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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경남지사가 의무급식을 폐지하고 '서민자녀교육지원사업'을 대안으로 내놓으면서 이른바 '가난증명서'라는 신조어가 나타났다.

이 연간 50만 원의 교육바우처를 받기 위한 제출서류는 부모의 소득/재산/부채/납세 증빙서류를 비롯하여 예금잔액과 임대차계약서 등 무려 20여 종에 달하는데, 고작 월 4만 원 남짓한 지원금을 받으려고 해당 관공서와 학교를 오가며 철저하게 가난을 입증하라는 것이다.

의무급식 폐지도 모자라, 예민한 성장기 아이들의 집안 사정을 만천하에 드러내라는 제도에 원성이 높다. 그러나 이 '가난증명서'는 경상남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의당 김성현 경기도당위원장이 페이스북에 공개한 자료.
▲ 경상남도 서민자녀 교육지원사업 신청서와 광명시 인재육성재단 장학생 신청서 제출서류 비교 정의당 김성현 경기도당위원장이 페이스북에 공개한 자료.
ⓒ 정해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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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김성현 경기도당위원장에 의하면 광명시 인재육성재단의 장학금 신청 서류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광명에서도 부모의 가난을 입증해야 함은 물론, '경남판 가난증명서'에는 없는 성적증명서까지 제출해야 한다. 게다가 이 학생들은 심사위원들 앞에서 면접까지 보도록 규정되어 있다.

김성현 위원장은 "경남 홍준표 지사에 대한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최고위원의 비판이 당연하며 잘못된 제도는 바로잡아야 한다"면서도, "광명시 인재육성재단 이사장인 광명시장은 새정치민주연합인데, 집안단속부터 잘 해야 그 비판의 진정성이 느껴질 것"이라고 밝혔다.

정의당 김성현 경기도당위원장이 페이스북에 공개한 자료.
▲ 광명시 인재육성재단에서 요구하는 장학생(고등학생)의 자격 요건 정의당 김성현 경기도당위원장이 페이스북에 공개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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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명시 인재육성재단에서 요구하는 장학생(대학생)의 자격 요건 정의당 김성현 경기도당위원장이 페이스북에 공개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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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김성현 경기도당위원장이 페이스북에 공개한 자료.
▲ 광명시 인재육성재단의 장학생 종류별 평점 기준 정의당 김성현 경기도당위원장이 페이스북에 공개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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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르면, 광명시 인재육성재단에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복지사각지대'의 '저소득층 자녀'로 규정한 학생들 중 '전 과목 평균 4등급 또는 평점 70점 이상'인 학생들만이 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들은 가난한 가정환경을 각종 증빙서류를 통해 낱낱이 공개하고도, 성적에 따른 차등으로 자기소개서를 제출하고, 또 면접심사까지 거쳐야만 한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가정 형편을 확인한다며 '차 있는 집, 전세 월세 사는 집 손 들어 보라, 적어 내라'던 수치스러운 기억이 있다. 기성세대의 부끄러운 과거를 더듬어야만 나오던 옛 이야기, '가정환경조사서'는 '인권'에 대한 인식 수준이 초라하던 시대와 함께 흘러가버린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이 옛날 이야기는 2015년 경상남도에서 '가난증명서'라는 이름으로 부활했고, 경기도 광명시에서도 '장학생 선발'이라는 이름으로 인권침해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지방자치단체 구성원 간 네트워크의 실종을 드러내고 있다. 저소득층 가정, 자녀를 위한 각종 복지시설과 교육기관이 연계되어 있다면 굳이 '가난을 입증하기 위한 20여 종의 증빙서류'를 요구할 일이 아니다. 청소년 시설 및 교육 시설의 주요 사용자가 곧 교육지원사업의 대상이 될 텐데, 20~30년 전 '가정환경조사서'를 기계적으로 작성하듯 '네 가난을 스스로 입증하라'고 상처받기 쉬운 민감한 성장기 아이들을 발가벗겨 심사대에 세울 필요가 없는 일이다.

이렇듯 학생들의 집안사정을 드러내지 않고도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선출직 지방자치단체장의 정치적 생색내기로 활용할 일이 아니라, 정말로 필요한 아이들에게 필요한 만큼 지원할 수 있는 선발기준의 개선이 필요하다.


태그:#정의당, #김성현, #광명시, #인재육성재단, #가난증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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