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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가 경북 고령에 남긴 주산고분군.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추진 중인 우리나라 대표 고분군이다.
 대가야가 경북 고령에 남긴 주산고분군.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추진 중인 우리나라 대표 고분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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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이라면 흔히 경주를 떠올린다. 산봉우리만한 거대 고분이 경주 시내에 불쑥불쑥 솟아있는 모습은 다른 곳에서 결코 볼 수 없는 장관이다. 특히 무덤 안까지 남김없이 보여주는 천마총과 신라가 남긴 최대 고분인 황남총 등을 거느린 대릉원은 그 중 압권이다.

시가지를 벗어난 곳에 위치하고 있는 무열왕릉과 서악 고분군, 남산 서편 자락에 모여있는 삼릉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경주의 고분은 아무래도 고분군의 느낌보다도 왕릉의 이미지가 강하다. 시내에서 상당히 떨어진 건천읍의 금척 고분군도 있지만 그곳이 경주의 고분군을 대표한다고 말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당연히 금척고분군을 우리나라 대표 고분군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의 대표 고분군은 경북 고령군의 주산 고분군이다. 이곳 고분군은 경주의 왕릉들처럼 평지에 자리잡고 있지 않고 고령군 대가야읍 뒷산인 주산의 능선을 점령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또 그 어느 고분군보다도 더 많은 무덤들을 한 자리에 거느리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순장 흔적까지 남기고 있다. 그만큼 사람살이의 갖가지 체취가 진득하게 서려있는 역사유적이다. 그래서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추진되고 있다.

(왼쪽) 대가야 왕릉전시관이 오른쪽 아래에 보이는 경북 고령 대가야읍 주산고분군 풍경 (오른쪽) 가야 고분으로는 보기 드물게 내부에 벽화가 있는 고아동 고분
 (왼쪽) 대가야 왕릉전시관이 오른쪽 아래에 보이는 경북 고령 대가야읍 주산고분군 풍경 (오른쪽) 가야 고분으로는 보기 드물게 내부에 벽화가 있는 고아동 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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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가 우리나라 역사에 뚜렷한 이름을 남기게 된 데에는 광개토대왕이 큰 역할을 했다. 광개토대왕은 서기 400년, 5만 군사를 보내어 남해안 일대를 휘젓는다. 당시 신라는 고구려가 입맛에 따라 임금을 바꿔버릴 만큼 정치적으로 고구려의 속국이었는데, 그 신라를 가야, 왜, 백제의 연합군이 심하게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삼국을 합한 인구는 대략 500만 안팎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광개토대왕의 5만 대군은 현재로 환산하면 무려 50만을 헤아리는 엄청난 군사였다. 게다가 당나라와 더불어 세계 패권을 다투던 광개토대왕의 군대였으니 가야, 왜, 백제가 쑥밭이 된 것이야 말할 나위도 없었다. 광개토대왕의 '폭격'을 받은 금관가야는 그 이후 속절없이 쇠락의 길을 걸었다. 

수로왕비릉과 오른쪽의 파사탑 비각
 수로왕비릉과 오른쪽의 파사탑 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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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연맹의 종주국 노릇을 해온 금관가야가 국력을 회복하지 못하게 되면서 낙동강 주변의 패권은 대가야로 넘어간다. 결국 금관가야는 527년(법흥왕 년)에 이르러 마침내 신라에 합병된다. 그런데 고구려에 의해 사실상 멸망의 길을 걷게 된 금관가야의 몰락은 세 나라 중 가장 약했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수 있게 되는 데에 재정적, 군사적 밑거름이 된다.

금관가야의 마지막 임금 구해왕(구형왕)의 세 왕자 중 한 명인 김무력은 뒷날 신라가 처음으로 한강 유역을 차지하는 데 결정적 공을 세운다. 신라의 한강 유역 차지는 중국과 직통하는 길을 열었고, 비옥한 광야를 차지하여 경제적 힘을 비축했다는 점에서 통일의 토대가 되었다. 또 김무력은 백제 중흥의 기치를 높게 들었던 성왕을 전사시킴으로써 백제에 비해 신라가 확실히 우위에 올라서는 전기를 구축했다. 게다가 무력의 아들은 김유신이었다.

광개토대왕의 아들인 장수왕이 백제를 진압해준 것도 신라가 강성해지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워낙 강대국이었던 고구려는 중국과 맞상대를 하는 데 전념했으므로, 삼국 중 나머지 두 나라인 백제와 신라는 둘이서 싸우느라 세월이 가는 줄 몰랐다. 곡창 지대를 차지한 백제가 처음부터 신라보다는 한 수 위였다. 그래서 고국원왕을 전사시키는 등 가끔 고구려와 맞상대가 되려고 했고, 줄곧 신라를 공격했다. 그런 백제를 장수왕이 밀고내려와 서울을 함락시키고 임금을 주살하는 등 세력을 크게 위축시켜주었다. 그 틈을 타고 신라는 일취월장으로 힘을 키울 수 있었다.

경남 산청의 구형왕릉도 필수 답사지

가야 여행의 대표지는 경북 대가야읍과 경남 김해시를 들 수 있다. 대가야읍에 남아 있는 대가야 유적으로는 주산 고분군이 압도적 권위를 자랑한다. 고분군 아래에 만들어져 있는 왕릉체험관과, 가야 고분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벽화를 거느린 고아동 고분도 있다. 그러나 고아동 고분은 평상시 그 문이 굳게 닫혀 있어 일반인은 내부를 볼 수 없다.

김해시에는 금관가야의 개국 신화를 대변하는 수로왕릉과 수로왕비릉, 수로왕비릉 앞의 파사탑, 우리나라 최초의 집단 노동요로 평가받는 <구지가> 신화의 구지봉 등이 남아 있다. 그런가 하면, 김해에서 멀리 떨어진 산청에 남아 있는 '전 구형왕릉'도 빼놓을 수 없는 금관가야의 유적이다. 이 무덤에 '전'이 붙은 것은 '그렇게 전해진다'는 뜻이다.

금관가야의 마지막 임금인 구형왕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경남 산청의 무덤
 금관가야의 마지막 임금인 구형왕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경남 산청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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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주산고분군, #금척고분군, #광개토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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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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