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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이미 용서를 받았대요. 근데 내가 어떻게 다시 그 사람을 용서하냐고요?"

영화 <밀양>(2007, 이창동 감독)에서 신애(전도연 분)가 울부짖으며 뱉은 말이다. 남편을 잃고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와 안착한 신애에게 유일한 위안은 아들 준. 그러나 그가 유괴를 당한다. 기독교에 귀의하여 안정을 되찾은 신애가 '원수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심, 유괴범을 용서하려고 교도소에 면회를 간다.

그런데 유괴범에게 뜻밖의 말을 듣는다. 교도소에서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자신은 이미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다는 것이다. 히죽거리며 하는 유괴범의 말을 듣는 순간 '용서'라는 개념의 모호함에 휩싸인다. 신애는 그야말로 '멘붕'이 되고 만다. 소위 구원받았다는 종교인들의 뻔뻔함과 파렴치, 영화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교회가 악행과 비리의 온상?

<망해도 잘사는 부자들> 책표지.
 <망해도 잘사는 부자들> 책표지.
ⓒ 생각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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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라는 그늘 막에 숨어 저지르는 비리와 악행의 파렴치가 다시 한 번 세간을 들썩이고 있다. 방위사업비리 합동수사단이 일광공영 이규태 회장을 조사하면서 밝혀지는 내용들이 그것이다. 이 회장은 서울의 한 교회 장로다. 이 회장이 하나님께서 축복하셨다고 말하는 게 그리 주목할 만한 일은 아니다.

하도 기독교인들이 이런 유의 간증을 하면서 국민들에게 실망을 줬기 때문에 이제는 그런 게 가십거리도 안 될 정도다.

이 회장은 자신이 다니는 교회를 자신의 불의를 감추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교회 안에 비밀 업무공간을 마련해 놓고 CCTV는 물론 침대니 샤워시설까지 갖춰 놓았다. 심지어는 도주로로 보이는 별도의 문까지 만들어 놓았다.

이 회장은 2004년 불곰사업 진행과정에서 중개수수료 70여억 원을 교회에 기부한 뒤 다시 변제받는 수법으로 돈을 세탁한 전력을 갖고 있다. 이 회장이 장로로 있는 교회의 조 목사 동생은 일광그룹 계열사의 임원으로 비자금 조성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이번에도 이 회장이 공군 전자전 훈련장비 도입 과정에서 빼돌린 216억 원이 교회를 이용하여 돈 세탁이 이뤄졌을 것이라고 보고 검찰이 조사 중이다. 그러니까 2004년과 같은 수법으로 돈을 세탁하여 정관계 로비에 사용했을 거라는 것이다. 그의 종교는 그의 회심에 아무런 영향력을 주지 못했다. 아니 비리와 악행을 저지르는 현장이 되고 말았다.

교회와 기업인, 종교와 재물, 이들은 어떻게 음지에서 서로 결탁하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거룩함으로 위장된 장막 뒤에서 희한한 음모가 진행된다는 자체가 미스터리다. 거룩함과 비리가 어떻게 어울리는지 도무지 일반인들은 알 수가 없다.

"헌금 낼 돈 가져가면 벌 받아"

신동아그룹은 1999년 망했다. 최순영 전 회장은 돈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관계기관은 홍콩의 한 은행에서 숨겨놓았던 최 전 회장 명의의 30억 원을 찾아 추징했다. 최 전 회장 역시 교회의 장로다.

최 전 회장의 부인 이형자씨가 외화반출 혐의를 받고 있던 남편을 구명하려고 고위층 부인들에게 비싼 옷을 상납한 옷로비 사건은 유명하다. 이후 최 전 회장은 한 선교대회에서 "아침에 일어나면 큰 소리로 찬양을 불렀다. 재물을 다 내려놓았다. 없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고 간증했다. 이에 대해 한종해 기자는 그의 책 <망해도 잘사는 부자들>에서 아래와 같이 비웃는다.

"최 전 회장은 이 말을 지키고 있다. 부인과 자식에게 자신이 갖고 있던 재물을 내려놓았다. 그러곤 '돈이 없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 31쪽

당시 조사기관에서 최 전 회장 집을 뒤졌을 때, 개인금고에서 5만 원권 97장, 2100만 원이 든 통장, 1500만~1800만 원의 '이사장님 보수 지급 명세서', 27억 원의 예금 잔액서류, 1억 원 상당의 명품시계, 현금 뭉치 1200만 원이 든 가방 등이 나왔다. 돈을 내려놓았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부인 이형자씨가 조사관에게서 서류를 빼앗아 찢으며 한 말은 유명하다.

"그 돈은 하나님께 헌금으로 낼 돈이야! 가져가면 벌 받아!"

