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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이 각박한 세상에 이런 경험이야 새로울 것 하나 없는 하찮은 일일지도 모른다. 황당하고 분한 마음을 이렇게 드러내려니, '깜'도 아닌 일에 호들갑 떠는 것 같아 솔직히 면구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동네 주민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면서도 소비자인 그들을 바보 취급하는 몇몇 악덕 상인들에 대한 고발은, 아름다운 동네를 만드는 데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 믿는다. '생활 진보'라는 게 별건가.

세탁소 이야기다. 비양심적인 세탁소야 예전에도 TV 등을 통해 수차례 방송을 탄 익숙한 풍경이지만,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지금도 세탁물 훼손과 배상 기피, 세탁물 배송 착오와 세탁 불량 등 크고 작은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이는 어쩌면 방송을 보고는 분개해도 우리 동네 세탁소는 안 그럴 거라 여기는 사람들의 '착한 심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시청자와 소비자는 같으면서도 다른 사람이다.

며칠 전 출근 준비를 하던 아내는 옷장에서 봄옷을 꺼낸 순간 깜짝 놀랐다. 곳곳에 얼룩이 선명했기 때문이다. 가슴 쪽과 손목 부분엔 500원짜리 동전만 한 자국이 또렷하고, 소매 끝에는 까만 땟자국이 그대로 남았다. 심지어 아이보리색 옷감에 검정 볼펜 자국조차 또렷했다. 도저히 세탁을 했다고 믿을 수 없는 상태였다. 세탁소에서 찾은 후 처음 비닐을 뜯은 터였다.

세탁소서 찾은 옷에 얼룩이... 세탁소 주인의 적반하장

대형 세탁소에서 당한 잊을 수 없는 봉변
 대형 세탁소에서 당한 잊을 수 없는 봉변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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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람이 보면 세탁소에 맡기기 전의 상태라고 오해했을 게 틀림없다. 세탁물을 의뢰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난감했을 테지만, 옷걸이와 옷 속 라벨에 태그가 그대로 부착되어 있어 천만다행이었다. 어떻든 아침부터 적잖이 황당했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니 실수도 있는 법, 퇴근 후 부러 찾아가 다시 세탁해 달라고 요구했다. 바로 그때 세탁소 주인의 어처구니없는 답변이 돌아왔다.

"찾아가신 지 1년 가까이 지난 옷인데, 이제 가져오시면 어떡해요? 찾아가신 세탁물에 오물이 묻어있는지 바로 확인하셨어야죠. 다른 세탁소라면 십중팔구 소비자의 과실로 여길 만한 일이지만, 저희는 그냥 '서비스' 해 드릴게요."

찾아갈 때 상태를 왜 살펴보지 않았느냐는 거다. 매일 갈아입는 와이셔츠나 블라우스가 아닌 다음에야, 보통 계절이 지나면 옷장에 정리해 넣기 위해 세탁소를 찾게 된다. 비닐이 씌워진 상태로 건네받은 세탁물을 일일이 꺼내 세탁이 제대로 됐는지를 점검하는 소비자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확인하는 건 세탁소 쪽의 몫이지, 소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순 없지 않은가.

더욱이 불만 사항에 대한 소비자의 당연한 요구를 마치 선심 쓰듯 '서비스'해주겠다니, 순간 바보 취급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따지듯 물었다. 어떤 이유에서건 세탁이 되지 않은 상태로 건네졌거나, 적어도 마지막 상태를 확인하지 않은 건 세탁소 책임이니 손님에게 정중히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런데, 사과는커녕 그의 답변은 갈수록 태산이었다.

"드라이크리닝이 필요한 옷을 맡길 땐 나중에 물세탁을 해도 되는지 알려주셨어야죠. 저희는 그냥 옷 라벨에 적혀있는 세탁 방법을 그대로 따라 했을 뿐이에요. 그러다보니 얼룩이 안 지워졌을 수도 있죠. 얼룩 지우겠다고 막무가내로 물세탁했다가 옷감이 상하기라도 하면 손님께선 가만히 계시겠어요? 이것도 다시 물세탁하게 되면 변형될 수 있으니 감안하세요."

이게 말인지 막걸린지 헛갈릴 지경이 됐다. 옷에 묻은 얼룩이 드라이크리닝으로 제거되는지 여부를 소비자가 어떻게 알 수 있나. 설령 얼룩이 제거되지 않았다면 소비자가 세탁물을 찾아갈 때 그 사실을 알려주고 물세탁할 것인지를 물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상식적인 절차도 없이 세탁되지도 않은 옷에 비닐을 씌워 건넨 건 소비자를 우롱하는 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

세탁소 주인 눈엔 정말로 내가 바보로 보인 걸까

결국 서로 언성이 높아졌다. 사실 내 입장에서는 '이겨봐야 본전'인 언쟁이었다. 옷 얼룩 빼주는 것 말고, 이만한 일로 무슨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다시 해주겠다고 했을 때, 듣기에 황당했을지언정 그냥 고맙다며 두루뭉수리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젠 정중히 사과 받는 것조차 무망한 일이 돼버렸다. 그는 갈수록 무책임하고 어이없는 말만 쏟아냈다.

