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여보, 파마하고 올 테니 점심은 알아서 차려 드세요."

봄 기운이 완연했던 지난 주말 주부 C씨는 미뤄왔던 머리 손질을 위해 집을 나섰다. C씨는 대략 두어 달에 한 번씩 파마를 한다. 파마를 하는 그나 남편이나, 파마하려 미용실을 찾는 걸 너무도 자연스럽게 여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인식하지 못할 망정, 미용실은 그 본질이 '뷰티샵'보다는 '화학실험실'에 가깝다.

"당신 샤워를 마치고 난 뒤 머릿결이 참 매혹적이야."

30대 후반의 남성 L씨는 아내의 평소 머릿결보다 샤워 직후 대충 말린 머리카락에 더 큰 매력을 느낀다. 그러나 그도 아내도 샤워 후의 아름다운 머릿결이 '화학실험'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은 의식하지 못한다.

파마는 화학작용의 결과물

화학실험은 물리실험보다 시간을 더 잡아 먹는다. 미용실에서 커트를 할 때보다 파마 때 시간이 훨씬 더 걸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커트는 가위로 머리를 자르는 물리적인 행위이다. 그러나 파마는 머리카락을 구성하는 물질의 근본적인 변화, 즉 화학작용이 일어난 결과이다.

'영구적인'이란 뜻의 영어 단어 '퍼머넌트'(permanent)에서 유래한 '파마'는 말 그대로 효과가 사뭇 영구적이다. 그렇다면, 샤워 뒤의 촉촉한 머릿결은 똑같은 화학작용의 결과인데도 왜 영구적으로 형태가 유지되지 않을까? 파마나 머리감기나 화학작용을 동반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일어나는 화학반응의 종류는 다르다. 학창시절 화학 수업 시간에 귀를 기울였다면, '수소결합'이니, '황화결합'이니 하는 단어들을 접해봤을 것이다.

좀 거칠게 결론부터 얘기하면, 파마는 황화결합을 조작한 결과이고, 이 때문에 효과가 오랫동안 지속된다. 반면 머리카락에 물이 스며들기 시작하면 머리카락 내부에서 유지되고 있는 수소결합이 대부분이 일시적으로 끊어지는데, 시간이 지나 머리카락이 마르면 다시 원상으로 회복된다.

샤워 뒤 머리카락이 저절로 마르기 전에 헤어 드라이어로 머리를 손질하면, 손질한 대로 수소결합이 이뤄진다. 파마만큼은 아니지만, 헤어 드라이어의 '약발'도 그런 대로 장시간 유지되는 탓에 자신만의 헤어 스타일을 고집하며 멋을 내는 사람들에게는 헤어 드라이어는 상당히 유용한 물건이다.

머리카락은 케라틴 단백질의 새끼줄

머리카락만의 이런 오묘한 조작 특성은 거의 전적으로 '케라틴'이라고 불리는 단백질에서 비롯된다. 인간의 머리카락은 길다란 케라틴 단백질이 마치 새끼 꼬여지듯 꼬여져 만들어진다. 요즘은 보기가 쉽지 않지만, 과거 지푸라기를 이용해 새끼를 꼬는 일이 농촌에서는 꽤 흔했다.

새끼 꼬기의 가장 흔한 형태는 세 가닥의 지푸라기를 서로 엮는 것이었다. 헌데, 머리카락 역시 3개 가닥의 케라틴이 꼬여져 새끼줄처럼 한 줄의 섬유가 된다. 한 올 한 올의 머리카락은 이런 섬유들이 아주 여럿 모인 것이다.  

평소 세 가닥의 케라틴은 황화결합과 수소결합을 통해 서로를 붙들고 있다. 파마를 해본 사람들이라면 대개 알고 있겠지만, 파마를 할 때 미용사는 머리에 두 번 서로 다른 '약'을 친다. 먼저 투입하는 약품은 기존의 황화결합을 끊는 약(환원제)이다. 이후 환원제 효과를 없애주는 중성화제를 발라준다.

황화결합을 조작하는 파마의 결과는 옷에 달린 지퍼에 비유할 수도 있겠다. 파마를 하기 전의 머리카락, 즉 케라틴 가닥들은 서로 이가 제대로 물린 지퍼와 같은 상태로 배열돼 있다. 하지만 머리카락에 약(환원제)을 치고 나면 지퍼의 이가 어긋나 물려 있는 상태로 변한다. 지퍼 이가 어긋나면 옷 자락이 우그러질 수밖에 없는데, 바로 이런 식으로 머릿결을 우그러뜨리는 게 파마인 것이다.  

파마가 등장하기 이전에도 머리카락은 남녀노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멋을 내는데 가장 빈번하고 광범위하게 이용 혹은 활용돼 왔다. 머리카락으로 오만 가지 멋을 부릴 수 있는 과학적 이유를 찾는다면 무엇보다도 머리카락을 구성하는 케라틴 단백질만의 고유 특성에 우선 눈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위클리공감(korea.kr/gonggam)에도 실렸습니다. 위클리공감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하는 정책주간지 입니다.



태그:#머리카락, #파마, #케라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