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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숙면을 취했습니다. 고도가 높지 않아 호흡에 불편함이 없었고, 춥지 않아 침낭 속에 벌레처럼 움츠리지도 않았으며, 도도하게 흐르는 두드코시강의 물소리도 창문을 넘지 않았습니다. 집을 떠난 후 가장 쾌적한 잠자리였습니다.

새벽 6시 무렵 밖으로 나왔습니다. 어슴푸레 여명이 느껴지지만 계곡 위에는 말갛게 늘어선 나무 사이로 별들이 총총합니다. 산봉우리에서 먼동이 트기 시작하였습니다. 햇살이 봉우리를 환하게 밝히 다음 계곡을 타고 내려오며 쿰부의 아침은 시작되었습니다.

팍딩의 아침 모습
▲ 아침 팍딩의 아침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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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에도 개발 바람이 불다

오늘은 쿰부 히말라야의 중심 지역인 남체(3440m)까지 이동합니다. 10킬로미터 남짓한 짧은 거리지만 고도를 800미터 높여야 합니다. 히말라야 트레킹에서는 몸 상태를 고도에 적응시킬 시간이 필요합니다. 짧은 시간에 급격히 고도를 높이면 고소증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고소증이 오면 트레킹을 포기해야 하기도 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위태롭게 합니다. 예방약도 치료약도 명확하지 않기에 순리에 어긋나지 않는 발걸음이 최선입니다. 

개발은 쿰부에서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트레커 숫자와 비례하여 롯지(숙소)와 편의시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롯지의 규모는 크고 화려해지고 있으며 바(Bar), 당구장, PC방 등 저잣거리에 있어야할 것들이 히말라야 작은 마을에서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윤 있는 곳에 자본이 있다'는 경제 법칙은 히말라야 산자락에서도 적용되고 있겠지요.

쿰부 히말라야에도 저잣거리 모습이
▲ 카페 간판 쿰부 히말라야에도 저잣거리 모습이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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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인부들이 정으로 돌을 다듬고 톱으로 나무를 켜고 있습니다. 설계도가 없음에도 돌을 쌓아 벽을 만들고 목재를 사용하여 문틀과 서까래를 맞추고 있습니다. 작업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지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집 형태를 갖추어가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모습에서 숭고함이 느껴집니다.

개발붐이 일어나 쿰부 히말라야
▲ 롯지 공사 개발붐이 일어나 쿰부 히말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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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탐세크루 설산이 드러나다

톡톡(2780m) 마을을 지나자 앞쪽이 트이면서 ​뒤에 숨어 있던 탐세르쿠(6608m) 모습이 보입니다. 설산은 능선 뒤에 숨어 머리만 치켜들고 있습니다. 보일 듯 말 듯 보이는 설산 모습이 보는 사람의 애간장을 태웁니다. 히말라야는 한 번에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서 있는 위치, 마음 상태 그리고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각인됩니다.

6608m, 탐세크루
▲ 탐세크루 6608m, 탐세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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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조(2835m)와 조르살레(2810m) 사이에 '사그르마타 국립공원 사무소'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팀스(TIMS, 트레커 정보운영 시스템)와 퍼밋(Permit, 입장허가서)을 체크합니다. 팀스는 카트만두에서 발급받아야 하고 퍼밋은 이곳에서 3000루피를 지급하고 직접 발급 받습니다.

사무실 벽에 쿰부 지역을 다녀간 사람들의 연도별 통계표가 걸려 있습니다. 2014년에 3만7124명이 쿰부 지역을 찾았고 1월에만 980명이 다녀갔습니다. 겨울철은 폭설과 추위 때문에 트레킹 비수기입니다. 저는 1월에 이곳을 걷고 있기에 상위 4% 트레커 입니다.

퍼밋과 팀스 등록
▲ 사그르마타 국립공원 사무소 퍼밋과 팀스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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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부 히말라야 년도별 트래커 파악
▲ 통계표 쿰부 히말라야 년도별 트래커 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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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르마타'는 하늘의 머리라는 의미이며 에베레스트의 네팔 이름입니다. 티베트에서는 대지의 여신이란 의미로 '초모랑마'라 부릅니다. 에베레스트라는 지명은 영국 식민지 시대에 영국의 측량기사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아름다운 고유 이름이 두 개나 있음에도 개명되었습니다. 네팔 정부에서도 사그르마타라 불리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자신의 이름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조르살레(2810m)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이 마을을 지나면 남체(3440m)까지 마을이 없습니다. 가족이 운영하는 소박한 롯지에서 점심을 주문하고 휴식을 취합니다. 어제 루클라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만났던 거구의 호주 젊은이 커플이 지나갑니다.

