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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대로(坦坦大路)'라는 말이 있다. 아무런 굴곡이나 걸림 없이 앞으로 쭉쭉 뻗어있고 넓은 길을 뜻하는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인생길이 이렇게 '탄탄대로' 이길 꿈꾼다.

공부도 했다하면 성적이 쑥쑥 오르고, 시험도 쳤다하면 척척 붙고, 입학 원서든 입사 원서든 넣었다하면 합격, 부자가 되고 명예도 얻는 그런 삶이 내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꿈을 꾼다. 그래서 때로 달리는 길에 놓인 진창 때문에 힘들고, 울퉁불퉁 돌부리에 넘어져도 곧 나타날 탄탄대로를 기대하며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린다.

그런데 박완서의 <7년 동안의 잠>은 달려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좀 다르게 생각해보자고 좀 다른 길로 가보자고 말한다. 심지어 거꾸로 가보자고 설득한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땅 위로 올라가면 따뜻한 햇살과 보들보들한 흙을 밟을 수 있었던 개미네 동네, 이젠 땅 위에 뜨거운 아스팔트가 덮여 땅 속까지 점 점 가물어간다.

먹을 식량도 부족하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개미들은 엄청난 식량을 하나 구한다. 매미의 유충이다. 자기들 몸무게 보다 몇 십 배 무거운 이 벌레, 게다가 건드려도 꼼짝도 못하는 이 벌레는 분명 훌륭한 먹이이다.

그러나 "매미는 한 철의 노래를 위해 7년이나 어둠과 외로움 속에서 자기의 재주를 갈고 닦았는데..."라는 늙은 개미의 한 마디 때문에 개미 마을은 갑론을박으로 들썩이게 된다.

"매미는 우리가 열심히 일할 때 노래만 시끄럽게 부르니 먹혀도 할 말이 없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노래를 위해 7년 아니라 10년을 해도 대단할 게 뭐냐." 젊은 개미들은 투덜댄다. 하지만 한 편에선 "나는 매미의 노래 소리 덕분에 여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았다", "매미 노래는 여름의 산과 들이 빛나는 걸 알 수 있게 해준다"라고 이야기 한다.

결국 늙은 개미는 매미를 이고 지고, 함께 아스팔트 땅을 벗어나 콘크리트 땅을 벗어나 부드러운 천장이 있는 곳으로 갈 것을 결정한다. 개미마을 창고가 아니라 정반대쪽으로 모두 힘을 모아 영차영차 매미 유충을 움직인다. 그리고 가는 도중 점 점 매미가 스스로 움직이고 있음을 깨닫는다. 나무 밑에 다다랐을 때 매미는 껍데기를 버리고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개미들은 먹이를 영영 놓쳤으나 기쁨에 차서 매미의 앞날을 축복한다.  

먹고 먹히는 일이, 밟고 밟히는 일이 일상화 되어 있는 우리들 세상, 박완서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일단 멈춤'의 숨고르기를 던져준다. 아마도 나는... 내가 개미였다면... 개미마을을 위해 잠시 연민 같은 것은 접어두고 모두를 위해 식량저장고로 가야한다고 이야기 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생각해보면 세상엔 늘 우리가 습관처럼 쫓던 것 말고도 가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보물찾기처럼 세상 곳곳에 숨어있는 가치 있는 것들을 찾아내는 기쁨은 하늘을 나는 매미를 보는 개미들의 만족함과 같으리라. 갈매기 켕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켕가의 알을 먹지 않고 부화시켜 하늘을 나는 법을 가르친 고양이 소르바스의 기쁨과 같으리라.
(- 루이스 세풀베다/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준 고양이)

<7년 동안의 잠>은 오늘도 오로지 식량창고를 향해 전진하는 우리 모두에게,  가던 길을 멈추고 거꾸로 가보자고 이야기한다. 거꾸로 가는 길에서 만날 기쁨이 어떤 모양이든 그 기쁨은 가치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7년 동안의 잠'도 가치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폭주하는 일개미들이여, 쉼의 가치를 배우자. 돌아섬의 미덕을 배우자.  


7년 동안의 잠 (다국어판 (베트남어, 영어))

박완서 글, 김세현 그림, 어린이작가정신(2015)


태그:#박완서, #7년 동안의 잠,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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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속 보물들을 찾아 헤매는 의미 탐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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