알고 더 잘하게 될 것은 뻔한 이치다. 거꾸로 한자를 배우지 않아도 될 아이라면 한자 말고 다른 공부에 더 힘쓰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한자로 밥 먹고 살 학생과 평생가야 한자 쓸 일이 없는 학생을 똑같이 붙들어 앉혀놓고 한자를 가르쳐야 한다는 소리를 한다. 한자를 모르면 이 나라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라는 억지소리를 하고 겁준다.

초등학교부터 한자를 가르쳐야만 한자 사교육이 줄어들 것이라고도 하는데, 영어교육에서 이미 보지 않았는가. 학교에서 한자를 많이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한자 열풍은 더욱 거세게 불고 한자를 팔아먹는 사교육 시장도 더욱 커질 것이다. 그만큼 한자교육을 부르대는 이들은 돌아서 슬그머니 웃을 것이다. 그 속에서 죽어나는 건 우리 아이들이고 부모들이다. 그것이야말로 정말 눈물 흐를 일 아닌가.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