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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오후 내 만든 멍멍이 그늘 막
▲ 멍멍이 집과 그늘 막 남편이 오후 내 만든 멍멍이 그늘 막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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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전국에서 가장 공기가 좋다는 전남 장성의 하늘. 햇빛은 쨍쨍한데 조금 흐린 것 같다. 먼 산의 능선이 보일락 말락 한다. 마당 한복판에 손바닥만 하게 만들어 놓은 텃밭에는 20여 일 전 씨앗을 뿌린 쑥갓을 비롯한 몇 가지의 채소들이 제법 자랐다.

텃밭 옆에는 멍멍이가 개 팔자답게 늘어져 자고 있고, 닭장에서는 암탉이 알을 낳았는지 꼬꼬댁거리며 날개를 푸드덕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남편은 뒤뜰에서 며칠 전부터 벼르던 건조대를 만들고 있다. 온갖 연장을 다 내놓고 하는 폼이 제법 '뭐' 같다.

어디라도 걸터앉으려고 보니 정자와 데크가 온통 누런 가루로 덮여 있고, 흰색 차는 흙길을 달린 것처럼 누런 먼지 같은 것을 뒤집어쓰고 있다. 다행이라면, 도회지의 온갖 매연이 섞인 먼지와는 달라 옷이 더러워진다거나 발바닥이 까매지지는 않는다. 수건으로 대충 바닥을 훔치고 앉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어디서 이렇게 흙먼지가 날아오는지 동네를 한 바퀴 다 돌아도 원인을 찾을 수가 없네, 공사하는 데도 없는데."
"아, 이거 송홧가루야. 진작 물어 보지."

남편의 말에 따르면, 봄이면 송홧가루, 민들레 씨앗, 그 밖에도 여러 종류의 꽃가루로 가끔 먼 산은 고사하고 가까운 산조차 선명하게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고 했다. 자연이라고 해서 마냥 좋은 것만 주는 것은 아닌가 보다. 하지만, 약간의 불편함을 감내하면 좋은 것을 훨씬 많이 주는 순한 것 또한 자연이고 땅일 것이다.

남편에게는 귀향, 나에게는 귀촌

나는 2014년 6월 전남 장성으로 귀촌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직장 생활까지 42년의 객지 생활을 명예 퇴직으로 청산하고 귀향한 남편의 고향이다. 말하자면 남편은 귀향이지만, 내게는 귀촌인 것이다.

남편은 몇 년 전에 먼저 내려와서 (지금은 안 계시지만) 100세를 바라보시는 시아버님과 함께 살며 집을 다시 짓고, 텃밭을 만들고, 농업기술센터에서 이것저것 배우며 내가 내려오기만을 기다리던 차였다. 아마 몸이 아프지만 않았다면, 나는 지금도 복잡한 도시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하긴, 지금도 자주 서울이 그리워서 불현 듯 서울엘 올라가기도 하고 서울을 그리는 시를 쓰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남편은 나를 차에 태우고 시골길을 한 바퀴 돌며 온갖 꽃들로 가득한 아름다운 들판을 구경시켜 주기도 하고 자전거를 가르쳐 논둑길을 함께 달리기도 하면서 나의 마음을 잡으려고 많은 노력을 한다. 그 덕에 1년이 지난 지금은 쑥과 잡초를 구분할 줄 알고, 마늘순과 양파순과 대파를 구분할 줄 안다.

시골의 참맛을 알아가는 중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아직은 시골 생활이라고 해야 말 그대로 '천방지축'이다. 그 천방지축 귀촌 생활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고 한다. 

"여보! 그거 쑥 아니야"

초록색이 국화. 지금 봐도 쑥과 비슷하다.
▲ 국화 초록색이 국화. 지금 봐도 쑥과 비슷하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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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우리 집 옆 남의 밭. 잔설이 희끗희끗한 곳도 있었지만 양지 바른 쪽에는 무언가 새파란 순이 제법 크게 올라와 있었다. 멀리서 보니 꼭 '파' 같았다. 마침 밭 주인 아주머니가 와서 그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가만히 있었으면 2등이나 할 걸, 나는 그만 아는 척 하고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추운데도 파가 용케도 살았네요."
"아, 이거 파가 아니고 마늘이에요."

그리고 며칠 뒤 마을을 산책하고 있는데 골목 빈 터에 새파란 순이 탐스럽게 올라오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어, 여기도 마늘이 있네' 하며 순 모양을 익히려고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마침 일전에 만난 아주머니가 오고 있었다. 아주머니도 내 옆에서 그 새파란 순을 들여다봤다. 안녕하시냐고 인사를 하고 나니 별로 할 말도 없고 해서 속으로, '옳다, 됐다. 며칠 전에 배웠으니 이제 아는 척 해도 되겠지'하고는...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마늘순이 참 탐스럽기도 하네요."
"아, 이거 마늘이 아니고 양파예요."

오 마이갓! 나는 집으로 돌아와 혼자 실소를 금치 못하며 중얼거렸다.

"뭔 놈의 마늘이 파 같고, 양파가 마늘 같고, 파도 파 같고, 나 보고 뭘 어쩌라고."

