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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에 해혼식 할 건 데 와주라."

지루한 아침이 시작되고 있는데 메시지가 왔다. 해혼식이라니... 그녀가 이혼을 한 건 알고 있는 일이었지만 깜짝 놀랐다. 멋쩍은 그녀는 "새 출발을 위해 마무리를" 나는 "축하해주러 날아갈게. 아름다운 삶 결혼 그리고 마무리 축하해" 메시지를 보냈다. 그녀는 작년 가을 오랜 진통 끝에 17년 동안의 결혼 생활을 마무리했다.

두 사람의 이혼을 곁에서 지켜본 터라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처음 가보는 해혼식은 어떤 분위기일까 궁금하기도 했다.법정에서 이혼은 했으니 '해혼식'이라고 부르자고 했다. 결혼이라는 굴레를 벗어버리고 서로 자유인이 되기 위한 해혼식. 모인 사람들도 다양했다.

결혼한 지 한 달도 안 된 신혼부부부터 70살이 넘은 어르신. 결혼한 지 오래된 부부들 그리고 처녀 총각까지 모두 처음 맞이하는 해혼식이었다. 두 사람은 참 잘 살았구나. 좋은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온 세월을 격려 받고, 앞으로 살아갈 세월을 축하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두 사람에게 해혼식이란 자리를 마련한 사회자는 이혼 경과(?)를 보고하고는 서로의 심경을 듣고 싶다고 했다.

"지난 17년 동안 부부로 살면서 다른 데서는 정말 당당하던 내가 아내 앞에서만 늘 주눅이 들었어. 이제는 정말 나로 당당하게 살아보려고 해."

그의 말에 그녀는 "왜 이제야 그 이야기를 하냐"며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하고 쓸쓸히 웃었다.

"그래도 자기 만나서 사랑했고, 보물 같은 아이들이 존재한다는 건 정말 고마워."

그는 그녀에게 프리지아 한 다발을 선물했다. "당신의 새로운 삶을 축하합니다"라고 말하며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마음을 모아 그들의 삶을 응원해주었다.

부부라는 이름이 아닌 동지가 된 두 사람

해혼식 날, 그는 그녀에게 프리지아를 안겨줬다.
 해혼식 날, 그는 그녀에게 프리지아를 안겨줬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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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선후배로 만나 함께 사회를 변화시키고 공동체의 삶을 살아냈던 그들 그리고 멀어짐. 하지만 그들은 다시 친구가 됐다. 이제는 부부라는 이름이 아니고 동지가 된 거다. 서로의 삶이 잘 되기를 지켜봐주고 격려해주는 동지. 때때로 외로울 것이다. 하지만 서로 마주하고 있어도 외롭기를 버리고, 혼자만의 시간을 묵묵히 견뎌낼 그들임을 안다. 나는 혼인이라는 지긋지긋한 제도를 벗어버리고 새롭게 출발하는 그녀에게 적어온 편지를 읽었다.

고마웠다, 그 생애의 어떤 시간

허수경

그때, 나는 묻는다. 왜 너는 나에게 그렇게 차가웠는가.
그러면 너는 나에게 물을 것이다. 그때, 너는 왜 나에게 그렇게 뜨거웠는가.
서로 차갑거나 뜨겁거나, 그때 서로 어긋나거나 만나거나 안거나 뒹굴거나 그럴 때,
서로의 가슴이 이를테면 사슴처럼 저 너른 우주의 밭을 돌아 서로에게로 갈 때,
차갑거나 뜨겁거나 그럴 때, 미워하거나 사랑하거나 그럴 때,
나는 내가 태어나서 어떤 시간을 느낄 수 있었던 것만이 고맙다.

언니의 해혼식을 축하하기 위해서 편지를 쓴다. 언니 생각하면 음, 뭐랄까. 다양한 마음이 들어. 살아생전 해혼식도 가볼 수 있게 해주고. 재미있네. 하지만 언니는 오랜 시간동안 아프고 괴로워했다는 거 알아. 아주 조금은 말이야. 해혼식을 하려니 마음이 쓸쓸하겠다. 그래도 나의 임무는 언니를 격려하고 지지하고 맘껏 축하해주는 일이라 믿어.

청승맞은 허수경은 생애 어떤 시간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만이 고맙다고 적었네. 언니의 인생에 생긴 수많은 일들을 이제 겸허하게(?) 받아들일 시간인 거 같다. 나보다 10년을 더 산 언니의 삶의 무게가 얼마나 클까 생각하다가 다시 숙연해진다. 언니야. 씩씩하게 잘 살아줘. 알겠지? 미친(?) 방랑자처럼 훌쩍 떠나기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글도 적으면서 언니만의 방을 잘 만들어가길...

언니는 잘할 거야. 그 외로움으로 더 멋진 언니만의 세계를 만들 거야. 멋있게 살아줘. 아니 때로는 힘들어서 술 한 잔 기울이고 싶으면 전화해. 가까이 살 때 더 자주 봐야지. 언젠가 멀리 살 수도 있으니. 사람과 사람의 거리는 마음의 거리가 더 크지만, 실질적 거리도 외면할 수 없으니. 언니에게 애틋한 마음 보낸다. 힘내. 또 술 마시자.

마흔이 훌쩍 넘어 또 다른 출발을 하는 수피에게

편지를 읽으며 몇 번이나 울컥거렸다. 그녀를 보니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자리를 옮겨서 그녀의 집으로 갔다. 목소리가 굵고 멋진 친구가 기타를 잡더니 두 사람에게 들국화의 '축복합니다'를 불러주었다.

부부의 연은 끝났지만, 아이들에겐 영원히 울타리로...

오늘 이렇게 우리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당신의 앞길을 축복합니다
그동안 지나온 수많은 일들이
하나둘 눈앞을 스쳐가는데
때로는 기쁨에 때로는 슬픔에
울음과 웃음으로 지나온 날들
이제는 모두가 지나버린 일들
우리에겐 앞으로의 밝은 날들뿐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날 때에는
웃으며 서로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우리 함께 다짐하며
오늘의 영광을 당신께 이 노래로 드립니다.

위로받고 싶고, 축하받고 싶었던 두 사람은 노래에 취하고 술에 취했다. 그녀가 기타를 잡더니 '그리움만 쌓이네'를 부르며 남은 사랑을 고백했고, 그는 답가로 '내 사랑 내 곁에'를 불렀다. 결혼식만큼이나 아름다운 해혼식이었다.

우리가 노래를 부르며 머물 때 아이들이 들어왔다. 부부의 연은 끝났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아이들의 부모로 아이들에게 울타리가 되어줄 것이다. 우리는 가족의 시간을 위해 조용히 사라졌다.


태그:#해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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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쓸 때는 은둔자가 되고 싶으나, 그저 사람을 좋아하는 여인. 곧 마흔, 불타는 유혹의 글쓰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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