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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로를 따라 가는 행렬
 신화로를 따라 가는 행렬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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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신화로를 따라 연정리로 이어진다. 신화로는 신녕면과 화산면을 잇는 도로로, 신녕의 신자와 화산의 화자를 따서 이름이 붙여졌다. 연정리에는 연계(蓮溪)서원이 있다. 연계서원은 구한말 유학자였던 송계(竦溪) 한덕련(韓德鍊) 선생을 추모하고 그 덕을 기리고자 2001년 세워졌다. 여느 서원과 마찬가지로 강학공간과 사당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그곳을 가볼 시간은 없다.

오히려 길옆 연정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파릇파릇한 마늘밭, 진분홍색의 복숭아꽃밭 뒤로 모습을 드러낸 고딕식의 건물, 그 뒤로 멀리 보이는 화산(華山)이 정말 잘 어울린다. 동양화 속에 들어간 서양식 건물이 이처럼 잘 어울리는 것은 처음 본다. 그것은 아마 복숭아꽃이 보여주는 은은한 아름다움 때문일 것이다. 4월은 잔인한 달이 아니고, 꽃피고 새우는 생명의 달이다.

연정교회
 연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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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정리를 지나면 화산면 효정리로 이어진다. 효정리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나와 조선통신사 걷기 일행을 환영한다. 이 길 위로는 상주-영천간 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옛날 상주에서 경주로 가려면 영천을 거치는 것이 지름길이었다. 그래선지 새로 도로가 나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화산리에 있는 화산교를 지나 가상리로 향한다. 

가상교 강돌 위에 흔적 남기기

가상교
 가상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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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리는 신녕-영천 구간 걷기의 중간지점으로, 그곳 가래실 마을에서 점심을 먹기로 되어 있다. 점심을 먹기 전에 걷기 참가자 모두가 가상리에 도착한다. 마을 입구에는 '제5차 21세기통신사 서울-동경 한일 우정걷기 "영천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점심이 너무 늦었지만 일행은 모두 가상교로 간다. 그곳에서 글로 흔적을 남기는 행사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가상교는 신령천의 지류인 삼부천에 놓여 있다. 가상교 다리 위에는 알루미늄으로 둥글게 난간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난간 사이에 강돌을 쌓아올리고는 철사로 묶었다. 그 강돌에 걷기 참가자 모두가 글이나 그림을 남기는 것이다. 충주에서 만나 개인적으로 우정을 나눈 시오자와 스미(塩沢澄)씨는 '우애(友愛)!'를 강조하고 있다.

우애(友愛)를 강조한 시오자와(??)씨
 우애(友愛)를 강조한 시오자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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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도쿄 북쪽 사이타마(琦玉)현의 아게오(上尾)시에 살고 있다. 그러면서 사이타마시에 있는 NPO법인 사이타마현 워킹(ウオーキング)협회 상임간사를 맡고 있다. 이번 조선통신사 옛길 걷기에 참가한 일본 사람 대부분은 걷기에 베테랑들이다. 서울에서 영천까지 15일째 걷는데도 피곤한 기색 하나 없다. 시오자와씨와 필자는 필담을 통해 의사소통을 하곤 했다.

그와는 여행기를 내면 책을 보내주기로 약속한 바 있다. 그는 또한 홍어 삼합을 맛있다고 할 정도로 음식에 대해서도 개방적이었다. 그리고 일본 가요 고죠노스키(荒城の月)를 좋아하는 보통 사람이다. 고죠노스키는 다키 렌타로(瀧廉太郞)에 의해 작곡되어 1901년부터 유행한 일본의 대표적인 가요다. 이 노래는 이번 걷기를 통해 알게 된 양효성(梁曉星)씨도 좋아했다.

우정을 강조 하는
 우정을 강조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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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효성씨는 영천 출신이라 이번 환영연과 전별연을 주도적으로 준비했다. 그는 두권으로 된 <나의 옛길 답사 일기> 책을 낸 바 있다. 그는 현재 '주막의 등불'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그곳에 가면 일상의 애틋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여행, 답사 그리고 맛집 등... 그래선지 그에게는 도시적인 느낌과 시골스런 느낌이 교차한다. 

가래실 마을의 점심과 시안미술관의 예술

가래실의 점심
 가래실의 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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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소망 또는 결의를 흔적으로 남긴 조선통신사 걷기팀 일행은 가래실 마을에 마련된 점식식사 장소로 이동한다. 식탁이 삼부천 개울가에 차려져 있는데, 강바람이 심한 편이다. 참가자 모두에게 영천시에서 마련한 비빔밥이 제공된다. 봄나물이 들어가 있고, 시원한 어묵국도 있어 맛이 좋다. 그리고 고추장이 들어 있는데도 별로 맵질 않다. 일본 사람들을 배려한 모양이다.

