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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뷰 호텔에서 찍은 쿰부 파노라마 사진
▲ 쿰부 히말라야 파노라마 에베레스트 뷰 호텔에서 찍은 쿰부 파노라마 사진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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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 한 발 걷다 보니 어느덧 남체(3440m)에 도착했습니다. 

남체는 삼면이 산허리에 둘러싸인 쿰부 지역에서 가장 큰 마을입니다. 산중 도시인 이곳에는 카페, 약국, 슈퍼, 롯지 등 편의 시설이 갖춰 있습니다. 매주 토요일에는 주말 시장이 열려 티베트와 네팔 각지에서 운송된 물자가 거래되고 있습니다. 트레커와 등반대는 이곳에서 부족한 물자를 보충해 목적지로 떠납니다.

산악인의 동반자 셰르파

목재를 실은 헬리콥터만 왕래하고 있었음.
▲ 샹보체 공항 목재를 실은 헬리콥터만 왕래하고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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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주민은 셰르파족입니다. 셰르파는 히말라야 산악 가이드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 네팔과 티베트의 경계선 부근 고산 지대에 사는 부족 이름입니다. 뛰어난 심폐 기능을 가진 셰르파족은 세계 유명 산악인의 동반자였습니다. 히말라야 고봉 등정은 그들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베이스 캠프 설치, 물자 수송, 로프 설치뿐 아니라 등반을 안내하고 직접 산에 오릅니다.

에드먼드 힐러리와 함께 에베레스트를 세계 최초로 오른 '텐징 노르가이', 네팔 최초로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밍마', 에베레스트를 무려 21번이나 오른 '아파' 그리고 오은선과 함께 히말라야 6개 봉우리를 오른 '다와 옹추'까지... 그들은 모두 셰르파족입니다.

마을 위쪽 전망 좋은 숙소에 투숙했습니다. 창을 통해 콩데(6093m)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침대와 담요는 청결했고 화장실이 실내에 있었습니다.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화장실이 실내에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하루 자는 비용이 500루피(약 5$)로 다소 비싸지만, 호사를 누려봅니다. 더운 물 한 양동이를 구입해 샤워하고 나니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쿰비율라(5761m) 아래 자리 잡은 쿰중
▲ 쿰중 마을 쿰비율라(5761m) 아래 자리 잡은 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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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변화에 발 맞춰 히말라야도 변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과의 접촉은 히말라야를 걷는 것만큼 더디고 어렵지만, 인내를 가지고 세상의 문을 두드려봅니다. 세상에서는 히말라야가, 히말라야에서는 저잣거리가 그립습니다. 두 아이의 외유로 집엔 아내뿐입니다. ​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직 트레킹 기간이 15일 이상 남았습니다. 건강하게 돌아가겠습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문자에 "빠른 소식 감사합니다. 안전하고 행복한 여행하고 오세요. 혼자라 심심하지만 오랜만에 혼자만의 유익한 시간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것만 못하네요"라는 답변입니다.

잠시 후 유럽에 있는 딸이 한 마디 남겼습니다.

"엄마, 아빠 말투가 왜 이래요!"

제가 생각해도 참 멋없는 부부입니다. 집을 떠난 후 10여 일 만에 처음 전하는 소식인데 무덤덤한 대화가 전부입니다. 그렇지만 아내의 마음을 읽을 수 있기에 안심이 됩니다.

뜨거운 물을 수통에 채워 침낭 속에 넣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체온과 뜨거운 물이 상승 작용을 해 안락한 잠자리가 됐습니다. 새벽에 잠이 깨어 커튼을 열었습니다. 하얀 콩데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봉우리 위에는 바닷가 모래알보다 많은 별이 촘촘히 박혀 있습니다. 창문을 여니 별빛이 창문을 넘어 제 마음에 쏟아져 들어옵니다.​

남체 사이드 트레킹

콩데(6093m)의 보호를 받고 있는 남체
▲ 남체와 콩데 콩데(6093m)의 보호를 받고 있는 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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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뷰 호텔에서
▲ 창에 반사된 설산 에베레스트 뷰 호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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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 적응을 위해 남체에서 하루 더 묵기로 했습니다. ​해발 3000미터에서는 휴식이 필요합니다. 몸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겠지요. 앞만 보고 달려가던 어느 날 " 어! 이게 아닌데"라는 신호가 오면 멈출 때가 된 것입니다. 이 신호를 무시하면 더 큰 대가를 지불할 수 있기에 휴식을 통해 과부하 된 삶에 냉각수를 보충해야합니다.