두 사람 모두 몸무게가 100킬로그램은 훨씬 넘어 보입니다. 포터 한 명과 힘들게 걷고 있지만 늘 웃는 모습입니다. 우리를 알아보고 만연에 미소를 머금은 모습으로 "나마스테"하고 인사를 건넵니다. 체중 때문에 거동조차 불편해 보이지만 그들은 무소의 뿔처럼 히말라야를 걷고 있습니다.

쿰부 히말라야, 첫 번째 깔딱 고개

조르살레 마을 끝자락에 있는 출렁 다리를 건너 강변을 따라 평탄한 길을 오르면 두 개의 강이 합류하는 라르자 브릿지(Larja Bridge)를 만나게 됩니다. 고쿄와 칼라파타르에서 흘러온 두드코시(Dudh Koshi)강과 티베트 경계에서 발원하여 타메를 거쳐 내려온 보테코시(Bhote Koshi)강이 하나가 되는 곳입니다. 라르자 브릿지는 쿰부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에 있는 수많은 출렁 다리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걸려있습니다. 

남체의 관문 '라르자 브릿지(Larja Bridge)' 모습
▲ 라르자 브릿지(Larja Bridge) 남체의 관문 '라르자 브릿지(Larja Bridge)'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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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초가 휘날리는 모습
▲ 라르자 브릿지(Larja Bridge) 타르초가 휘날리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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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이는 다리 모습은 환상적입니다. 거대한 계곡 사이에 두 개의 출렁다리가 위 아래로 걸려있습니다. 과거에 사용했던 다리 위에 새로운 다리가 만들어졌습니다. 보는 것과 달리 다리를 건너려니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다리 아래쪽 계곡을 바라보려니 현기증이 납니다. 거대한 고층 건물 사이에 외줄을 타는 기분으로 조심스레 다리를 건넙니다. 다리의 철체 난간에는 티베트 불교 경전이 적힌 타르초가 만국기처럼 물결치며 여행자를 반겨줍니다.

다리를 건너자 끝없는 오르막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파른 고갯길을 걷고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고도를 무려 600미터나 올려야 합니다. 해발 3천 미터 고산 지대에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걷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은 다음 발자국이 중요합니다. 이 발자국이 계속될 때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할 것입니다. 우리의 생도 마찬가지겠지요.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알 수 없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현재를 성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쿰부 히말라야에 3대 깔딱 고개(?)가 있습니다. 조르살레(2810m)에서 남체(3440m), 풍기탱카(3250m)에서 탱보체(3867m) 그리고 두글라(4620m)에서 로부체(4930m)입니다. 짧은 시간에 급격히 고도를 올리거나 해발 5천 미터를 넘는 코스여서 트레커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구간입니다. 저는 지금 첫 번째 깔딱 고개를 걷고 있습니다.

남체에 오르는 가파른 고갯길 쉼터에서
▲ 오렌지 파는 아주머니 남체에 오르는 가파른 고갯길 쉼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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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풀리고 입에서 단내가 날 무렵 쉼터가 나옵니다. 오렌지를 파는 아주머니가 미소로 우리를 반깁니다. 아주머니는 아무런 말씀도 없이 무심한 듯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것을 파악하기 있기에 흥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체력은 바닥이 났으며 갈증 때문에 몸을 움직이는 것도 고역입니다. 이곳에서는 갑과 을의 관계가 바뀌었습니다. 오렌지 하나에 50루피가 아니라 몇 배의 가격을 제시해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당도 높고 싱싱한 오렌지의 껍질을 까서 한 입 가득 넣고 베어 무는 그 느낌이란!

드디어 도착한 남체와 꽁데
▲ 남체 드디어 도착한 남체와 꽁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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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살레에서 거의 세 시간을 걷자 멀리서 남체 체크 포스트가 보입니다. 드디어 남체(4330m)에 도착하였습니다.


태그:#팍딩, #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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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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