남편이 비 맞은 중처럼 뭘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주머니와 나누었던 대화를 얘기해줬다. 남편이 빙그레 웃더니 한마디 했다.

"내 국화를 쑥이라고 할 때 알아봤다."

지난해 늦여름쯤이었던 것 같다. 아침 준비를 하려고 보니 국거리가 마땅찮았다. 그 때 불현 듯 마당 한 구석에 시퍼렇게 한 무더기 자리 잡고 있는 쑥이 생각났다. 거실에 계시는 시아버님께 오늘 아침 국은 쑥 국을 끓여 드리겠다며 신을 신는 내게 시아버님께서는 의아한 눈빛으로 말씀하셨다.

"지금 쑥이 어디 있간디?"
"있어요, 대문 옆에."
"그랴? 있어도 지금은 세서 못 먹어야."
"아니에요, 부들부들하던데."

쑥을 자르려고 쑥 앞에 쭈그려 앉았다. 그때 남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그거 쑥 아니야, 그거 국화야."

농부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결실로...

국화를 닮았다
▲ 쑥 국화를 닮았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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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내려오기로 결심을 굳히고 내가 준비한 첫 단계가 '농부 학교'에 다닌 것이다. 시골에 내려가서 텃밭이라도 가꾸려면 최소한 밭 농사 짓는 방법이라도 알아야겠기에. 이리저리 알아봤더니 천주교 농부 학교가 있었다.

기대하며 수업을 계속 받고 있는데 수료할 때가 다 되도록 농사짓는 법은 가르쳐 주지를 않고 환경을 살리는 방법이나 시골에서의 사람 사귀는 방법 등을 가르쳤다. 전혀 뜻밖의 수업에 조금 어리둥절하고 처음에는 실망도 했으나, 지금 생각하니 농사짓는 방법보다 더 소중한 것을 배운 것 같다.

시골이라면 어디를 막론하고 젊은 사람이 귀하다. 젊은 사람이 귀하다 보니 자연히 아이들도 귀하다. 우리 동네는 80여 가구나 되는 시골에서는 제법 큰 마을이지만 빈 집이 없다. 다행히 젊은 사람이 사는 집이 두 가구 있다. 두 집 다 초등학생이 있을 정도로 젊은 사람이다.

나머지는 평균 나이 65~70세가량의 노인들이다. 그러니 이 동네에서는 나이 예순인 내가 젊은 축에 든다. 도회지에서는 나이가 얼마든 간에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하는 사람이 드물다. 아니,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나도 농부 학교에서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동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인사라야 가볍게 목례하는 정도로 끝났을 것이다.

동네 사람들은 나를 보면 웃음이 먼저 난다고 한다. 그 이유는, 누구를 만나든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를 외치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인사 먼저하고 남편에게 '저 분은 누구냐'고 묻기도 한다. 그런데 드디어 그 인사의 결실을 봤다.

오늘도 동네를 한 바퀴 돌아 볼 양으로 집을 나섰다. 집 앞 물 마른 도랑에는 돌미나리가 너울거리고, 마을 회관에는 어르신들이 모여서 100원짜리 동전을 세고 계셨다. 동양화 놀이를 하시려나 보다. 어르신들께 인사를 하고 이 골목 저 골목,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며 한가롭게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텃밭에 유통기한 지난 막걸리로 거름을 대신한다.
▲ 텃밭 텃밭에 유통기한 지난 막걸리로 거름을 대신한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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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

몇 달 동안 내가 먼저 인사를 해도 보는 둥 마는 둥해서 속으로 '별꼴이야'하고 있던 아주머니다. 그런 아주머니께 인사는 했지만 대꾸 같은 건 기대도 안 하고 지나쳐서 오는데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머니는 열무를 캐서 가지고 가던 길이었는데, 제법 많은 양을 나에게 건네며 김치를 담가 먹으라고 했다.

순간 당황해서 거절했지만, 아주머니는 웃음기 하나 없는 메마른 얼굴로 기어이 열무를 내 팔에 안겨 주었다. 나는 어정쩡한 태도로 어정쩡하게 인사를 하고 열무를 받아 오면서 생각했다. 이게 시골 사람의 스타일이고 인심인가보다. 무심한 듯해도 마음만은 따뜻하고 나눌 줄 아는, 여태껏 받은 인사를 보관해 뒀다가 이제야 그 답을 꺼내 놓는 진득한 심사. 나는 그 열무가 몇 달 동안 변함없이 한 내 인사의 대꾸라는 생각도 들었다.

열무를 안고 집에 돌아오니 건조대를 완성한 남편이 이제는 멍멍이의 그늘 집을 만들고 있다. 토방에는 아침에 뜯어 놓은 쑥이 시들하다. 새참으로 쑥 전을 부쳐야겠다.


태그:#쑥 , #국화, #동양화, #인사, #인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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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시원한 청량제, 겨울에는 따뜻한 화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쓴 책 : 김경내 산문집<덧칠하지 말자> 김경내 동시집<난리 날 만하더라고> 김경내 단편 동화집<별이 된 까치밥> e-mail : ok_0926@daum.net 글을 써야 숨을 쉬는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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