샹보체(3720m)와 쿰중(3790m) 마을로 사이드 트레킹을 하기로 했습니다. 잠자리 고도보다 높은 곳을 다녀오면 고소 적응에 도움이 됩니다. 히말라야 트레킹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기에 자기 페이스를 유지해야 합니다. "나는 남보다 며칠 단축하여 트레킹을 끝냈다"는 자랑처럼 어리석은 말은 없습니다. 히말라야는 속도전으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자신의 내면 소리에 귀 기울이며 한 발 한 발 다가가는 곳입니다.

샹보체 가는 길은 장난이 아닙니다. 남체보다 300미터 높은 곳이지만 깎아지른 오르막은 마치 수직 벽을 오르는 느낌입니다. 한 발 내딛기도 힘든 오르막을 자루를 둘러멘 네팔 젊은이가 콧노래를 흥얼대며 지나갑니다. 더구나 그는 슬리퍼를 신고 있습니다.

쿰중 마을의 아이들 모습
▲ 아이들 쿰중 마을의 아이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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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를수록 시야가 트이면서 시야가 점점 시원해집니다. 말발굽 모양의 남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계획 도시가 아님에도 한 틈의 오차 없이 레고를 맞추어 놓은 것처럼 짜임새 있는 모습입니다. 마을 앞에는 콩데가 늠름한 모습으로 마을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래쪽은 두드코시강과 루클라로 향하는 계곡이 있습니다. 

샹보체(3720m)는 마을이 아닌 넓은 개활지입니다. 과거 쿰부 관문 역할을 했던 비행장은 루클라에게 영광을 넘겨줬기에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눈 쌓인 비행장에는 화물을 운송하는 헬리콥터만 오가며 목재를 부려놓습니다. 이곳부터는 야크와 사람의 등을 이용해서 사람 사는 마을마다 전달되겠지요.

샹보체의 뷰 포인트는 에베레스트 뷰 호텔(3859m) ​입니다. 이곳에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 로체(8516m), 아마다블람(6856m), 탐세르쿠(6608m), 캉데가(6685m), 콩데(6093m) 등 쿰부 지역의 주요 설산을 파노라마로 볼 수 있습니다. 저도 모르게 감탄사가 반복됩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스펙터클한 모습은 제 짧은 어휘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

순간 모든 것을 잊고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입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위해 이곳에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제 사고의 범위를 벗어난 규모를 상상할 수 없는 자연의 거대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모든 것을 잊게 만들었습니다.

에드먼드 힐러리의 꿈이 담긴 '쿰중' 마을

쿰중에 있는 힐러리 스쿨
▲ 힐러리 스쿨 정문 쿰중에 있는 힐러리 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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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학교 모습과 힐러리 상
▲ 힐러리 흉상 힐러리 학교 모습과 힐러리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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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중(3780m) 마을로 방향을 잡습니다. 상업 지역인 남체와 달리 ​고즈넉한 산중 마을입니다. 지역 주민이 신성시하는 쿰비율라(5761m)와 샹보체 사이 분지에 다소곳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활기찬 쿰부와 달리 정적입니다. 아이들 썰매를 타며 떠드는 소리만 썰렁한 골목을 오가고 있습니다.

마을 입구에는 '힐러리 스쿨'이 있습니다. 에베레스트 초등자인 힐러리경이 만든 학교입니다. 그는 에베레스트 등정 후 히말라야 각 지역에 3개의 병원, 13개의 진료소, 30여 개의 학교 그리고 12개의 다리를 만들었습니다. 네팔 셰르파들은 그를 '두 번째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힐러리 스쿨'은 그가 1961년에 만든 학교입니다. 그는 죽었지만 '힐러리 스쿨'은 영원히 네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것입니다.

쿰중 마을 정경
▲ 쿰중 쿰중 마을 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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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돌아오니 우리나라 패키지 트레킹 팀이 있었습니다. 17명의 트레커와 30여 명의 스태프가 함께 트레킹을 하고 있습니다. 중학생부터 50대 후반까지 다양한 연령과 남녀 혼성으로 구성됐습니다. 조용했던 숙소가 시장처럼 왁자지껄합니다. 서로 다른 체력을 지닌 많은 일행이 보폭을 맞춰 걷는 것은 쉽지 않을 텐데 처음 접하는 패키지 팀이 경이롭습니다.​

내일은 탱보체(3867m)로 떠납니다. 쿰부 히말라야 속살에 한 발 다가가는 것이지요. 이번 트레킹은 해발 4000~5000미터 고지에서 일주일 이상 있어야 합니다. 몸과 마음 모두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지 못하면 트레킹을 포기해야합니다. 걱정한다고 달라질 것이 없지만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남체의 밤은 깊어 가고 있었습니다. 


태그:#네팔, #쿰부, #남체, #에베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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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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