조사관은 그의 말에 이렇게 응답했었다. 그 말도 명언이 되었다.

"세금 내시면 하나님도 잘했다고 하실 겁니다."

성경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마태복음 22:21)고 말한다. 굳이 따진다면 신앙인인 이형자씨의 말보다는 수사관의 말이 더 성경적이다. 참 우스운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최 전 회장은 교회의 장로로 온누리교회 담임목사였던 고 하용조 목사와는 동서지간이다. 최 전 회장은 한 인터뷰에서 "나도 추징금 체납액을 내고 싶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저자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라고 지적하면서 "최 전 회장이 쥐고 있는 돈은 없다, 부인 이씨가 뒤에 숨겨놔서다"라고 말한다.

최 전 회장은 부인 이씨가 이사장인 기독교선교횃불재단 명의의 양재동 고급 빌라에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시로 해외에 드나드는 등 호화로운 생활을 한다는 풍문도 들려온다. 나중에 기독교선교횃불재단은 소송에 져 대한생명에 479억 원을 반환했다. 이는 최 전 회장 부부가 회사 돈을 종교 단체에 헌금했다는 증거다. 이를 두고 보건데 신앙인의 불량 신앙에 선교 기관이 놀아난 꼴이다. 불량 기업인 장로 부부와 선교 기관의 밀월이 낳은 좋지 않은 결말이다.

종교의 가면으로 불법을 가릴 수 있을까

종교의 이름으로 선한 척하는 기업인의 이중적인 모습은 최 전 회장의 경우만은 아니다. 신호그룹의 이순국 전 회장은 손에서 법문 낭송 테이프를 놓지 않는 독실한 불교인이다. 법명이 '청신사 백운거사'이고 부인 신송심씨는 '청신녀 평등심'이다. 1998년 신호그룹은 망했다.

이 전 회장은 아직도 납부하지 않은 막대한 추징금이 있다. 2003년 18억5000억여 원 중 현재 2억5000만 원만 냈다. 이런 이 전 회장은 조계종 대각회 반야바라밀다결사 홈페이지에 보면 점심 공양을 했다는 기록이 사진과 험께 실려 있다.

공양 장소는 정원만도 200~300명을 수용할 정도로 넓고 잘 가꿔져 있다. 고가의 조각품들도 수두룩하다. 추징금은 안 내면서 이 전 회장은 측근들과 함께 잘살고 있다. 종교인 기업인은 망해도 자신이 믿는 종교의 기부행위나 선한 사업은 계속된다. 문제는 선한 사업이 아니라 그가 무슨 돈으로 그렇게 하느냐이다. 법적으로는 무일푼인데.

해체된 성원토건 그룹의 김성필 전 회장의 경우도 독실한 불교인이다. 봉암사, 통도사, 영평사, 성주사 등 국내외의 20여 사찰 시설에 보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통도사의 경우 김 전 회장의 부동산을 증여받아 연화원을 지어 법당으로 사용해 왔다.

김 전 회장이 재판을 받게 되자 불교계는 즉각 구명운동에 나섰다. 한종해 기자는 <망해도 잘사는 부자들>에서 "불교계에 얼마나 돈을 쏟아 부었으면... 대규모 구명운동"이 일어났을까 질문한다. 불교계는 김 전 회장이 "불사 및 서민들을 위한 사회 환원 기증과 수천억 원대에 달하는 청정보시행에 앞장섰다"고 선처를 호소했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산다. 당연히 종교인이라도 재물과 무관할 수 없다. 그렇다고 불의한 재물을 모으거나 숨기기 위해 종교가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어느 기관보다 신성한 곳이 교회요 사찰이다. 교회나 사찰이 눈앞에 이익을 탐닉하는 순간 생명력을 잃게 된다.

'나는 용서받았으니 됐다'는 <밀양>의 파렴치한이나 '기업이 망했으니 아무것도 없다'면서 여전히 가진 자인 종교 기업인이 무엇이 다를까. 거기다 이들을 비호하고 감싸는 종교기관의 작태는 종교의 숭고함과 거룩함을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는 종교나 종교인이 필요한 게 아니고 제대로 구별된 종교와 종교인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망해도 잘사는 부자들>(한종해 지음 / 생각비행 펴냄 / 2015. 3 / 256쪽 / 1만5000원)
※책 뒤안길-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하는 길입니다. 제가 책을 읽으며 책의 주된 내용이 아닐지 모르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오롯한 교훈을 찾아 떠나고 싶습니다. 함께 떠나 보지 않으시겠어요. 이번 글은 목사로서 안타까워 쓴 글입니다.



망해도 잘사는 부자들 - 대한민국 불량기업 불량총수

한종해 지음, 생각비행(2015)


태그:#망해도 잘사는 부자들, #한종해, #생각비행, #불량 총수, #기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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