점심식사 후에는 45분 정도의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그 동안 길 건너편에 있는 시안미술관을 관람도 하고 휴식도 취하라는 것이다. 통신사 일행은 대부분 시안미술관으로 향한다. 시안미술관은 화산초등학교 가상분교를 매입해 2004년 4월 시안 아트센터로 처음 개관했다. 2005년 1종 미술관으로 등록되었고, 그 후 영천의 대표적인 문화복합센터로 기능을 하고 있다.

시안미술관
 시안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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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은 잔디 조각공원, 야외음악당, 미술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잔디 조각공원에는 금속공예품이 있다. 작품이 큰 편이다. 이곳에는 체험학습을 하는 유치원생들이 많이 보인다. 야외음악당은 계단을 만들어 놓아 공연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우리 일행은 미술관으로 간다. 삼각지붕의 3층 건물로, 1층과 2층에 전시실이 있다. 전시공간은 모두 4개다.

지금은 두 가지 전시가 열리고 있다. <2014 시안미술관 레지던시 리포트 - 체류(Sojourn)>전은 끝나가고 <Second Studio 2015>전은 시작이다. <체류>전에는 강윤정, 신경애, 하광석 같은 국내 작가뿐 아니라, 이탈리아 작가 베라 마테오, 일본 작가 가와타 츠요시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이들 작가의 작품이 크기는 한데, 던져주는 메시지가 분명하지는 않다.

베라 마테오의 ‘말 없는(unspoken)’
 베라 마테오의 ‘말 없는(unspok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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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오의 작품은 '말 없는(unspoken)'고, 가와타의 작품은 '구조가 형태의 표면을 결정한다'이다. 무얼 말할 수 없고, 구조가 어떻게 형태를 결정한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Studio>전에 출품한 작가는 김영환, 박경아, 이상봉, 이소진이다. 이들의 작품은 나름대로 개성이 있다. 그렇지만 제2작업실이라는 전시제목과 어떤 연관성 또는 통일성이 있는지 궁금하다.

김영환 작가의 '손'은 색깔이 있다. 박경아 작가의 '검은 숲'은 그로테스크하다. 이소진 작가는 털실, 솜뭉치, 호스를 이용, 무언가 입체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이게 뭘까? 이상봉 작가는 비디오 아트를 모방하여 '맹자 세레나데'를 만들었다. 설명에는 맹자의 사단(四端)을 이야기하고 있다는데, 그게 쉽게 느껴지고 들어오지 않는다. 큐레이터는 예술과 관람객의 소통가능성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영남외국어대학 일본어과 학생들과의 만남

가래실 마을 출발
 가래실 마을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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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가래실 마을에서 조선통신사 걷기 일행은 통역 도우미들을 만난다. 영남외국어대학 일본어과 학생들로, 일본 사람들의 답답함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러 왔다. 인솔 교수는 일본어과 학과장인 송의익(宋義翼) 교수다. 조천선통신사 걷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이곳 영천을 찾아 통역봉사를 한다고 한다. 영남외국어대학은 이웃하고 있는 경산시에 있다.

그들은 영천 조양각에 도착할 때까지 함께 걸었다. 일본 사람들은 한국에 대한 의문이 조금은 풀렸을 테고, 한국 사람들은 일본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을 조금이라도 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들 학생은 자연스럽게 한국인과 일본인들의 가교 역할을 한 셈이다. 또 잠깐이나마 원어민과의 대화를 통해 일본어에 대한 감을 조금은 끌어올렸을 것이다. 송의익 교수의 아이디어가 좋다.

통신사와 역관
 통신사와 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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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 걷기팀은 이제 암기리와 대기리를 지나면서 복숭아꽃 핀 고개를 여럿 넘는다. 그리고는 영천의 동 단위 행정구역으로 들어선다. 이제 목표지점인 조양각까지는 5㎞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는 녹전동에 있는 경북 차량용 임베디드 기술연구원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한국체육진흥회 선상규 회장의 부인이 오렌지를 가지고 왔기 때문이다.

쉬어가는 김에 이번 행사를 후원하고 봉사한 사람들에 대한 기념패 전달식도 있었다. 역시 모든 일에는 중간 중간 휴식과 변화가 꼭 필요한 것 같다. 휴식과 기념패 전달식 후 함께 한 모든 사람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조선통신사 행렬은 실제로 사오백명 정도였다. 조선통신사 옛길걷기 행렬 인원은 그 1/10 정도인 50명 정도지만, 신녕-영천 구간에서는 지원과 봉사팀이 포함되어 100명 정도가 함께 길을 걸었다.


태그:#신녕면, #화산면, #가상리(가래실), #시안미술관, #영남외국어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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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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