"자꾸만 애초 세탁이 안 됐을 거라 생각하고 말씀하시는데, 절대 그럴 리 없어요. 세탁하지 않은 옷에 태그를 그렇게 붙여놓을 리가 있겠어요? 아무리 세탁을 해도 안 지워지는 것도 있고, 세탁이 잘 됐다 해도 1년이면 다른 이유에 의해 그런 얼룩들이 생길 수도 있어요. 말하자면, '황변 현상' 같은 게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거든요. 그렇게 몰아붙이지 마세요."

그의 눈엔 내가 정말 바보로 보인 걸까. 습기 찬 옷장에서 옷에 곰팡이가 슬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세탁된 옷에 커피 자국 같은 얼룩과 지워졌던 볼펜 자국이 생겨날 수 있다는 건 금시초문이었다. 내가 아는 '황변'이란, 옷에 남은 땀의 흔적이 시간이 지나 흰 계통의 옷이 누렇게 변하는 현상이다. 백 보 양보해서 설령 그렇다 해도, 땀의 흔적을 완전히 빼지 못한 세탁소의 책임이지 소비자 앞에서 '지적 질'이 어디 가당키나 한가.

끝내 그는 사과하지 않았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답변만 늘어놓으면서도 그는 내내 당당했다. 말다툼 중 딱 하나, 세탁 상태를 확인하지 않고 건넨 잘못은 인정했다. 그러나 그것조차 자신의 책임은 아니라고 했다. 당시 종업원의 실수인데, 하도 자주 바뀌다 보니 1년 전 옷을 건넨 사람이 누구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고 덧붙였다. 정말이지 뻔뻔할 정도로 무책임했다.

소비자로서 거짓말과 불친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엄포'를 놨는데도 가소롭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귀찮다는 듯 다른 일을 하며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멀쩡한 옷 한 벌 버리는 셈치고, 다시 들고 나와 버렸다. 다시 세탁해 주겠다는 '호의'를 거절한 것이다. 순간 이런 경우 다른 세탁소라면 어떨까 싶었다. 이중으로 돈이 들더라도 다른 곳에 맡겨보기로 했다.

'단골'이 사라진 자리에 '뜨내기'만 득시글거리다

몇 곳의 세탁소를 찾았다. 진단과 평가가 서로 다를까 싶어 부러 여러 곳에 의뢰해본 것이다. 옷을 보여주니, 하나같이 뺄 수 있는 얼룩이라고 했다. 제거할 수 없는 얼룩이 있긴 하지만, 이렇게 곳곳의 다른 얼룩이 모두 남아 있기는 힘들다는 진단이었다. 만약 세탁 후에도 남아 1년 정도가 흐른 거라면 쉽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다들 상식적인 설명이었다.

어떤 곳은 이런 종류의 클레임이 걸리면 2년이고, 3년이고 끝까지 다시 세탁해 주는 게 당연하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팁'을 하나 귀띔해 주었다. 세탁물 분실 사고가 나도 온갖 규정과 귀책사유를 들어 소비자에게 덤터기를 씌우는 일이 드문 일이 아니란다. 부주의로 훼손됐을 경우에도 갖가지 이유를 대 책임을 회피하는 비양심적인 가게도 있다고 했다.

봉변을 당한 세탁소는 간선도로변에 위치해 있다. 여느 곳처럼 더러워진 옷 한두 벌을 빨래 바구니에 담아 동네 마실가듯 찾는 곳은 아니다. 출근길에 맡기고 퇴근길에 찾아가는, 제법 큰 규모의 세탁소다. 와이셔츠 하나에 900원이라는 광고에 솔깃해 찾기 시작했는데, 다른 이웃들도 나와 같았는지, 나이 지긋한 부부가 꾸리던 동네의 단골 세탁소는 이내 문을 닫았다.

최근 들어 세탁소조차 프랜차이즈로 운영되고 있는 것 같다. 대형 마트가 들어오면서 동네 슈퍼가 사라졌듯, 동네 세탁소도 가격 경쟁에서 밀려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형국이다. 어떤 업종이든 으레 규모가 커지면 '손님'은 늘어날지언정 '이웃사촌'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단골'이 사라진 자리에 '뜨내기'만 득시글거리다보니, 오로지 '소비'만 있고, '관계'는 없다.

나는 몇백 원 아끼려고 '단골' 세탁소에 발길을 끊었고, 대신 찾은 기업화된 대형 세탁소에는 세탁물과 돈만 오갈 뿐 이웃 간의 정은 사라지고 없다. 만약 나를 '이웃'이라고 여겼다면, 세탁소 주인은 그렇듯 뻔뻔하고 황당한 답변을 했을 리 없다. '너 하나쯤 안 와도 손해될 것 하나 없다'는 배짱은 동네마다의 작은 세탁소들을 문 닫게 만든 대형화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 많던 동네 세탁소를 하나둘씩 문 닫게 만든 '대형 세탁 공장'들은 소비자들을 우롱하며 '갑질'을 할 태세다. 결국 몇백 원 싸다고 단골을 버린 '죗값'을 그렇게 받은 셈이다. 이는 단지 동네 세탁소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언제부턴가 그 세탁소 출입문에는 '와이셔츠 900원'이라는 광고 문구 옆에 '모범업소'라는 글자가 대문짝만하게 나붙었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태그:#프랜차이즈 세탁소, #생활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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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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